말수가 적은 그 시인 한의사를 유심히 지켜보며 건강에 관한 토막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발설할 때마다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 후 지금까지 좋은 관계의 우정을 키워가고 있다.
몇 달 전에 작은 모임이 있어 참석했다가 여러 시선 앞에서 그만 넘어져 발을 삐었다. 끝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 첫 발자국을 내 딛는데 턱이 진 바닥이 평지로 보여 맥없이 앞으로 픽 쓰러졌다.
부끄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분위기 깨는 게 싫어 괜찮다며 내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괜찮지가 않았다. 불과 1시간 전에 한의사한테 가서 감기 끝에 윙윙 우는 귀를 치료받고 왔기에 또 달려가기가 쑥스러운 감이 들어 망설이고 있었다.
헤어져 나오면서 아픈 쪽에 몸무게를 주지 않으려니 저절로 절룩거리며 걷게 되었고 양발이 정답게 몸무게를 반씩 분담할 수 없어 한 쪽으로 쏠리니, 눌려 너무 아파왔다. 예삿일이 아니었다. 얼음찜질하고 파스 부치면 괜찮겠지 싶어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다친 쪽이 공교롭게도 오른발이라 운전하는데 새큰거리고 통증이 느껴졌다. 띵띵 부어 올라온 발에 신발을 신기기가 거북해 아예 맨발로 운전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붓고 통증이 더 심해왔다. 푸르퉁퉁한 멍이 발뒤꿈치에서 발등 전체를 덮고 있었다. 자고 나도 차도가 없었다. 이웃에 사는 후배가 콩나물국에 생선을 구워오고 한의사한테 가는 운전을 자청해왔다. 이웃사촌이라 했던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도 좋은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한 것도 삔 발 덕분이었다. 발을 몸보다 높게 하고 쉬었다.
정원 일이나 빨래하는 일, 부엌일이며 장보는 일등 모두 서서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첫째 보행에 문제가 생기니깐 기본이 흔들리고 있었다. 애써 얼음찜질도 했고 덕지덕지 파스를 부치는 등 민간요법을 다 동원했다. 남편은 X-Ray를 찍어볼 것을 권고했지만 나는 속으로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괜찮을 거라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
붓기가 가시지 않고 아파 시인 한의사를 찾은 것은 그 다음 날 오전이었다. 아들 또래의 젊은 인턴들이 여러 명, 들락거리며 임상에 임하고 있었다. 실력 있는 교수법이 좋고 인간관계가 원만한 인품 때문에 인기도가 높다고 시인이 자리를 비운 잠깐사이에 인턴이 귀띔을 해주었다.
문득 작년 일이 떠올랐다. 그 때 시인 일행은 흔들리는 데스밸리 나들이 행 버스에 탑승하고 저마다 시상에 잠겨있을 때였다. 피가 부족한 나는 멎지 않는 코피가 쏟아지는지라 휴지밖에 없어 혼자 끙끙대며 솜 대신 코를 틀어막는 등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부드러운 손길이 다가오더니 내 머리를 조심스레 안고는 뒤로 젖힌 후 침을 꽂아주었다. 누군지 몰라도 옆에서 보기가 딱했던 모양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는 고마움에 나를 고스란히 맡겼다. 무엇보다도 남을 배려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그의 손끝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어 나는 쉽게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침구를 비상준비 해온 것 만 봐도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어졌다.
그 후 지금까지 다시는 코피가 터지지 않았다. 그 때까지도 나는 그가 시인인줄만 알았지 한의사 교수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부터 말수가 적은 그 시인 한의사를 유심히 지켜보며 건강에 관한 토막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발설할 때마다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 후 지금까지 좋은 관계의 우정을 키워가고 있다. 발 때문에 찾아간 나에게 이것저것 병력을 물으며 상담까지 해주는 그는 보기보다 가슴이 넓고 따뜻한 인간이었다. 시침하고 치료비도 안 받겠다고 해서 한동안 멍했는데 나는 근처에 사는 문우 혜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하며 웃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으로 갚아갔다.
발을 다친 그날, 돋보기안경을 낀 내 시력에 결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빈혈 때문일 수도 있었다. 예고없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고 사이사이에 우리는 얼마나 위태롭게 매 순간 살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무사고의 하루하루가 오히려 기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발을 다치게 해서라도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서 나를 빼 내어 느슨하게, 쉼의 숲을 거닐기도 하라는 생활리듬 재조정의 깨달음이 왔다. 발을 다침으로 거동에 제한이 따랐고 이때 나를 돌아보며 나의 건강을 점검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건강관리는 자신이 해야 하고.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각자의 몫임을 확인한 셈이다. 삶의 속도를 늦추라는 신호를 빨리 깨달았기에 그 유익함이 큰 것으로 다가온 셈이다. 그런 대로 손을 빨리 써 지금은 완치되었다. 주위의 친구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시인 한의사와 더욱 친밀해질 수 있었던 것도 다 발을 다쳤기에 가능했다. 아픔에는 늘 불편과 손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친구를 얻었으니 얼마나 큰 삶의 보석을 건졌는가 말이다. 병이나 고통, 어떤 형태의 사고나 상처들, 모든 위기에는 삶을 Uplift시켜주는 그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담고 있다. 겪고 나면 그만큼 성숙하게 되기 마련이다. 양발 아닌 한발을 다쳐서 감사하고 뼈가 안부러졌으니 더욱 감사, 바로 이런 심정이 되니 말이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던가? 오늘따라 그 의미가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김영교
약 력
▲미주 한국문협 이사
▲해외 문학상수상. 안데스 문학상수상
▲시집 <우슬초찬가> <신호등> <물 한방울의 기도>
수필집 <소리 지르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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