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아일랜드는 남태평양에 떠 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망망대해에 흩뿌려져 있는 수많은 섬의 하나에 불과한 이 땅덩어리가 유별나게 유명한 것은 묵묵히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아이’란 이름의 거대한 돌상들 때문이다. 나무 한 포기 찾기 힘든 황량한 이곳에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거상을 세웠을까. 한 때는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설까지 나돌 정도로 온갖 추측이 난무했으나 지난 수십 년 간 학자들의 연구로 누가 어떻게 이것을 세웠는지는 이제 거의 밝혀져 있다.
이 섬의 원주민들은 지금부터 1,200년 전쯤 카누를 타고 건너온 ‘라파 누이’라 불리던 폴리네시아계 사람들이었다. 이스터 섬의 전성기였던 1500년대에는 9,000명에 달하는 원주민들이 이 섬에 살고 있었으며 섬 자체도 지금처럼 황무지가 아니라 야자수로 뒤덮인 지상낙원이었다. 지금 거상이 서 있는 곳으로부터 10 마일 이상 떨어진 돌산에서 바위를 끌고 와 이런 조각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 섬사람들이 한 때나마 경제적으로 얼마나 여유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너무 풍요로웠던 것이 이 섬 멸망의 원인이었다. 땔감으로, 혹은 암석 운반의 수단으로 무진장해 보이던 나무를 마구 베기 시작했고 숲은 점점 줄어들었다. 숲이 사라지면서 땅은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게 됐고 먹을 것은 구하기 어려워졌다. 태평양 한 가운데 떠 있어 도움을 청할 길도 없었던 원주민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서로 상대방을 잡아먹기에 이르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산 속 동굴로 도망갔던 몇 안 되는 원주민들은 18세기 이 섬이 백인들에게 발견되면서 노예로 팔려가 ‘라파 누이’는 멸종되고 만다.
이스터 섬의 멸망은 등 따습고 배부른 인간이 장차 닥쳐올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준다. 따지고 보면 이스터 섬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운명이 그렇다.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지만 하루아침에 망하지도 않았다. 아우구스투스가 사실상 로마 황제로 군림하고 5현제가 다스리던 시절 로마가 망하리라고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가 지나친 흥청거림 속에 날로 국력은 쇠약해졌고 모든 사람이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회복 불능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지난 14일은 소셜 시큐리티 제도가 탄생한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에 시달리는 은퇴 노인들의 참상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1935년 이날 소셜 시큐리티 법에 서명했다. 이 제도의 첫 수혜자인 버몬트 러들로우의 아이다 풀러는 1939년 64세로 은퇴해 1940년부터 매달 22달러(지금 돈으로 1,000달러 정도)씩 35년 동안 받고 10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총 수혜액은 2만2,000달러고 그녀가 평생 낸 소셜 시큐리티 세는 24달러니까 1,000배에 가까운 장사를 한 셈이다.
풀러는 횡재를 했지만 당시에는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10년이나 짧았고 은퇴자 한 명 당 노동 인구 수는 20명으로 지금 3명보다 6배 이상 많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로 고령자 수와 평균 수명이 날로 늘어나는 지금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시 집권 2기의 최대 과제이자 공약으로 내걸었던 소셜 시큐리티 개혁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행 소셜 시큐리티 제도는 2012년이면 적자로 돌아서고 2030년대가 되면 파탄이 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이에 손대지 못하고 있다. 파국을 막으려면 수혜 연령을 높이거나 혜택을 깎거나 세금을 올리는 것이 불가피한데 막강한 고령자 로비의 눈길이 무서워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미국민 자신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미국민과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려 이스터 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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