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석(정신과 전문의/한미문화연구원 원장)
한국에도 누드 비치가 생긴다고 한다. 옷을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 몸으로 남녀들이 해변가를 거닐거나 모래 위에서 뒹구는 모습이 연상된다.
원래 남자들은 해수욕장에서 짧은 수영 팬티를 입고 다녔기 때문에 그랬지만 요즘 여자들이 비키니형 수영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나체를 보는 것과 별 차이 없는데 왜 누드 비치가 필요한지 생각해 볼만 하다.누드 비치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 눈에 반짝 불이 나고 장난끼와 호기심이 흐르는 것을 본다.얼마 전 캐리비안 섬들을 여객선으로 도는 휴가를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세인트 마-튼(St. Martin)이라고 하는 섬에도 들렸었다. 거기에 오리엔트 비치라고 하는 누드 비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찾아 갔었다. 남자들의 나체는 한국의 대중목욕탕에서 흔히 봤기에 흥미가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젊고 날씬한 여자들의 나체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도착해 보니 모래사장에는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몇 쌍의 나체 남녀가 바다를 향하고 앉아있을 뿐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는 몇 개의 노점상들이 생식기를 그대로 노출한 남자와 여자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걸어놓고 팔고 있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어떤 매력 없는 중년남자가 한쪽 다리가 절단되어 지팡이를 짚고 발가벗은 채로 자기의 물건을 덜렁거리면서 걸어가는 모습이었다.이 남자는 나의 누드 비치에 대한 호기심을 완전히 절단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누드 비치라는 곳은 자기들의 생식기를 공공연하고 자유스럽게 노출시키고 활보하면서 성적인 흥분과 쾌감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보아야 겠다.여자들의 나체를 볼 수 있는 곳은 누드 비치 뿐만이 아니다. 스트립 쇼를 하는 곳에 가도 볼 수 있다.
40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메릴랜드 볼티모어에는 주정부에서 인가한 스트립 쇼 극장들이 있어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들끓었다. 나도 한국에서 온 친구들 등쌀에 못이겨 찾악 보았다.우리가 들어간 곳은 앞에 무대가 있는 소극장이었다. 몇 사람의 여자들이 나체로 나와 한 줄로 서서 시시한 음악에 맞추어 엉성한 춤을 추었다. 전연 성적인 흥분을 일으킬 만큼 매력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에 선 여자는 한 50세 되는 쭈글쭈글한 여인으로 음악에 맞춰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앉을 때마다 손바닥으로 자기의 음부를 때리며 관중석을 향하여 침을 뱉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부끄럽지도 않냐, 이 인간들아!”라고...(Shame on you!) 이 일은 나의 얼굴과 여자 나체에 대한 호기심에 침뱉음을 받은 격이 되어 흥미를 완전히 잃게 하였다.
누드 비치에 가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섹스와는 아무 관계도 없고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방감과 자유감을 즐기는 데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옷을 입어야 되고 특히 생식기를 가리고 다녀야 되는가? 누드 비치 이외의 장소에서 발가벗고 다니면 짐승같은 인간이라고 하고 미친 인간이라고 하여 경찰에 잡혀가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이 된다.
이 문제는 인류학적, 고고학적, 철학적인 문제로 이런 면을 여기에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섹스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어서 타인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해야 하고 신체적으로는 부끄러운 부분, 즉 치부(恥部)라고 하여 가리고 다녀야 된다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만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기고 가리고 다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나체 위에 숨겨놓는 자기의 ‘속마음’이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정신분석가로 몇 십년을 일해 왔고 또 하나의 인간으로 그보다 더 오래 살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거침없이 자기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발가벗겨서 내보이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마도 부끄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가 보다. 만일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성인 군자도 없을 것이다. 그 속에는 법과 윤리, 도덕을 어기는 탐욕, 명예욕, 울화, 사기, 절도, 강도, 강간, 살인 등의 생각이 시시각각으로 행렬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속마음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성인군자이다.
사람들은 또 이러한 자기의 속마음은 남에게 뿐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도 숨기려 하면서 남의 속마음은 샅샅이 알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다. 불교에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말을 한다. 이렇게 부끄럽게 느껴지게 하는 생각들을 무명(無明)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고, 이 무명에 가려있는 깨끗하고 참된 마음을 보고 그대로 실천한다면 바로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정신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무명스런 마음을 ‘노이로제적 마음’이라고 하고 이것들을 제거하고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참된 자아를 보고 실천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자기 속마음을 내보이는 것이 자기 몸의 치부를 노출하는 것과 같아서는 안된다. 언제 어디서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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