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고 광복의 기쁨을 노래했다. 해방이 되었을 때 남녀노소 모두 거리로 달려 나가 ‘대한 독립 만세’를 목이 메도록 불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일제하의 민족의 울분을 읊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감격과 환희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8월 15일은 또한 대한민국 건국 57주년이 되는 날이다. 항상 이 날은 모두가 깊은 감회에 잠기게 되지만 오늘에 와서 더 복잡한 느낌을 갖는 것은 필자만의 센티멘털리즘인가?
지난 60년 한국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아니 잔인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남북분단, 6.25전쟁, 학생혁명, 군사혁명, 광주사태 등 우리에게 한이 맺힌 것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지난 60년간에 경제기적, 민주화운동, 서울올림픽, 월드컵 등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외국인들이 경탄하듯이 우리는 잿더미위에서 기적을 이룩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에 이르는 도로변에는 고급콘도가 즐비하다. 고속도로는 국산차량들로 도로를 메우고 있다. 산골짝 마을길까지도 깨끗하게 포장된 나라이다. 한국은 반도체와 조선산업에서 세계 1위이며 휴대폰과 정보기술에서도 세계수준급이다. 자동차산업은 세계 5위를 바라보고 있으며 발전설비, 석유화학, 철강 등 중화학공업도 세계적 수준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산업은 선진국과 겨눌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12번째 무역대국이 되었다.
한국의 민주적 성취는 더욱 자랑스러운 것이다. 한국인은 일본의 압제에만 저항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 정부의 탄압에 용감히 저항했다. 한국은 아마도 신생민주국가 중에서 가장 영웅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한 나라의 하나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직후 영국의 한 언론인은 한국의 제반 형편을 보고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극히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국가가 되었다. 경제발전이든 민주발전이든 서구인들의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젊은 세대들은 오늘의 자유와 번영이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나라,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나라가 지난 60년 동안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큼 변하고 발전했다. 민족의 역사가 바뀐 것이다. 5천년 역사라고 하지만 지난 60년만큼 그렇게 큰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시기는 일찌기 없었다.
이 같은 성취가 자원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던 나라에서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일인가?
그것은 그야말로 피눈물의 결과이며 처절한 투쟁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 부모세대와 우리세대는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맨주먹으로 이루어 내었다. 그것도 북한공산주의자들과 끊임없이 대결하며 막대한 국방비를 써가면서 불가능하다고 하던 것들을 이룩해 내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것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하는가? 그런데 한국사회는 왜 아직도 지역으로, 계층으로, 이념으로, 그리고 세대 간에 갈라져 있는가? 왜 젊은 세대는 과거세대 그리고 기성세대의 잘못된 면만 보려고 하는가?
물론 기성세대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생존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나부터 살고보자는 의식이 팽배하여 많은 과오와 시행착오를 만들어 냈다. 그렇다고 하여 기성세대는 결코 부끄러워해야 하고 지탄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라 본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불사조라며 경타해 마지않는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모세대의 성취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모순이며 잘못된 일이다. 젊은 세대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난 60년의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광복은 아직도 3분의 2 정도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한반도 북쪽은 일본시대보다 얼마나 더 살기 좋아졌는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곳에는 보릿고개보다 더 험난한 고개들이 많다. 배고파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는다는 당당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유가 없고 배가 고픈 것은 60년 전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 같은 북한을 두고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민도 했고 갈등도 겪어왔다.
그렇지만 과거의 반공정책을 오늘의 잣대로 잘못되었다고 본다면 이것은 분명 잘못된 속단이다. 북한인민들에게 최소한의 의식주가 보장되고 자유와 인권이 주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광복의 마지막 과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남한의 햇빛정책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북한 스스로 선택하고 변해야 한다. 세계는 정보의 시대, 시장경제의 시대로 달려가고 있는데 북한만이 고립되어 살 수 없다. 북한주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 한 우리에게 광복의 완성은 없다. 북한의 진정한 광복을 유도하기위해 우리 모두는 지난 60년을 겸허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김충남 박사
동서문화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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