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은 특이한 질병이다. 한번 걸리면 치사율이 95%다. 췌장암을 빼고는 암 중에서 가장 높다. 지난 10여 년 간 위암을 비롯한 다른 암들로 인한 사망자는 수는 급속히 줄고 있는 반면 폐암 사망자 수는 꾸준히 증가, 이제는 한국인 사망 원인의 1위를 차지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이 잘 걸리는 위암은 이제 조기 발견하면 대부분 고친다. 그러나 폐암은 일찍 발견이 극히 어렵고 발견이 되면 대체로 이미 늦었다. 건강 관리에 누구보다 신경을 쓰는 재벌들도 폐암만은 피해 가지 못한다. 최근 들어서만 현대 자동차를 만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 폐암으로 별세했다. SK의 최종현 회장과 창업주인 그 형 최종건, 금호의 박정구 회장 등도 모두 폐암으로 작고했다.
이처럼 무서운 병이지만 걸리지 않는 방법이 있다. 담배를 피지 않는 것이다. 폐암 환자의 90%는 담배를 핀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담배를 피지 않으면 거의 걸리지 않는다.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도 폐암에 걸렸다면 그건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미국 방송의 대표적 간판 스타 피터 제닝스(67)가 7일 폐암으로 숨졌다. 지난 4월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그 때도 수술을 하지 않고 화학 치료를 받는다고 해 이미 수술할 단계가 지났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처럼 빨리 갈 줄은 몰랐다. 제닝스 정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면 정기 검진도 철저히 했을 것이고 첨단 치료법은 다 썼을 텐 데도 생명을 얼마 연장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4월 “건강이 회복되면 돌아오겠다”고 말했으나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의 죽음으로 CBS의 댄 래더와 NBC의 탐 브로커, ABC의 피터 제닝스 3거두가 진행하던 앵커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공교롭게 브로커와 래더가 은퇴를 발표하자마자 제닝스의 폐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은 케이블 TV의 범람으로 위세가 많이 약해졌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는 이 세 사람이 뉴스라 하면 뉴스고 아니라고 하면 아니었다. 미국 가정의 절대 다수가 그들의 입을 통해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 중에서도 제닝스는 좀 특이한 인물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9살 때부터 토론토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어린이 쇼를 진행하는 것으로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그 바람에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나중에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은 후에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했다고 한다.
캐나다 TV의 앵커로 일하며 미국 전당대회를 취재하러 왔다가 ABC 방송 간부의 눈에 들어 26살 때 ABC 뉴스 앵커 자리를 맡게 된 그는 초고속 승진을 했으나 월터 크롱카이트 등 당대의 거물들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몇 년 후 물러나지만 좌절하는 대신 베이루트 주재 특파원으로 부임해 중동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으며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를 심층보도하면서 14차례의 에미상과 2차례의 피바디상, 7차례의 외신기자 클럽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언론인으로서 자리를 굳혔다.
1983년 그가 다시 앵커 자리를 맡자 “가장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언론인”이라는 평을 받으며 대중적인 인기도 얻기 시작, 한 때는 래더와 브로커 시청자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애청자를 갖고 있었다. 60년대 베를린 장벽이 들어설 때부터 80년대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큰 사건이 터질 때면 그는 어디든지 달려갔다. 그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얘기도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터졌는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왔다. 그는 또 미 50개 주 전역에서 보도하고 9/11이 터졌을 때 60시간 뉴스를 진행한 기록을 갖고 있다.
골초였던 그는 한 때 담배를 끊었으나 9/11 이후 다시 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좀더 일찍 금연을 했더라면 미국인들은 온화하고 유려한 그의 목소리로 뉴스를 더 들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미국의 방송사의 한 막을 장식한 그의 명복을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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