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에서부터 차를 운전해 캐나다 로키와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다녀온 올 휴가 여행은 먼 훗날까지 추억의 갈피에 꽂혀 있을 것 같다.
내 영혼의 우물 안을 들여다 볼 기회라고 기대하며 떠난 여행이었다. 운전을 즐기는 죽마고우 J의 가족과 함께 8명이 차를 렌트해 9박10일 5,182마일의 대장정에 올랐다. 시애틀 여동생 집에서 묵은 이틀을 뺀 7박중 밴프와 재스퍼의 모텔에서 3박과 1박을 했고 나머지 사흘 밤은 차에서 보낸 강행군이었다.
일정은 짧고 장관은 지천으로 많았기에, 주간 이동을 제외하고도 사흘 밤을 차에 기름을 넣고 몸에서 물을 빼내는 시간(두 가지 일은 대체로 동시에 이루어졌다) 외에는 멈추지 않고 달려야 했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민들레처럼 강인하게 로키 곳곳에 뿌리 내리고 사업을 하는 캐나다 한인들도 볼 수 있었다.
태고의 모습 그대로인 로키는 불과 2년만에 다시 찾았음에도 여전히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천당 다음으로 좋은 곳”이라는 한 지인의 극찬이 지나치지 않았다.
‘절경’이라는 단어론 다 표현할 수 없는 풍광을 담느라 기자는 매번 가족들과 뒤처져 사진을 찍고 달음박질로 따라잡아야 했다. 든든한 용량의 메모리 카드로 무장한 새 SLR 디카의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나를 보고 11세 아들이 “사람들이 왜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는지 모르겠다. 안 그랬으면 필름이라도 떨어져 더 못 찍을텐데…”라고 탄식했을 정도였다. 평소 게임을 끼고 살던 아들은 여행 내내 곧잘 앞장을 서며 잘도 걸었다.
휴가가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한 지금도 삼삼하다. 침엽수림을 허리에 두르고 이마에는 만년설을 얹은 산맥이 만들어낸 수많은 보석들이.
궂은 비를 맞으며 감상한 요호 국립공원의 장대한 타카카우 폭포, 한 때 은성한 타운이었으나 영화의 잔해만 남은 터에 야생화만 흐드러지게 피어 인생의 영고성쇠를 상기시키는 밴프 국립공원의 뱅크헤드 폐광촌,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영혼을 울리는 물소리를 들려주는 잔스턴 캐년, 하늘색 가슴에 산그림자를 품은 재스퍼 국립공원의 페이토 레익….
여름 속의 한 겨울을 느끼게 해 준 광활한 콜롬비아 대빙원, 해거름에 본 얼음이 둥둥 떠있는 산정의 에인절 폰드, 강으로 모난 바위들을 숱하게 흘려보낸 말린 캐년, 스피릿 아일랜드를 깊숙이 숨기고 있는 말린 레익, 하나같이 잊을 수 없는 풍경들이다.
시애틀을 떠나 국경으로 향하는 길에서 지나친 안개 바다, 귀가 길에 들른 북가주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한 산정에서 내려다본 구름바다도 뇌리에 각인됐다. 여행기간 내내 바다, 호수, 강, 폭포, 시냇물, 온천,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물 등 수많은 물과 만나고 헤어졌다.
무생물 뿐 아니라 우리 차와 충돌 직전까지 갔던 사슴, 고갯길에서 광물을 섭취하던 산양 가족, 유유자적 찻길을 건너던 조랑말, 앞에서 경광등을 켜며 달려와 우리를 긴장시켰던 캐나다 경찰 등과도 조우해 긴긴 여정이 심심치 않았다.
우연히 획득한 보물도 있었다. 캘리포니아 북단 끝이 안보이는 삼림지역에서 운전자 교체를 위해 차밖으로 나간 한밤중, 하늘에서는 뭇별들이 찬연한 빛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별들을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내려와 있었고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은하수도 굽이굽이 흐르고 있어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우연한 횡재의 백미는 지도를 잘못 보는 한 순간의 실수로 엉뚱한 산간 벽지에 가 닿은 것이었다. 남서쪽 밴쿠버를 향해 재스퍼를 출발했는데, 240여마일, 3시간30분을 달린 끝에 북서쪽 ‘프린스 조지’라는 곳에 당도했다. 밤이 이슥할 시각인 9시30분까지도 하늘이 훤한 것이 신비하다고 감탄하면서도 길 잃은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덕분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동무 삼아 산길을 달리며 공장 불빛을 밤새 밝힌 캐나다 산간마을들을 일별하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상의 모든 집마다 지은 이가 있듯 만물의 창조자가 존재함을 확인시켜 준 이번 여행의 추억은 기자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삶이 고단할 때 따스한 등불이 되어줄 것 같다.
꼭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갈 만한 곳이 많다. 이번 여름에는 많은 한인들이 길을 떠났으면 좋겠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더욱.
추억은, 고단한 인생 길에서 우리를 천리나 걷게 해 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김장섭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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