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한국이나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관심사다. 양쪽 다 무섭게 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 현상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보면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 연방은행 의장의 견해를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그렇게까지 걱정할 수준은 아니나 몇몇 지역에서는 투기의 징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투기는 경기부양을 위한 미국 금융정책의 결과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불균형에 의한 현상으로 본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이 불균형을 스스로 해결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우선 부동산 가격 상승을 누군가가 잘못해 생긴 현상으로 설명한다. 주범이 누구냐는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대략 정부의 입장은 선량한 대다수 국민은 착실하게 사는데 돈 가지고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투기꾼들이 두 채 세 채씩 집을 사재끼기 때문에 부동산 값이 너무 오른다는 설명 이다.
이 두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미국은 정부가 매우 똑똑하고 국민은 모두 투기심 없는 훌륭한 사람만 모여있는 사회인 반면 한국은 국민중 투기심으로 사회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된다. 미국에서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사회의 자연스러운 경제현상이고 한국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양국 모두 비슷한 원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2000년 주식시장 붕괴, 9.11사태와 테러와의 전쟁, 대형기업들의 회계부정 사건 등으로 위축될 수 있었던 경제를 심한 침체로 떨어뜨리지 않고자 연방은행에서 돈을 많이 풀고 정부는 세금을 낮추었다.
늘어난 돈으로 소비를 늘이는 효과를 가져와 경제가 잘 풀려나갔지만 그 결과 시중에는 투자처를 찾아 떠도는 돈이 많이 생겼다. 기업들이 그 돈을 써서 경제활동을 늘렸으면 떠도는 돈이 기업투자로 들어섰을텐데 기업은 계속 불안한 마음에 투자를 늘리지 않아 결국 많은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게 된다. 그 결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 생겼다.
한국은 무역흑자와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가로 외환 보유고가 늘고 부실화된 대형 금융기관들에게 공적자금을 지원하면서 시중에 돈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렇다고 내수가 그저 그런 상황에서 특별히 기업투자가 늘어나지도 않았다. 떠도는 돈이 늘어났다. 부동산에 집중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결국 부동산 투기의 원인은 떠도는 돈의 증가인 셈이다. 그런데 같은 현상을 놓고 한 쪽은 경제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시장기능에 의한 조정을 기대하는데 한 쪽은 누군가가 잘못했다고 한다. 투기꾼이라는 악한 집단이 있다고도 한다.
돈으로 가장 큰 수익을 내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돈이 많이 돌아 어느 특정 투자에 돈이 몰릴 때 투기는 발생한다.
90년대말 주식시장 같은 대형 투기는 경제 구조가 이상하게 비틀리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돈이 떠돌 때 인간의 고수익에 대한 환상이 연결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누가 나빠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사기로 투기를 부채질하는 것은 나쁘다. 미국에서도 회계부정 연루자는 처벌되고 있다.
그러나 사기가 아닌 투기는 자본주의에서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행위이며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동기 요인이 된다.
닷컴 시대의 투기는 많은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주었지만 아마존, E-베이, 야후 같은 새 시대의 주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다.
부동산 급등현상이 나쁜 투기꾼 때문이라는 발상은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집사기가 난감해진 저소득층에게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줄지 모르나 경제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해 진정 효과있는 정책 수립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현상중 나에게 불리한 결과를 외부탓으로 돌리고 높은 위험을 감수해 이루어낸 성공을 부정함으로써 적극적 창조 정신을 억누르는 전체적 비관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이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살고 싶은 사회가 못되는 이유중 하나이다.
최운하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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