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춘기(골동품 복원가)
“어느날 수용소(아우슈비츠 유대인)에 있던 발전소가 폭발하였다. 게슈타포가 수사한 결과 세 명의 용의자가 검거되었다. 전 수용소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 사람은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슬픈 눈을 가진 천사’ 같은 소년이었다. 밧줄이 목에 감기고 발 밑에 의자가 게슈타포의 발길에 걷어차여 넘어지자 어른들은 ‘자유 만세’를 외치고 이내 죽어갔다.그러나 소년은 굶주림으로 인해 몸이 너무 가벼워 금방 죽지를 못하고 대롱대롱 매달려 몸부림
친다. 밧줄은 30분 이상이나 흔들렸고 수용소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밧줄에 버둥대는 소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때 누군가가 외친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위젤은 자기 심장 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가 어디 계시냐고! 그는 여기에 계시다. 이 교수대에 매달려 처형되고 있다”(Where is he! Here he is. He is hanging here on the gallows.)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출생 유대계 미국인 엘리 위젤(1928~ )의 자전소설 <어둠(Night)>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엘리 위젤! 그리하여 위대한 노벨 평화상을 한 몸에 한 엘리 위젤! 그는 그의 자전적 소설 <어둠> 속
에서 하나님을 교수형에 처하고 말았다. 그 하나님은 누구인가! 굶주림으로 인해 가벼온 몸 탓으로 제 시간에 죽지도 못하고 오래 오래 밧줄에 매달려야 했던 소년의 눈동자를 기억하는가!
그 소년은 누구인가!속물들을 대신해 죽어가는 천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시험대에 오른 청개구리인가! 누군가가 답하라. 하나님은 여기 계신다고! 태풍 앞에 뿌리채 뽑혀 나가는 소나무 같이 나의 신앙심이 송두리채 흔들리고 있다. 나는 가톨릭 신자다.
얼마 전 빌리 그래함 목사의 전도대회가 플러싱 메도우 팍에서 10만 군중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치루어졌다. 이 대회를 일부 언론에서 ‘마지막 십자군 출정’이라는 큼직한 대목으로 보도한 기사를 읽고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전도대회의 당사자 그래함 목사가 이 기사를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하다.
얼마 전에 서거한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유죄 선고를 받은 갈릴레오(1564~1642)에 대한 종교재판에 잘못 되었음을 시정한 바 있다. 그리고 십자군전쟁(1096~1270) 동안 십자군이 자행한 잔학행위를 반성하고 특히 이슬람권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는 성명을 전세계에 발표한 바 있다.
기억하는가!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을 도발하면서 전쟁의 성격을 십자군전쟁에 비유하다가 사회 각계 각층으로부터의 비난은 물론 부시의 강력한 정치기반인 원리주의 기독교로부터도 시정 요구를 받고 말꼬리를 내려버린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류 역사는 십자군전쟁 200년을 가장 부도덕하고 잔인한 종교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적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전선이 없는 전천후 전쟁! 테러와의 전쟁은 바로 종교전쟁이다. 종교전쟁은 성전으로 위장되고 순교로 미화된다. 십자군전쟁이 바로 그랬다.
세속사회에서는 마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타협과 협상을 통해 슬기롭게 해결해 나간다. 그런데 사랑과 자비로 똘똘 뭉친 종교집단은 타협과 협상이 없다. 타협은 이단이요, 협상은 배신이다. 그리하여 모든 비극은 하나님의 시험대로 돌려 버린다.
하나님(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종교전쟁(테러와의 전쟁)을 무슨 수로 막겠는가. 내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나가 싸우다 죽겠다는데 새총으로 막겠는가. 핵폭탄으로 막겠는가! 길은 오직 하나 ‘신’의 대행자요, 사자라고 지칭하는 성직자가 나서는 길 뿐이다.
종교 성직자! 각 종파마다 넘쳐흐르는 성직자들! 종교성직자들은 테러와의 전쟁(종교전쟁)을 본질적으로 비판할 자격이 없다. 방관할 처지는 더욱 아니다.나와서 해결하라.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제에 의해서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하나님을 구할 자, 오직 성직자 뿐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은총을 듬뿍 받은 만국의 성직자는 종교전쟁을 종식시켜 이에 보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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