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법 위반-국민 알권리’ 명분 외에 보도경위도 감안될 듯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입수해 보도토록 한 MBC 이상호(37) 기자가 변호인과 협의를 거쳐 주중 검찰에 출석할 것으로 보여 검찰의 이 기자 사법처리에 대한 내부 의견조율이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된다.
검찰에서는 현재 대의명분상으로 `실정법(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따른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행동이다’는 목소리가 뒤섞여 나오고 있다.
우선 국정원에서 유출된 불법도청 테이프를 박인회(58.구속)씨에게서 입수해 보도한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16조(불법도청 내용을 공개ㆍ누설한 자도 처벌한다)에 해당하며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침해행위라는 게 강경론자들의 논거다.
이들은 또 일반적인 언론의 명예훼손 사건과 달리 통비법 위반 사건은 공익성과 사실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고 서울남부지법이 내린 방송금지가처분 결정에도 위배되는 만큼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서 지적하듯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며 형법 20조의 정당행위 규정(법령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나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에 해당돼 처벌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검찰이 문제삼는 불법 도청행위도 사실상 이번 보도를 통해 확인됐고 권력의 불법행위 견제를 위한 보도를 제한하면 언론의 기능이 위축돼 공적사안에 대한 국민의 자유로운 토론을 저해하게 되고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리도 형해화한다는 논리도 처벌불가론에 무게를 보태고 있다.
검찰은 일단 이 기자 소환에 대해 순수하게 수사상 목적이라 다른 생각은 가질 필요도 없고 가질 사안도 아니다며 원칙론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는 수사를 통해 불법도청과 유출 경위를 밝히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이 기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하는 만큼 언론탄압이라고 볼 수 없으며 이 기자의 처벌여부는 사건의 실체를 밝힌 이후에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을 내보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이 기자가 일단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더라도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기자의 테이프 입수 및 보도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그치지 않고 박인회씨나 공운영씨가 삼성을 상대로 시도했던 금품요구가 실패로 돌아간 데 대한 `보복’에 악용됐다면 사법적 제재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공익적 보도를 우선시 하지만 `특종’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이번 보도는 공익보다 박인회ㆍ공운영씨의 사익(私益), 혹은 MBC측의 사익(社益)에 치우쳤다고 볼 여지가 있게 된다는 것.
과거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가 이종찬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 사무실에서 `언론대책문건’ 7장을 훔쳤다가 수사 착수 3년만에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을 때도 `기자로서 직무상 한 일’이라는 점이 무죄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MBC는 법원의 방송금지가처분 결정 뒤에 테이프 내용 보도를 자제하다 타 언론사에서 먼저 `MBC가 도청 테이프를 입수했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결국 보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사정이 변수가 될 수 있다.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당일 이미 취재를 완료했던 사안을 보도하지 않고 보류했다면 언론사로서 합법의 범위내에서 보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여지가 있고 그 후의 상황은 국민 여론상 보도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과 전례 등에 비춰 검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 지나친 부담을 갖지 말고 이 기자를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구체적인 판단은 법원에 맡기는 게 좋다는 지적이 법조계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 이 기자에 대한 처벌은 `실정법 위반’과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대의명분 뿐 아니라 실제 보도가 이뤄지기까지의 경위가 검찰 수사에서 어떻게 밝혀지느냐, 그리고 기소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수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lilygarden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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