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이런 알 수 없는 일의 하나로 꼽힐만한 것이 최근 미국 집 값이다. 미국 주택가 상승이 인플레와 소득을 앞질러 가고 있다며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될 수 없다는 전망에도 불구, 일부 지역 집 값은 7~8년째 두 자리 숫자의 상승을 거듭해 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이민자 유입이 계속 돼서라느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느니 이자율이 낮기 때문이라느니 갖가지 설명을 내놓고 있으나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왜냐 하면 1990~97년 부동산이 맥을 추지 못하는 시절에도 지금처럼 이민자와 인구는 꾸준히 늘었고 지난 수년간 미국 내 신규주택 수는 수백만 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에 비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는 것도, 공급이 준 것도 아닌데 집 값은 폭등한 것이다.
이자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1년여에 걸쳐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는 9차례나 단기 금리를 인상했다. 단기 금리가 1%에서 3.25%로 올랐으면 당연히 모기지 부담도 늘어났을 테고 그러면 집을 사기도 힘들어졌을 텐데도 주택 매매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최근 들어 그 비밀에 대한 답을 주는 통계들이 나오고 있다. 전국 부동산협회(NAR) 자료에 따르면 신규주택 구입자의 42%와 전체 구입자의 25%가 전혀 다운 페이먼트를 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집 값의 105%를 융자받아 5%는 수수료 등 융자 비용으로 쓰고 있다. 자기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을 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부동산 붐에 편승해 돈을 벌려는 은행들은 소득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융자해 주는 ‘간이 서류융자’(low doc loan)나 ‘무서류 융자’(no doc loan)를 해주느라 정신이 없다.
‘노 다운’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모기지 부담은 소위 ‘창조적 융자’를 통해 해결한다. 원금은 전혀 갚지 않고 이자만 상환하는 ‘이자 상환론’(interest-only loan)은 양반이고 이자도 채 못 갚아 해가 가면 갈수록 원금이 더 커지는 ‘원금 증가론’(negative amortisation loans)이 최근 인기 상품이다. 심지어 갚고 싶은 만큼만 갚는 ‘융통성 있는 융자’도 있다. 가주에서 올해 나간 모기지의 60%가 이런 것들이다. 불과 3년 전인 2002년만 해도 이런 론을 이용하는 사람은 전체의 2%에 불과했다.
이런 론들의 특징은 절대다수가 변동 이자율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주 등 부동산 붐이 거센 지역의 경우 전체 론의 절반 이상이 변동이며 한인의 경우는 80%가 그렇다는 것이 은행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변동 론은 물론 차후에 이자율이 올라가면 그만큼 상환 부담이 커진다.
주택 구매자가 이렇게 위험한 방식의 융자를 택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집 값이 워낙 올라 이런 방식이 아니고서는 페이먼트를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또 하나는 페이먼트 할 여력이 있어도 미련하게 원금을 갚아 가느니 이자만 물고 페이먼트를 낮춰 집을 두 채 사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계산이 들어맞으려면 집 값은 계속 오르고 금리는 계속 낮은 상태로 머무는 것이 필수적이다.
얼마 전 일부 지역 부동산에 거품이 끼었음을 지적한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최근 연방 의회 청문회에서 이런 ‘창조적 융자’가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때 지금 미국의 일부 지역처럼 뜨거운 부동산 경기를 자랑하던 일본의 집 값은 1991년 이후 14년째 하락, 지금은 그 때 시세보다 40%나 내려갔다. 90년대 초 일본이 이랬다.
또 작년까지 미국보다 더 달아올랐던 영국과 호주의 부동산은 이제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창조적 융자’에도 불구, 미국 신규 주택 중간 가는 지난 두 달간 연속 하락해 8%나 떨어졌다.
붐과 버스트는 경제 현상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사에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다. 어느 날 예고 없이 붐이 끝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사람은 바로 ‘창조적 융자’ 이용자들이다. 아무리 집을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더라도 그것만은 피할 것을 권하고 싶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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