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와 본적이 없는 낯선 도시 산타모니카…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은 도시 산타모니카에 그녀는 앉아있었다. 그래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이 곳에 머물다 떠나는 거야.
그런데 어디로 떠나야하는 거지, 그녀는 커피 잔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바로 모퉁이만 돌면 터미널 4, 아메리칸 에어라인이었다. 그녀는 아마 한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엘에이 공항에서 텍사스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때 공항 밖으로 나와서 걸어보자는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충분하였다. 숨을 후우욱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내쉬었다.
19년만의 한국 행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엘에이 공항도 19년만이 아닌가, 제이드를 따라 미국에 도착하여 왔던 첫 공항이었다. 이상하게도 엘에이 공항에 대한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좀 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는 것 외에 특별히 다른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얼마나 힘들게 끊었다 피웠다를 반복하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문득 그녀는 방금 나온 탐 브래들리 인터내셔날 터미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던 것이었을까, 누구지하는 생각과 동시에 비행기 옆 좌석에 앉았던 무슨 대학 무슨 과 교수라던 김정현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정현이 성큼 다가왔다. 아직 여기 있네요. 그녀는 대답대신 웃어 보였다. 정현은 그녀 옆에 나란히 주차장을 향하여 섰다. 잠시 그녀는 정현이 왜 자신과 나란히 서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곧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현이 손에 거머쥐고 있던 양복 단추가 떨어지려고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정현의 와이프는 어떤 종류의 여자일까, 해외출장을 떠나는 남편 양복저고리 단추를 한 번 정도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까, 속옷은 잘 챙겨주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자 그녀는 공연히 정현을 바라보았다. 정현은 그녀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슬며시 웃었다. 아, 저 웃음. 갑자기 마음 속 어딘가에 깊이 숨겨 두었던 상처 같은 것들이 밀치고 올라와 그녀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잘 나가던 잡지사 기자생활을 그만 두고 제이드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던 이유의 그 사람, 그녀 자신에게조차도 꼭꼭 숨겨놓아야만 했던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 어리석지 말자, 다짐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미친 듯이 사랑했고 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승수, 차마 이름은 잊지 못하였나보다. 그래, 잡을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그가 말했다. 그녀를 잡아서 어떻게 해보자는 생각이 있기나 했을까, 이미 애가 셋이나 있었던 그는 소문난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역대의 어느 미스코리아보다도 우아하게 웃던 그의 와이프는 그녀를 보는 순간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그녀와의 관계를 여자의 그 예리한 육감으로 알아챘다. 그 우아함은 다음날 그녀의 집을 찾아와 무참히 무너졌다. 어떻게 해도 너를 용서하지는 않겠어. 니가 이 대한민국에서 단 한번이라도 웃는 꼴을 절대 보고 있을 수는 없어. 그녀는 국제학회 세미나에 취재를 하러 나가서 간간이 눈물을 닦아냈다. 세미나에 참석차 왔던 텍사스 주립대학 교수인 제이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감추지도 않고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정현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라이터를 켰다. 그녀는 정현이 담배에 라이터 불을 붙이는 것을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정현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다음 후우욱 불다가 담배를 피겠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호텔 셔틀이 늦게 오네요. 차라리 렌트를 할 걸 그랬나. 그가 이어서 말했다. 정현은 담배를 두 모금을 빨고 휴지통으로 담배를 버리러 걸어갔다. 담배를 비벼 끄고는 휴지통의 담배 재떨이에 버렸다. 그녀는 그의 동작을 관찰이라도 하듯 바라보았다. 정현이 돌아와 그녀를 보고 다시 웃었다. 상처가 고통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정현이 웃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지만 내버려두었다. 건널목 너머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그녀는 그 버스를 바라보았다. 그가 셔틀버스를 향해 움직이려고 하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건널목을 건넜다. 그리고 셔틀버스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셔틀버스를 올라타려던 정현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다시 돌리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가 다시 건널목을 건너오려고 손을 내밀어 신호등의 버튼을 누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섰다. 파란 불로 바뀌자 그가 그녀에게 다시 건너왔다. 그리고 주차장을 향하여 그녀와 다시 나란히 섰다.
그녀는 텍사스로 가는 수트케이스를 찾았다. 정현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렌트 회사에서 차를 빌렸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산타모니카의 어느 호텔이었다. 엘에이에 일주일동안 학회세미나에 참석하러 온 정현은 멀리 갈 수가 없었고 그녀는 아무 곳이나 상관없었다. 산타모니카의 시원한 바닷바람은 텍사스의 후덥지근한 기후와 많이 다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정현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녀는 주문을 할 때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맛없어 보이는 샐러드를 포크로 휘적거리다 내려놓았다. 식사가 끝나고 팜트리가 길게 휘어져 바람에 흔들거리는 산타모니카 거리를 걸었다. 그녀는 정현의 팔에 팔을 끼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눈을 뜨자 햇살이 눈부시게 창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대로 누워있었다. 정현은 보이지 않았다. 아, 아침에 엘에이 어딘가 세미나에 간다고 했었지. 엘에이는 그녀도 정현도 잠시 머물다 떠날 도시였다. 그러나 어쩐지 익숙하고 낯설지가 않은 것은 자주 접하는 소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대충 옷을 걸치고 거리로 나갔다. 한 쪽 모퉁이에 스타벅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번도 와 본적이 없는 낯선 도시 산타모니카,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은 도시 산타모니카에 그녀는 앉아있었다. 그래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이 곳에 머물다 떠나는 거야. 그런데 어디로 떠나야하는 거지, 그녀는 커피 잔을 움켜쥐었다.
오후가 되자 정현이 돌아왔다. 정현은 피곤해 보였다. 그가 샤워를 하고 나오며 웃었다. 그녀는 그에게로 다가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약간 당황해하기는 하였지만 그녀를 안았다. 무얼 먹었어? 그녀는 웃었다. 무엇을 했나보다 무엇을 먹었나라는 정현의 질문이 그녀를 웃게 만들었다. 커피요. 그는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팔을 끼고 산타모니카의 식당을 기웃거렸다. 그는 한인식당을 찾기를 바랬으나 그녀는 허름한 피자집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난 피자를 안 좋아해.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맞은 편 자리에 앉으면서 그가 말했다. 그녀도 피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제이드는 한국 음식을 싫어했다. 특히 김치를 싫어했다. 그녀도 점점 김치를 안먹고 살아가는데 익숙해져갔다. 어쩌다 지독하게 한번씩 김치가 생각나면 혼자 한인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시켜먹고 한국사람들을 실컷 구경하다 돌아오면 한동안 한인식당에 가지 않아도 됐다. 어느 날, 학교에 한국 학생이 열여덟 명이나 들어왔다고 지나가는 투로 제이드가 말을 던졌다. 19년 전, 생물학과에는 단 한 명의 한국 학생이 있었다. 졸업을 하자 너무 더워요. 하면서 보스턴으로 떠났다. 그 뒤 한 두 명 입학을 했다 졸업을 했다하더니 이제는 오고가는 한국 학생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이 한국에서 왔든 타주에서 왔든. 당신은 너무 차가운 여자야. 얼음 같아. 제이드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단정을 지으려는 듯 말했다. 그 뒤, 제이드는 한국 여학생과 북미로 여행을 떠났다가 열흘만에 돌아왔다. 그녀는 베개를 들고 아래층 부엌 옆의 모닝 룸 타일바닥에 와서 누웠다. 이혼해. 제이드가 절망스러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혼해. 그녀의 대답을 들은 제이드는 눈물을 흘렸다.
정현은 그녀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당신은 누구야? 그녀는 엷게 웃었다. 그는 익숙하게 그녀를 안고 약간 오랫동안 키스를 했다. 피자가 나왔다.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데, 아마 먼 길을 가야했나, 그래서 쉬었다 가고 싶었던 건가. 오래 쉬었으면 좋겠어. 아, 그가 영문학 교수라고 말했던 생각이 났다. 안식년에 근무할 학교를 고르고 있다고 말했던 것도 생각났다. 그녀는 피자를 한 쪽 집어 그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그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나이프로 피자를 자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가 피자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맛이 괜찮아. 먹어봐. 당신이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안 되는 거지? 웃지마, 웃지 않으면 주름이 보이지 않아, 헷갈려. 내가 아주 젊은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있는 거 같아. 몇 살인지 말하지 않는 것도 좋겠어.
그가 말했다. 이렇게 어린 기자는 우리 부서와 어울리지 않아, 게다가 미혼이잖아. 어떻게 애를 데리고 같이 일하라는 거야. 그녀는 태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그는 그녀를 데리고 강원도로 현장취재를 떠났다. 폭설이 내렸고 도로가 통제됐다. 가까운 호텔을 찾았다. 거봐, 이럴 때 씩씩한 아줌마 기자를 데리고 왔다면 싸구려 여관방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헛되고 헛된 인생얘기라도 하며 밤을 지샐 거 아냐. 그녀는 한참을 뒤척이다 그의 방을 노크했다. 그는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문에 기대어 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고 침대로 갔다. 어떡해야 하는 거니,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 사랑해요, 그런 어리석은 말도 하지 말아.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명사야. 사랑해요. 그녀는 커다란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느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낼까, 동부는 너무 추워. 한국 겨울이 춥다지만 동부의 강바람에는 어림도 없어. 보스턴의 찰스 강바람은 겨울 내내 모든 추억을 들춰내고도 직성이 안 풀려서 오월까지 매서운 바람이 불어. 맨해튼의 허드슨 강바람은 어떻구. 버클리가 낫겠어. 그는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자 이제 내가 지켜볼 차례야, 당신이 오자고 한 피자 집이야, 난 피자를 싫어해. 그는 피자를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고 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며 피자를 껌처럼 씹어먹었다. 제이드와 골든 게이트 브리지에 갔을 때 사나웠던 추위가 생각났지만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정현을 바라보았다. 2월이었다. 한낮에는 여자들이 모두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웃옷을 벗어제치고 다니다가 저녁이 되자 여자들은 스웨터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입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이곳 캘리포니아 기후라도 어설픈 사계절이 있으며 더러는 매서운 강추위가 몰려오기도 하였다.
어떻게 겨울도 없는 텍사스 같은 곳에 가서 살려는 거야. 갑자기, 낯선 남자 그것도 한국 남자도 아닌 미국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도 놀랄 일인데 들어본 적도 없는 텍사스라는 곳으로 떠난다는 소리에 그녀의 엄마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사계절이 없다던 말만 인상에 남아서였는지 겨울도 없는 텍사스 타령만 했지만 하나뿐인 딸을 정녕 보낼 수 없어 하는 소리라는 건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엄마 마음 같은 건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아, 얼마나 못된 딸이었나, 이제 그 어머니가 안 계시다. 자다가 일어나셔서 아버지 무릎에 갑자기 머리를 떨구고 돌아가셨다. 장례식은 간단했다. 19년 동안 한번도 만날 수 없었던 딸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안정되면 엄마, 아버지하고 한번 모시러 올게요. 무엇이 안정된단 말인가. 미국 생활이 다 그렇다더라. 애써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그녀의 엄마가 정말 걱정하던 일은 딸이 끝내 잘 살고 있어 보이지 않아서였다. 마음대로 전화도 하지 못하였다. 제이드가 전화라도 받으면 뭐라고 할지 몰라서였다. 엄마, 조금만 그래도 더 사셨으면 한번 내년에는 모시고 오려고 했는데, 20년이 지나기 전에는 한번 모시러 나가려고 했었는데, 안정된 척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애슐리가 너무 보고싶어졌다. 아, 내 딸,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이가 생겼다. 제이드가 눈치를 챘다. 심한 입덧에 일어날 수조차 없는 상황에 냉면이 생각났다.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무엇이 먹고 싶은가 묻는 제이드에게 끝내 말하지 않았다. 제이드가 한국 수퍼에서 사왔는지 김치를 사왔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제이드는 아무 말 없이 쓰레기통에 쳐 박힌 김치 통을 원망이라도 하듯 바라보았다. 학교에 휴가를 신청하고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고 입덧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학교에 다시 나갔다.
정현은 스웨터를 집어들었다. 왜, 묻지 않는 거야? 그녀는 정현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물어보아야 하는 건가. 무엇을 물어볼 필요가 있는 건가, 도대체 무엇이 궁금하단 말인가, 아니, 정현에 대해서 어쩐지 다 아는 느낌이 들어서 그녀는 웃었다. 한가족으로 보이는 아내와 남편, 남자아이,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산타모니카 해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정현의 팔을 끼고 걸으며 멀어져가도록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난 귀찮아. 아내와 둘이 살기에도 너무 힘든 일이 많은데 어떻게 아이들까지 기르며 살 수 있겠어. 정현은 그녀가 바라보던 아이들이 더 멀어지도록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그냥 스쳐 지나지 못하였다. 잔뜩 웃음을 띄고 아이들이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걸어오기를 기다리듯이 바라보곤 하였다. 아이들은 그만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니 애를 셋이나 낳고도 전혀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씩 낳을 때마다 남편을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하여 집으로 더 묶어놓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애슐리만 없었다면 그녀는 그 다음 해에 아마 한국으로 돌아갔으리라. 제이드는 점점 더 그녀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났다. 그녀는 애슐리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듯 그 아이를 위해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움직였다. 어느 날, 그녀가 심한 감기 몸살이 나고 의사는 당분간 무리한 일을 하지 않고 쉬어야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제이드는 애슐리를 안고 산책을 나가려 하다가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애슐리를 못 믿을 낯선 사람에게 맡기기라도 한 듯 걱정스럽게 올려보았다. 난, 애슐리 아빠야, 당신은 그걸 가끔 잊어버리는 거 같아. 제이드는 너무 갖고싶었던 장난감을 얻은 듯 애슐리를 꼬옥 안고 방을 나섰다. 제이드에게 안긴 애슐리는 아바아바하면서 입을 함지박 만하게 벌리고 웃었다.
전화를 드려야겠다. 벌써 텍사스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고 엄마를 갑자기 잃어버린 아버지가 무료하게 전화통 앞에 앉아서 딸의 전화를 마냥 기다리고 계실 모습이 생각나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는 제이드 생각이 났다. 분명 돌아와야 할 아내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면 그의 놀라운 직감력으로 절망감에 빠져 멍하니 데크에 앉아 한낮 햇살이 뜨거워져오는 것도 잊은 채 앉아있을 것만 같았다. 답답하도록 단순한 성격이었다. 어떻게 복잡한 생물을 전공하여 학자가 되었는지 의심이 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 간단한 일도 머리가 전혀 돌지 않았다. 그녀는 이질감으로 몸을 후르르 떨었다. 아, 이건 뿌리의 문제인지도 몰라. 언제나 텍사스의 뜨거운 태양 때문에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제이드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았다. 제이드와 그의 친구들은 언제나 그녀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들에게 그녀는 여전히 이방인이었으며 그들은 사실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는 일이었다. 바다로 낚시를 갈 거야. 그들은 접시만한 스테이크를 칼로 쓸어 피가 뚝뚝 묻어나는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녁이면 고래만한 오징어를 잡아 웃고 떠들며 칼질을 해댔다. 그녀는 몇 번의 동행 끝에 바다낚시를 그만 두었다. 제이드는 몇 번을 그만두더니 다시 그들과 합류했다. 그녀는 고독으로 병들어가고 있었다.
애비가 전화를 했더라. 그녀는 단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제이드의 전화를 받고 당황했을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도 같이 가기를 원해. 제이드는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검은 양복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제이드의 양복을 뺏어서 다시 옷장 속에 걸었다. 당신이 가서 뭘 해. 모두들 당신을 구경하느라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이 엉망이 될 거야. 당신 아버님 장례식 생각 안 나? 모두들 검은머리의 키 작고 못생기고 눈 째진 한국여자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잖아. 제이드는 그녀를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자, 저녁엔. 호텔 방으로 돌아와 그녀의 스웨터를 머리 위로 벗기며 정현이 말했다. 정현은 그녀의 커다란 유두가 드러나자 손으로 만지기 시작하다가 혀로 사탕이라도 핥듯 핥았다. 그녀는 정현의 바지벨트를 풀며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정현은 그녀의 치마를 들쳐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영원히 이곳에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오늘은 룸서비스를 부르는 게 낫겠어. 그녀는 문득 정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현은 그녀를 태연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녀는 정현을 밀어냈다. 그는 침대에 물러나듯 걸터앉았다. 당신은 누구야, 그녀는 창가로 가서 돌아서서 바다를 보며 필요 없는 질문을 던졌다. 몰라, 나도. 당신은 누구야. 그녀는 스웨터를 집어들어 입으려고 머리에 뒤집어썼다. 정현은 스웨터를 낚아챘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얼굴에 스웨터를 던졌다.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 창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일어나 문을 열었다. 낯선 여자가 서있었다. 좀 들어가도 될까요? 그녀가 문에서 물러나자 여자가 들어와 등을 돌리고 섰다. 그녀는 문을 닫고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키가 큰 편인 여자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몸매를 갖고있었다. 여자가 돌아섰다. 복도의 어두움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서른 초반 정도의 보기 드문 미인의 여자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소파로 걸어와 여자에게 앉으라고 권하고 맞은 편에 앉았다. 여자는 마주 앉았다. 김 교수님과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어떤 관계, 아무 관계도 아니지. 하지만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여자는 서울 어느 잡지사 기자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엘에이 공항에서 정현의 웃음이 생각났고 다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저를 데리고 어디든 가요.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럴 수 없어. 왜 이제야 내게로 왔니, 조금만 일찍 내게로 오지 그랬어. 난 당신이 없는, 당신이 보이지 않는, 당신이 생각나지 않는 먼 나라로 가겠어요. 그녀는 그가 가지 말라는 말을 하기를 바라기라도 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했다. 가, 나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금을 그어 놓았으니 가라구. 내가 죽으면 와서 봐. 금이 지워졌나. 차라리 저만치만 서서 바라볼 걸. 말하지 말 걸. 사랑한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껴야 하는 말이었어. 말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 거야.
부인과 딸 셋이 교통사고로 몇 년 전에 함께 죽었어요. 여자는 비어를 한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교수님이 신문에 십 년 동안 칼럼을 쓰시던 거는 알고 계시죠. 어떻게 알 수가 있어. 그녀는 정현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십 년 전 인가요, 학교로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처음 만났어요. 그 날, 그 자리에 난 나를 묻어놓고 돌아왔어야 했어요. 언제나 바라볼 수 있잖아요. 한 발자국이라도 내가 교수님께 다가갔다면 영원히 바라 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였죠.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셨어요. 언제나 아이들 얘기를 하려면 얼굴에 행복이 가득 묻어났죠. 그녀는 왜 낯선 이 여자로부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어야하나 여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암이세요. 칼럼을 그만 두셨어요. 안식년겸 휴가겸 쉬시면서 일하실 학교를 찾고 계셨어요. 아, 담배를 그만 피셔야하는데. 갑자기 정현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난 귀찮아. 출판사에서 그 동안의 칼럼을 정리하여 책으로 발간하려고 하는데 교수님이 허락을 안 하셔서요. 여자는 그녀에게 도와라도 달라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출판사 편집부장이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교수님이 증발하신 거예요. 세미나에는 오실테니 하고 기다렸는데. 여자의 눈에 눈물이 스쳤다. 정현은 세미나에 찾아온 여자를 스치며 호텔로 돌아왔던 것일까. 여자는 머물고 있는 호텔주소록을 보고 찾아 나섰다. 오늘 아침에 떠나셨어요. 샌프란시스코로. 여자는 일어나 절망감으로 거의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며 방을 나갔다.
머리를 짧게 잘랐다. 19년 동안 단 한번도 미장원에 가지 않고 손수 잘랐던 머리였다. 그러니 머리를 잘랐다고 하기보다는 길이가 길어지면 잘라내고 다시 길어지면 다시 길이를 잘라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애슐리도 중학교에 입학하도록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사춘기에 접어들며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제이드가 환영을 하였다. 아빠가 데리고 가겠어. 그때부터 제이드와 애슐리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애슐리는 무슨 일이든 엄마보다 아빠에게 의논하기를 좋아했다. 아빠한테 말할래. 그래. 그녀는 다시 한 걸음 물러나며 잠시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던 향수병이 재발했고 고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조금은 세게 불어대는 산타모니카 바닷바람이 가볍게 느껴지는 건 짧아진 머리 탓인가 그녀는 생각했다.
호텔에서 나와서 1번 프리웨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주위가 깜깜해지고 그녀는 더 이상 프리웨이를 달린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고속도로에서 내려서 마을로 들어섰다. 우선 짙은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었다. 마을은 이미 잠이 든 듯 고요했다. 적당한 모텔조차 있어 보이지 않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잠시 길가에 차를 세웠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내가 만약 죽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다시 제이드가 생각났다. 애써 떠올리려고 하지 않아도 호텔을 나서면서부터 몇 번인가 제이드가 생각났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개스는 꾸욱 한 번 더 눌러야 켜지는데 아마 한번만 눌러보고 돌려지지 않으면 계란 프라이조차 해먹지 않고 학교를 가지는 않았을까, 식빵은 냉동고 윗칸에 더 있는데, 떨어졌으면 수퍼에 가서 샀을 테지. 보리 식빵을 골라야할텐데, 아무 빵이나 집어들었겠지. 그녀는 차를 돌렸다. 다시 1번 프리웨이를 탔다. 조금 달려서 내려오자 산타모니카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정현과 묶었던 호텔이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우측 깜박이를 켰다. 그녀는 산타모니카에서 내렸다.
인터폰이 울렸다. 어차피 잠이 들었던 건 아니었지만 인터폰이 울리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 아닌가, 그녀는 인터폰을 집어들었다. 제이드한테 걸려온 전화였다. 그녀는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기다렸던 것이었나, 어떻게, 그건 아니었다. 제이드는 어제 체크아웃을 하며 사용한 비자를 추적하여 그녀가 묶고 있는 호텔을 알아냈다. 오후 2시 비행기를 예약했어. 당신이 돌아오기 싫다면 할 수 없겠지. 난 당신이 그냥 애슐리 졸업식에 당신이 와야할 것 같았어. 아, 곧 애슐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것이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는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는 짐도 챙겨줘야 할 것이다. 기숙사라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아이들은 무슨 행사처럼 일학년이 되면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했다. 해방이기도 했지만 곧 그것은 독립선언과 동시에 이제부터 세상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를 알게되는 첫 관문이기도 했다. 애슐리는 집에서 다니기를 원했지만 제이드가 기숙사로 들어가기를 권했고 애슐리는 제이드 말에 순종했다.
공항 셔틀버스는 인터내셔날 톰 브래들리 터미널을 지나 터미널 4인 아메리칸 에어라인 앞에 섰다. 그녀는 수트케이스를 부치고 밖으로 나와 정현과 서있었던 곳으로 갔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치 그곳에서 다시 웃고 있는 정현을 찾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며칠 전, 바로 며칠 전이었는데, 그녀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인 터미널 4로 발걸음을 옮겼다.
텍사스 공항에 도착하자 제이드가 나와있었다. 그녀는 제이드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처음 제이드를 만났을 때처럼 눈물이 났다.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고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제이드는 다가와서 그녀를 안았다. 돌아왔어, 나의 아내가. 제이드의 눈에 눈물이 스쳤다. 밴에 몸을 싫었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안방의 침대였다. 어떻게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서 잠이 들었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도 했지만 삼일 동안 잠을 잤다. 패밀리 닥터인 피터가 제이드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이 충격이 컸나보다, 제이드를 나무랐다. 진작 한국에 다녀 왔어야하지 않았냐며 아버지를 종종 찾아봬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긴 머리를 습관적으로 뒤로 넘기려는데 머리가 잡혀지지 않았다.
페덱스가 왔다. 정원잔디에 앉아서 책장을 막 넘기려던 순간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지가 일년이 넘었고 조금만이라도 머리가 어깨에 찰랑거리기라도 하면 미장원에서 가서 다시 잘랐다. 그런데도 그녀는 일어나면서 습관적으로 긴 머리를 뒤로 넘기려다 머리가 잡히지 않자 어색하게 손을 뻗치고 나갔다. 한국에서 왔어요. 미세스 럿셀. 그녀는 웃어 보이고 우편물을 받아들었다. 두툼한 우편물의 겉봉에 낯선 여자이름이 적혀있었다. 아, 산타모니카의 호텔로 찾아왔던 여자였다. 그녀는 잠시 손끝이 떨려오는 것을 가라앉히느라 정원의 벤치에 앉았다. 이웃 집 여자가 수영을 하다가 나왔는지 비키니 차림에 타월을 두르고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지겹게 더우려나 봐. 그러게요. 그녀는 직감적으로 정현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를 뜯어냈다. 끝내 정현은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년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죽었다는 내용과 죽으면서 칼럼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해도 좋다는 유언으로 책이 발간되었다는 짤막한 편지가 있었다. ‘모퉁이에서 서성이며’ 책 겉 표지에 낙서처럼 제목이 적혀있었다. 칼럼 제목이었던 것일까, 손끝에서부터 전해오던 떨림이 팔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간신히 책장을 넘겼다. 목차가 눈에 들어 왔다. 아, ‘산타모니카에서’ 그리고, 그 아래 첫줄에 ‘당신은 누구야’ 라고 적혀있는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알지 못할 그리움으로 온몸을 떨어야했다.
어머, 애슐리 엄마잖아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애슐리 엄마, 나 마이크 엄마예요. 애슐리 친구. 김치를 살까, 말까, 냉장고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그제야 애슐리와 같은 대학에 입학했던 마이크가 생각났다. 타주에서 얼마 전 이사를 왔다던가, 여기 한국 수퍼도 일년 전에는 없던 한국 수퍼였다. 한 시간 반정도 가서야 허름한 한국 수퍼가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도 최근 들어 한국가정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하며 한국 수퍼가 하나 더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집에서 한시간 거리이기는 하지만 올해 들어 몇 번째 왔던 수퍼였다. 오늘은 애슐리가 일학년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조금 멀어도 아빠와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하고 집으로 기숙사 짐을 싣고 돌아오는 날이었다. 30마일이다. 하지만 제이드에게는 태어난 마을을 떠나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괘씸했다. 나는 몇만 마일을 떠나서 왔어. 한번도 그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던 터라 그녀 자신도 놀랐지만 한 번 얘기가 나오자 그녀는 서러움이 멈춰지지 않아 꺼억꺼억 한참을 울어야했다. 애슐리의 짐을 담아오려고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나가던 제이드가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선 채 그녀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한국에 가서 살수는 있어. 당신이 원한다면. 마이크 엄마가 맛있다고 골라준 ‘고향의 맛’표 김치항아리가 덜커덩거리더니 차안에서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어머, 애슐리 엄마잖아요. 자꾸 마이크 엄마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김치찌개를 끓였다. 제이드는 아마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숨이 막힌다느니 하며 온 집안 창문을 열어 제낄테지. 애슐리는 유난히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다른 음식은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제이드의 밴이 골목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제이드와 딸, 애슐리가 타고 오는 밴을 맞으러 나갔다. 이십 년을 살았는데 한 십 년이라고 더 못살겠어. 그녀는 숨을 후우욱 들이마시다 천천히 내쉬었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제이드의 약간 구부정한 어깨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혼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문득 났다. 전화를 한번 드려야겠어. 제이드가 그녀를 보고 행복한 듯 웃어 보였다. 애슐리가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조수석에서 내리며 그녀를 보았다. 하이, 엄마!
이진이
▲본명 이희숙 ▲중앙대학교 작곡과 졸업 ▲고등학교 음악교사 ▲현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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