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많은 시간 같이 하지 못한 예쁜 딸 생각에 피자 한판 사들고 귀가한 한 아버지. 오랜만의 취기에 호기롭게 딸아이를 부르자 좋지 않은 표정과 볼멘소리로 대꾸하는 딸. 언성이 높아지자 눈 똑바로 뜨고 대드는 딸에 화가 나 그만 피자를 던진 것이 사랑하는 딸의 얼굴에 맞았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경찰. 사건 전말을 들으니 황당하다. 평소와는 달리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집요하게 캐묻던 학교 카운슬러는 피자 얘기를 듣고 아동복지국에 신고했던 것. 미국법은 자기 자식일지라도 신체적이나 정신적인 학대를 가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아동들을 직접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동학대 현장을 목격했거나 심증이 가는 경우에도 반드시 경찰이나 아동복지국에 신고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많은 한인 부모들이 잘못 알고 있는 법 조항 하나-12세 이전의 아동들을 집에 혼자 두면 아동학대에 해당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가주 법 어디에도 12세란 언급은 없다. 기준은 아이들의 긴급상황 대치능력이다. 비록 어릴지라도 위급 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누가 봐도 인정될 수 있을 때는 혼자 집에 둘 수 있고, 비록 16세라도 그런 능력이 없어 보일 때에는 아동 방치로 고발될 수 있다.
또 하나 한인들이 많이 저지르는 실수-한국에서 하던 대로 먼지떨이나 자로 자식들을 때리는 경우다. 어떤 경우에도 도구를 사용하거나 주먹으로 아이들을 때린 경우는 아동학대죄로 의심 받을 수 있다. 단,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몇 대 때려서 수 초 내에 그 매 자국이 사라지는 경우에는 훈육의 한 방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 한인들이 많이 쓰는 말 중 다음에 또 이러면 ‘죽여 버린다’는 말이 있다. ‘다음엔 엄벌에 처하겠다’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영어권에서는 ‘I will kill you’로 번역돼 자녀에게 이런 말을 할 경우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아동학대로 자녀를 빼앗길 수도 있다.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처벌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합리적으로 정해진 가정 내의 규율에 대한 위반에는 반드시 적절한 처벌이 즉각 따라야 한다. 매질이나 고함 또는 협박 등의 방법은 그 교육적 효과가 없을 뿐더러 부수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폭력은 폭력을 가르친다. 매 맞고 자란 아이들이 남을 학대하는 성인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들이 입증해 왔다. 또한 체벌을 가하는 사람 앞에서만 조심하게 될 뿐, 근본적인 행동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크나큰 체벌의 해악은 심한 모멸감과 적대감으로 인하여 부정적 자아개념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으로 자긍심 상실은 물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체벌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자녀들이 평소에 누리는 특권을 제한 또는 거절하는 것. 예를 들어 간식 금지, TV 시청이나 컴퓨터 사용시간 제약, 외출금지, 전화통화 제한, 영화관람 금지, 친구 만남 제한, 자동차 사용 제한 등 평소 가장 즐기는 것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처벌이 적절하게 사용될 때 사실 매질보다 훨씬 큰 효과가 있다. 단,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잘못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자녀와는 명확히 구분해 ‘나쁜 행동은 밉지만 너는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또 절대 타인들 앞에서 처벌을 한다든지, 자녀의 친구들에게 처벌을 광고하는 등 수치감을 주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선 안 된다. 처벌을 할 때 부모는 절대 냉정을 유지해야만 한다. 당장 집을 나가라든지,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든지, 앞으로는 TV나 컴퓨터 절대 사용금지라든지, 용돈을 절대 안 주겠다는 등 지키지도 못할 처벌 방법들을 홧김에 막 제시해서는 안 된다. 적절한 처벌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자녀 자신에게 합당한 처벌방법을 물어볼 수도 있다. 사랑의 매라는 미명으로 자녀들에게 자신의 분노가 실린 체벌은 없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이주헌
<교육심리학 박사·행동수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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