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글사랑 모임 참석차 LA 온 ‘섬진강’ 김용택 시인
36년간 모교 초등학교서 교사로 재직
최근작 ‘연애시집’까지 총 10권 펴내
동심에 비친 글 통해 삶의 정서 깨달아
‘섬진강의 시인’김용택(57·사진)씨가 얼마 전 변변한 강이 없는 LA를 다녀갔다. 현재 뉴욕에 머물고 있는 그는 지난 21일 가든그로브에서 열린 오렌지 글사랑 모임(회장 정찬열)에 참석해‘나의 삶, 나의 문학’을 이야기했다.
최근작 ‘연애시집’까지 10권의 시집을 낸 김용택은 가장 사랑 받는 한국 시인 중 한 사람. 처녀시집 ‘섬진강’만 70여만부가 팔렸고, 지금도 연 4,000~5,000부가 나가는 스테디 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시인들이 투표로 지난해 최고시집에 뽑았던 시집(문태준의‘맨발’)이 지금껏 6,000부정도 팔린 것을 감안하면 그의 시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베스트 셀러와 문학의 질은 오히려 배반의 관계를 이루는 예가 많지만 그는 질양 모두에서 최고 시인중 한 사람이라는 행복한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그가 졸업한 덕치 초등학교에서 36년간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런 시인이 2주 남짓한 미 체류 동안 무엇을 보았을까. 그는 길 하나만 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미국에 왔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길은 자연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 돌아가고 넘어가려 하지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린다. 가드레일만 해도 그렇다. 한국의 가드레일은 도대체 너무 높다. 위압적이다. 시야에서 자연을 가려 버린다. 얕으막한 미국의 가드레일, 크게 둘러가기도 하는 미국의 길을 통해 한국 길과 가드레일의 독재, 그 막무가내를 확인했다. 그는 전북에서 환경운동도 하고 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예정 보다 3시간 이상 늦게 글사랑 모임 10주년 행사에 참석한 그는 시골마을로 찾아온 월부 책장수가 그에게 문학적 눈을 뜨게 해줬다고 말했다. 월부 전집장사가 실어 나른 토스토에프스키, 박목월, 이어령, 헤르만 헷세 전집을 통해 “느닷없이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의 눈에 문학이란 안경이 씌워지자 늘 곁에 있던 나무와 새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이뻐 보일 수 없었다. 매일 보는 진메 마을 사람들도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문학을 통해 그에게 세상은 새롭게 해석되고, 재구성된 것이다. 그는 이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순창농고 졸업이 최종학력인 시인은 “내 문학은 대단한 논리나 전문지식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일상을 존중하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삶이 바로 문학이 됐다”고 말했다.
학교 벚꽃 축제 백일장에서 장원에 뽑힌 1학년생의 ‘벚꽃은 참 예쁩니다/벚꽃을 보면 이모 생각이 납니다’2줄짜리 시를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벚꽃을 보며 자연스레 이모를 떠올리는 눈이야말로 시인이 아끼는 문학적 재원이다.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상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표현하면 그것이 곧 글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 바쁘다 보니, 우리는 바라보는 것을 잃어 버렸고, 자세히 바라보는 법을 모른다는 지적이다.
2학년 담임만 20년을 해 “2학년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놈”이라고 믿는 시인은 그가 감동한 2학년생들의 글 몇 편을 소개했다.
‘이제 눈이 안 온다/여름이니까’여름은 이렇게 간단하고 극명하다.
‘쥐는 참 나쁜 놈이다/먹을 것을 살짝살짝 가져간다/그러다가 쥐약 먹고 죽는다’쥐의 일생은 이렇게 정리됐다.
‘오늘 창호형의 자크가 열렸다/나는 웃겼다 너무 웃겼다/창호형은 그것도 모르고 놀았다’ 삶의 표현이 얼마나 진솔한가.
‘소는 진짜 똥이 크다/어떤 사람은 소똥을 밟는다/소똥의 냄새가 지독해서 우리는 쓰러지네’풀 대신 배합사료를 먹고사는 소의 똥에서는 풀향 대신 역겨운 냄새가 난다. 환경문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시인의 해석이다.
시인은 어린이들의 이런 시에 감동하면서 살고 있다. 그는 방학중에는 문학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글쓰기는 개학 뒤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가능해 진다. 이런 시인이 어떤 시를 쓸지는 그의 시를 읽지 않은 독자도 짐작이 가능하다. 그의 시는 섬세하지만, 어렵지 않고, 맑다. 시인은 “강퍅한 삶에 고향 정서를 일으켜 주기 때문”에 그의 시가 읽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문학은 절망과 고통에서 부르는 노래이므로 희망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시인은 LA를 거쳐 3일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간다. 미국에서는 문학 대신 길만 보고-.
<안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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