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X-파일에 대한 MBC의 보도 때문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전율에 싸인 듯한 느낌이다. 자신이 중앙정보부를 이용한 정치적 음모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중정의 후계자인 안기부에 의한 도청이란 있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YS가 정치인들에 대한 ‘미림’ 팀의 도청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장이 차남 김현철 씨를 비난한 것을 도청한 내용의 보고서를 읽고 그를 갈아치웠다는 보도는 군사독재자들이나 소위 민주투쟁을 했다는 정치인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냉소를 자아낸다. 당시 중앙일보사 사장이던 홍석현 씨가 삼성의 이학수 씨와 호텔 방에서 주고받은 밀담의 내용은 더욱더 충격적이다. DJ도 삼성의 검은 돈을 받았기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삼성측에 보낸 것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든지 이회창 씨에게 도합 100억 원의 부정 정치자금을 공급한 내용, 신한국당의 다른 경선후보들에게도 지급된 돈이 보험금조로 지불되었을 것이라는 추론, 이 모든 것이 (이건희)회장의 지시나 뜻대로 이루어졌다는 시사, 그리고 홍석현 씨 자신이 30개(30억원)를 직접 운반했는데 상당히 무겁더라는 언급 등 어느 필객이 ‘삼성판 납량특집’이라고 꼬집은 것에 대해 가가대소 하기에는 너무나도 심각한 한국 고질병의 벌거벗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질병은 곧 정경유착인데 이 도청 내용과 전에 보도되었던 것에 따르면 홍석현 씨는 삼성과 차기 정권 담당자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에 더해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사주로 있는 중앙일보를 킹 메이커로 만들려 했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DJ에게는 보수세력과 연합하라고 촉구하기도 한 홍 씨는 이회창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기는 국무총리가 되는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이회창 씨를 당선시키기 위한 노력의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그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보광의 탈세문제로 옥고를 치른 것이 DJ가 그것을 괘씸죄로 여겼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은 중앙일보가 최근 사과 아닌 사과를 하면서 언급한 사설 내용이다.
또 사과 아닌 사과를 한 것은 삼성이다. 소위 대국민 사과문에 “알려진 내용이 사실과 다르고 왜곡된 면도 있다”고 했다든지 “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은 변함이 없다”는 항변과 위협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권은 유한하되 ‘삼성 공화국’은 영속된다는 교만심이 그대로 노정되는 부분이다. 한국경제에 삼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 때문에 과거는 덮어두고 면죄부를 달라는 것과 같은 태도이다.
참여연대는 25일 X-파일 사건과 관련해서 이건희 삼성회장, 홍석현 주미대사, 이회창 전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실장 등 25명을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에 검찰은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X-파일의 내용 중에는 홍 씨와 이학수 씨가 법무장관 출신을 포함한 고위 검찰인사들에 대한 떡값 지불을 의논하는 것도 들어있어 천정배 법무장관의 말대로 (정치권력, 자본, 언론, 과거 안기부 등) 거대 권력의 횡포와 남용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법무·검찰의 책무임이 이번 사건에서 증명될지, 또는 과거의 수많은 의혹처럼 용두사미로 끝나버릴지 주목된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미림 팀의 책임자이다 DJ 정권 때 퇴출 당한 공 모씨가 들고 나온 도청 테이프들 중 하나인 X-파일의 존재는 1999년부터 국정원에서 알고 있었고 DJ의 오른팔이던 박지원 씨도 알고 있었단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고 또 노무현 정권도 X-파일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노 대통령이 파격적으로 홍석현 씨를 주미대사로 발탁했던 배경이 궁금해진다. 필자는 그 무렵 홍 씨가 탈세로 영어의 몸이었다는 사실과, 또 유엔 사무총장 도전설을 뿌리고 다닌다는 점에서 주미대사로서 적격이 아니다 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주미대사 5개월만에 낙마하게 된 그에게는 안 된 이야기지만 내 짐작으로는 그가 노 씨의 정치술수에 이용된 것이 아닌가 한다. 현 정권이 원수같이 여기는 조·중·동에서 중앙일보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첩경이었는데다가 탈세범을 파렴치범으로 무척이나 기피하는 미국이 그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느낀 쾌감마저 있을 법하다. 또 자기의 인기가 30%대이고 열린우리당이 20%대인데다 행담도 개발사건에 연루된 청와대 보좌관들 문제, 경제정책 실패로 원성이 높아가는 차제에 X-파일이 공개되도록 함으로써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승리를 구현하고 ‘차떼기당’인 한나라당의 집권을 영구히 막을 수 있는 마키아벨리적 발상으로 X-파일의 보도를 묵인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공상의 비약인가.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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