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박주영이 골을 하나 넣을 때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세리모니가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 지난 월드컵에서도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영표나 유상철이 골을 넣은 후 꿇어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방영되곤 했다. 오래전 할렐루야 축구단을 창설해 축구선교에 헌신해온 이영무도 기도 세리모니로 유명했다.
귀한 골을 넣은 감격의 순간에 이런 장면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조금 불편하고 눈에 조금 거슬린다. 공인으로서 저런 감사기도는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으로서 한 골을 넣은 기쁨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를 표현하는 마음은 당연히 소중한 것이다. 그러면 골을 넣지 못했거나 졌을 때는 어떤가? 그럴 땐 기도 안 하나? 크리스천이라면 골을 넣는 것도, 못 넣는 것도,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일텐데, 잘 되는 일만 기도응답이고 안 되는 일은 감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만일 양쪽 팀의 선수가 모두 독실한 신자들이고 다들 경기에 이기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참 곤란할 것 같다. 누구의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말이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기도의 결과가 아니므로,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감사기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김충국 목사의 책 ‘본대로 들은대로’에서 읽은 글이다. 오래전 성지순례차 이스라엘에 갔었는데 식탁에 마주 앉은 한 권사가 이런 신앙간증을 하더란다. “다이어몬드를 블라우스 단추 밑에 감추고 김포공항에 들어갔는데 들킬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간절히 기도를 드렸더니 기도응답을 받아 무사히 세관을 통과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 아마 다이어몬드 구입이 잦은 모양이다. 이재철 목사의 책 ‘내게 있는 것’에 보면 또 이런 내용이 있다. “일행중 미화 5,000달러짜리 다이어몬드를 구입한 분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보석을 구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튿날 조반을 함께 들면서 그 다이어몬드를 어디에 어떻게 숨겨야 김포공항 세관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으로 대화가 흐르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중 크리스천 아닌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모두 목사, 장로, 권사와 같은 소위 중직자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라고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통성기도를 어느 민족보다 열심히 하는 한국 크리스천의 현주소이다.
한국 교계가 신자들에게 잘못 가르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기도다. ‘내(예수)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등의 성경구절을 강조하면서 무조건 기도만 하면 다 얻는 것처럼 가르쳐왔다. 이러한 기복신앙에 젖은 교인들은 끝없이 ‘주시옵소서’를 외치며 기도하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면 믿음이 적어서 그렇다고 야단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 있을 땐 기도원에 들어가 목이 쉬도록 부르짖는 것이다. 그리고도 그 응답은 꼭 본인이 원하는 내용과 같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응답 받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몇 년전 남가주의 한 대형교회가 특별새벽기도회에 내걸었던 슬로건은 이렇다. ‘부모의 새벽기도, 자녀의 평생축복’ ‘자녀의 새벽기도, 부모의 노후대책’ ‘아내의 새벽기도, 남편의 영적성공’.
새벽기도가 무슨 가족보험인가? 문제는 기복신앙과 성공지향주의가 노골적으로 깔려있는 이런 기도회를 열어야 교인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든다는 것이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정한수 떠놓고 비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최근 ‘사귐의 기도’라는 책을 쓴 김영봉 목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요구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그 요구를 이루는 방편으로만 기도를 생각하고 있다. ‘요구의 기도’라는 패러다임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귐’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급종교일수록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복적 형태를 띠고, 고급종교일수록 자기부인과 성찰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을 변화시켜 내 뜻대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기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열망하는 성경적 기도가 많아질 때 교회와 사회가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정숙희 부국장·특집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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