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중국을 찾아서
K형, 서안 근교의 화청지(華淸池)에 왔습니다. 절세가인 양귀비와 당나라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다던 유명한 온천지 입니다. 덕수궁 정도의 크기인데, 가파르게 솟은 뒷산 - 여산(驪山) 이 병풍처럼 사랑의 요람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지요. 서시는 오월동주(吳越同舟)로 유명한 두 적대국 사이에서 조국 월을 위해 오나라 왕 부차를 유혹해 죽인 미색입니다. 왕소군 또한 한나라 때 나라의 안위를 위해 흉노족장의 볼모가 되어 사랑을 두고 떠났지요. 그리고 삼국시대의 초선은 자신의 미모를 이용, 여포를 사주해 동탁을 죽인 중국 미인계의 주인공들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양귀비는 중국 미인들 중에서도 당 나라의 근간을 뒤흔든 비극적인 로맨스로 가장 유명하지요. 화청지 대문을 들어서니 구룡호수 위에 양귀비의 눈부신 반라(半裸)상이 우리들을 맞습니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팔등신 조각상인데 등에 여우가죽을 걸치고 머리를 약간 숙인 자태로 욕탕으로 들어가는 요염한 모습입니다. 우리 남자 여행객들은 그녀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양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수화(羞花)라고 일컫지요. 꽃도 그녀만큼 아름답지 못함을 부끄러워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양귀비는 전통미인들과 달리 통통한 체형이었습니다. 음식문화가 번창했던 당나라 때 살찐 형이 미인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양귀비는 화장술이 뛰어나 살구씨와 수은가루로 만든 옥홍고로 얼굴을 홍옥처럼 가꾸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시인 백거이는 이런 모습을 보고 눈동자 굴려 살짝 웃으면 온갖 아름다움 생겨나네 하고 찬탄했다고 하지요.
K형, 화청지 궁내에 드니 사면 벽에 양귀비의 일생을 화폭에 담아놓은 게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앙증맞게 지은 그녀의 목욕통인 귀비지(貴妃池)를 내려다보면서 안내가이드의 설명을 듣습니다. 양귀비는 본래 17세 때 현종 아들의 비로 궁중에 들었는데 시아비인 현종이 가로챘으니 시작부터 스캔들이었지요. 현종은 그 후 환락에 빠져 지난날 성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양귀비 일가들이 세력이 잡으면서 결국 당나라를 쇠망을 길로 이끈 안록산의 난을 맞습니다. 양귀비의 애인이었던 안록산의 반역이 실패하자 결국 그녀도 배나무에 목을 매답니다. 불과 38세 때였지요.
K형, 중국역사에 양귀비 같이 미인계로 정사를 그르친 요부들도 있었지만 직접 철권을 휘둘렀던 여걸들도 있었지요? 측천무후와 서태후가 대표적입니다. 측천무후는 본래 당 고종의 황후였으나 왕이 죽자 스스로 황제에 오른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입니다. 황제로 16년간을 포함, 50여 년간 집권했으니 권력에 동물적 감각을 소유했던 여 군주였지요. 그녀는 권좌에 올라서도 권세 유지를 위해 친자식들을 차례로 죽인 비정한 어미였습니다.
청나라 때의 서태후(西太后)도 측천무후 못지 않게 권력욕이 강하고 성격이 잔인했다고 하지요. 간교한 계교로 농민봉기를 진압하고, 서구열강들 세력에 의존해 권력을 지탱했습니다. 백성들은 기아에 시달리는데 그녀의 사치는 극에 달해 식사한끼가 120여 가지나 되었다고 하지요. 74세 때 이질로 죽었는데 결국 청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K형, 양귀비 묘를 보러 가는 길가에 석류나무들이 지천으로 심어져 있었습니다. 석류는 양귀비가 특히 좋아했다지요. 속살이 빨갛게 터지는 정열과 함께 천연 여성 호르몬이 풍부한 석류를 양귀비가 매일 먹었다는 얘기는 수긍이 갑니다.
작가 발링허스트가 최근 펴낸 책 요부, 그 이미지의 역사에서 동서고금의 여걸들이 가부장적 남자들의 편견에 의해 부당하게 폄하되어 왔다고 썼지요.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여인의 미색이 권력욕과 합쳐질 때 역사가 결국 비극으로 끝났던 숱한 사례를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석류나무 옆 작은 봉분엔 양귀비 묘란 4글자만 뎅그러니 새겨져 있었지요. 미색과 권력의 무상함을 말없이 웅변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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