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까만 색연필로 도배질한 교과서를 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 때 한국의 교육제도는 중학교부터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과외공부를 안 해도 중학교 입학이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입시문제는 교과서 안에서만 출제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담임선생님과 과외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두 권씩 사서 한 권은 까만 색연필로 중요한 단어를 지우도록 했다. 수업시간은 교과서 읽기와 주요 단어 지우기, 그리고 지워진 교과서로 다시 읽고 또 읽는 일의 반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서울의 경우 한 반에 70~80명의 학생이 있으니 이것이 모든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통용되기 힘들었고, 교과서 외우기를 시켜주는 과외공부가 대성황을 이루었다.
입학시험 전쟁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교육적 전통을 떠나 고교 2학년 때 미국에 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미국 학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각자 자신 고유의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표현하도록 교육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바로 이점이 언어장벽을 더욱 심각하게 느끼도록 해주기도 했지만, 그래서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미국 교육에 비상이 걸렸다고 떠들기 시작한지 여러 해가 되었다. 미국 10대들의 수학과 과학 성적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지며 고교를 졸업해도 대학 수업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심지어 영어를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부시 행정부가 내어놓은 것이 ‘노 차일드 레프트 비하인드’법으로 각 공립학교 재학생들의 실력평가 시험성적을 기준으로 연방정부의 지원액을 책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3학년에서 8학년의 공립학교 재학생들은 매년 영어와 수학 실력 평가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학교는 창의적인 수업보다는 시험 점수 올리기 연습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들이 나오는 것을 들으며 나는 미국이 오히려 한국을 닮아 가는 느낌을 받는다.
이 법은 텍사스에서 유사한 시험제도를 도입, 학생들의 성적이 놀랍게 향상된 것을 모델로 한 것인데 이른바 ‘텍사스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제도가 각종 부정으로 얼룩져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교사들이 학생들에 치팅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거나, 10학년의 평균 점수를 높아 보이게 하기 위해 실력이 떨어지는 9학년 학생들을 대거 진급시키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미국의 신문잡지에서 읽으면 한국 신문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CNN 방송에 따르면 오스틴 고교에서는 1,160명의 9학년생 중 300명만이 10학년에 진급되었다 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시험 성적에 의존하는 교육은 단순하고 지극히 근시안적인 교육임을 인정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발전해 가는 세상에서 왜 우리는 겨우 그 정도의 교육정책밖에는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긍극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을 들볶는 1차 목표는 서울대 입학이라 치자. 서울대엔 왜 가려하는가? 삼성 같은 일류기업에 입사하려고? 삼성에는 왜? 안정된 직장 얻어 좋은 배우자 만나 아이들 낳아서 또 입시 공부시켜 나처럼 살게 하려고? 나쁠 거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엘리트 지향 교육의 목표를 단순화시키면 이처럼 싱겁다.
미국에서도 대학진학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의 중심은 고졸자보다 높은 평균 보수에 있다. 그렇다면 게토의 청소년들이 학교에 안 가고 마약밀매로 빠지는 것을 막기엔 이론이 딸린다.
이 세상 어디에 살든 우리가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이유는 인간과 자연의 삶의 원리를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며, 각자의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결국은 모두 다함께 몸과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왜 자녀를 일류학교에 보내려는가 하는 질문에 우리의 자녀가 선택한 분야에서 인류의 평화적 공존을 이루는 매개체로 활약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을 때 교육은 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유경
campwww.com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