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은(간호사, 국제펜회원)
주말 외에 금요일이나 월요일로 이어지는 황금연휴가 되면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길들을 떠난다. 떠나지 않고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따분한 기분이 되었던 것은 언제부터일까. 숨막히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긴 들숨을 쉴 수 있는 여유. 짧은 길떠나기는 다음 연휴까지 잘 견딜 수 있는 힘을 충전해 준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과 어루러지는 마 음속까지의 정화 작업은 씨너지 효과를 충분히 발휘한다.
인디펜던스 패스는 콜로라도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인 아스펜에서 동남쪽으로 82번 하이웨이가 좁아지며 이어지는 24번 국도와 연결된 작은 산길이다. 깎아지른 듯한 산세가 가슴으로 다가들며 안기기도 하고 절벽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계곡에 울려 굉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운전자는 자연을 즐기기 보단 외길 일방통 행으로 되어져 있는 도로의 곳곳에서 앞에서 오는 차들은 없는지, 어디에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엘크와 사슴, 무스들의 복병들을 만날 때마다 급브레이크로 위험하 거나 동물들을 치지는 않는지 한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북미주에서 가장 위험 하며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산길로 여행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작은 길. 툰드 라 고원의 모습을 닮은 습지가 길의 커브를 따라 돌고 그 끝으로 이어지는 초록과 은빛 비늘을 떠는 아스펜 추리의 군락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여유로운 산양들과 돌 위에 폴짝 올라앉아 있는 다람쥐들의 재롱까지 평화 그 자체로 다가든다.
산길의 한 지점에서 만나는 콘티넨탈 디바이드는 캐나다에서 멕시코까 지를 잇는 3100마일 북미대간(北美大幹) 가운데 하나이다. 만년설의 잔해를 이고 서있는 정상. 딱딱하게 굳은 얼음 같은 눈이더라도 한 여름, 7월에 눈을 보고 만 지는 것은 이곳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산정의 작은 등산로엔 애기 똥 풀을 닮은 노란 꽃들이 소담스레 피어있다. 또 다른 쪽엔 개망초 같기도 하고 쓱 부쟁이나 구절초 같은 흰 꽃들이 백두대간의 어느 곳처럼 무리지어 피어있다. 짙 은 분홍과 보랏빛의 꽃들은 개여귀와 며느리 밥풀과 흡사하다. 콜로라도 주화(州花)인 콜롬바인도 만개해 나비처럼 흔들린다. 이름은 정확히 모르더라도 어우러진 들꽃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낯선 길손들을 손짓하고 산봉우리들은 바람에 연이어 물결친다. 내려서면 날려 갈 듯 거센 바람이 불어도 가슴이 확 트이며 일 순간 가 슴에 맺혀있던 모든 한 같은 것들을 몽땅 내 놓고 풀어놓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 벼운 공기로 약간 숨이 차고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도 삶 속에서 한잔의 포도주 같 은 취함이 싫지 않다. 자연의 노래인 바람과 그 속에 녹아들어 함께 흔들리는 나 의 모습. 여행의 매력 아닐까?
다시 또 내리막길에서 서행을 하며 만나 는 자연들은 그 한순간 순간들이 모두 한 폭의 풍경화이며 긴 한숨이 자연스레 놓 아지는 황홀경이다. 일설에 따르면 낮의 천국 가는 길처럼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비해 밤이면 별빛과 달빛 말고는 리프랙터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아 지옥으로 들어 가는 듯한 공포에까지 몰고 간단다.
1800년경 유테 인디언들이 한 여름 사냥에서 잡은 동물들을 만년설 속에 동굴을 뚫고 자연의 냉장고를 만들어 저장 해 두기 위해 닦아 놓았다던 이 작은 길. 높은 산과 산을 이어주는 이 길은 아스 펜의 성장과 더불어 빠르게 발전하였으며 이젠 아스펜과 리드빌 사이를 이어주는 주요 도로로 자연, 그 자체를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관광로 써도 그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러나 아스펜의 낙엽이 짙어지고 초록에서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 는 단풍 철의 피크가 지나고 나면 늦가을부터 초여름까지는 예측할 수 없는 기후 변화와 시도 때도 없는 폭설 때문에 길을 닫는다.
미 국민이 가장 많 이 이동한다는 독립 기념일쯤에 떠나서 만날 수 있었던 독립로(independence pass). 또 다른 풍경을 기다리며 문을 닫기 전, 다시 한번 가보아야겠다. 호젓이 넉넉한 시간을 내어 방해받지 않는 심호흡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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