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롤이 지은 아동 문학의 금자탑이다. 이 동화에는 흰토끼부터 매트 해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흥미진진하고 엉뚱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의 하나는 트럼프 카드 모양을 한 여왕이다.
백성들의 목을 자르는 것이 취미인 이 여왕은 앨리스에게 래킷으로 공을 치는 대신 플라밍고로 고슴도치를 치는 놀이를 하자고 한다. 앨리스는 몇 번 시도해보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만다. 플라밍고는 제 마음대로 고개 짓을 하고 발이 달린 고슴도치는 쪼르르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여왕은 앨리스를 재판하면서 처형 판결을 먼저 내리고 죄가 있나 없나는 나중에 정하라고 명령한다. “이 따위 재판이 어디 있느냐”고 팔을 휘저으며 앨리스가 깨어나는 것이 이 동화의 끝이다.
이 동화에 못지 않게 황당무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의 교육이다.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한국은 자녀들의 교육을 놓고 온 나라가 난리 법석이다. 최근 문제의 발단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통합형 논술’ 시험을 치르도록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벌어졌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어리둥절할 주제를 놓고 정부 여당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으며 자녀를 둔 학부모와 교사, 시민 단체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통합형 논술’이란 논술 시험에 수학과 영어까지 섞어 종합적인 사고를 측정하겠다는 것으로 얼핏 보기에는 이를 장려하는 것이 옳을 듯 싶다. 그러나 그 반대자들에 따르면 이는 사실상 본고사로 이를 허용할 경우 과외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
자녀를 둔 한국 학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의 중고등학교 공교육은 철저하게 엉망이 돼 있다. 학생들은 거의 빠짐없이 밤새도록 과외를 하며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잠을 잔다. 교사들은 이를 꾸짖기보다는 편히 쉬라며 불을 끄고 나간다. 중학생만 되면 시험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져 대머리 증세를 보이는 여학생이 수두룩하며 매주일 집에 전화를 걸어 은근히 돈을 요구하는 교사가 아직도 존재한다.
아무리 아파트 값이 올라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교육 여건이 좋다는 강남으로 몰리지만 여기 온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을 잘 쳐도 내신 순위가 떨어지면 명문대는 그만 두고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기 힘들다. 정부에서 강남의 일류 학교 건 산촌 고등학교 건 내신 성적을 차별하는 것을 이름도 거창한 3불 정책(본고사, 고교 등급제, 기여 입학제 금지)의 하나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가장 극성인 강남 학부모들 밑에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경쟁 속에 꿈 많은 10대를 보내야 한다.
그렇게 힘들면 강남을 떠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기도 힘들다. 학원 등 사교육 환경이 좋은데다 어디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느냐는 것이 어느 대학을 다녔느냐에 못지 않게 평생 꼬리표로 따라 다닌다. 대학에서 친구 사귀는 것, 심지어는 데이트하는 것까지 강남 출신은 강남 출신끼리 한다.
거기다 한해가 멀다 하고 수시로 바뀌는 교육 정책은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최대 고통’을 주기 위해 누가 교육 정책을 세웠더라도 이보다 더 성공하지는 못했으리라. 기러기 가족을 감수하고라도 미국으로 캐나다로, 심지어 최근에는 동남아로까지 자녀를 내보내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명문대 일류 학교를 나와야 대접받는 사회에서 자녀에게 양질을 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학부모 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이런 사회 풍토를 그대로 놔둔 채 본고사를 못 치게 하고 과외를 막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체를 가지고 크로켓을 치는 것과 같다. 너도나도 법망을 피해 고개를 내밀고 달린 발로 해외로 탈출할 뿐이다. 한국 교육 당국자들은 모든 것을 불허한다고 엄포를 놓기 전에 무엇이 한국의 이 엄청난 교육 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인지 백지 상태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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