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사람은 태어나서 생명을 유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적어도 성년이 되어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면서 최소한 정신적 및 경제적 자립심을 가지고 생활할 때 우리는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탄탄대로를 쉽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 넘고 꾸준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장애물을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란 지성과 감성의 혼합적인 요소(산물)이다. 지성을 이루고 있는 합리성과 감성을 이루고 있는 비합리성이 적당하게 배합되어 융통성을 가져야만 부드러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파티용품을 파는 전문점에 들러 가족의 생일카드 한 장을 사기 위해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내가 선 계산대 맨 앞에 50대 백인 아주머니가 상당히 많은 물건을 골라서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산이 끝났다. $ 89.47 가 나왔다. 합계를 본 아주머니는 이것저것을 보이면서 이것은 20%, 또 이것은 30% 세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금액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계산서를 들어다 본다. 계산대의 아가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약간 상기된 얼굴을 보이면서 물건을 하나 하나 빽에서 끄집어내면서 다시 계산을 한다. 역시 합계는 $ 89.47 이었다.
아주머니는 크레딧 카드를 주면서 계산을 하고 뒤로 돌아 가더니만 카펫 바닥에다 물건을 끄집어내면서 계산을 다시 한다. 한참을 대조하더니만 갑자기 창을 통하여 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뛰쳐나간다. 잠시 후 숨을 들이마시면서 계산대의 아가씨에게 묻는다. “내 벤츠 차를 누가 토잉 해갔다. 토잉회사 전화번호를 좀 달라” 전화번호를 건네 받고 전화를 하더니만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을 연거푸 토해낸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쉬면서 토잉 비용이 120 달러라고 한다. 불과 몇 불을 챙기려다가 전체 물건값 보다 더 많은 돈을 잃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되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주의의 사람들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소리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웃는다.
그들은 무엇을 느꼈기에 웃을까. 나는 이 순간을 보면서 또 한번 삶의 지혜를 생각하게 되었다.지긋지긋한 학교가 여름방학으로 문을 닫으면 아이들은 학교를 박차고 뛰어 나선다. 어린아이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고대하던 방학은 이렇게 일상적인 굴레에서 벗어남으로써 시작된다. 자유라는 기쁨이다.
중학교 때는 멀리 사는 친척집을 방문하게 된다. 이모는 여름이면 바닷가의 집으로 조카들을 불렀다. 으레 나는 늘 마지막으로 불리어 섭섭했지만 그래도 바닷가에 가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마다 않고 달려갔다.
소나무가 있는 언덕아래 양철 지붕을 한 판자집이었는데 마루는 틈새가 많아서 흰 모래바닥이 보였다. 밤이면 소나무가 소리를 냈다. 양철 지붕도 때때로 울어댔다. 집 앞 모래는 훤한 바다를 감출 만큼 둔덕을 이루었다. 우리는 여기서 나란히 바다를 향해 웃고 떠들어댔다. 바다는 화답하듯 곱게 흰 거품을 몰고 우리 코앞에까지 달려왔다.
낮에는 배를 타고 검은 돌섬까지 갔다. 섬 주위에 숨겨진 바다 속 길을 따라 꿈속 같은 색색의 해초를 보면서 넋을 놓고 헤엄을 쳤다. 바다 속에 이런 진풍경이 있다니 밤마다 달빛이 환하게 검은 바다를 비춰 바다는 비단 옷자락처럼 찬란하게 흔들려서 살그머니 사촌 누이의 따뜻한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먼 친척 중에 바다 같이 푸른 원피스를 입은 또래의 소녀가 왔다. 물에 젖은 긴 머리와 바다색깔을 한 눈은 항상 먼 바다를 바라보며 말이 없는 아이였다. 우리는 등대에 함께 올라가서 더 먼 바다를 같이 바라보았다. 등대는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고 우리는 흰색으로 각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바다와 그 소녀를 다 함께 잃고 말았다.
그해 여름은 지독히도 더웠다. 나는 홀트 재단에 자원서를 냈다. 입양아를 데리고 입양자들이 기다리는 독일까지 가는 것이다. 어른 셋이 아이 열둘을 에스코트하는 것이다. 서울을 출발할 때는 조용했던 애들이 이륙하면서부터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와 한 대학생은 눈코 뜰 새 없이 생전 해본 적 없는 기저귀 갈랴, 우유 먹이랴, 야단법석을 하면서 두려움과 연민에 쌓여 긴 항로를 꼬박 새우며 가는데 경험이 많은 아주머니는 끝내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 코를 골며 주무셨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입양 부모들이 흥분에 차서 아이들을 맞아주었는데 우리가 예쁘게 옷을 갈아 입힌 아이들은 낯선 양부모를 보자마자 울어댔다. 그리고 나를 꼭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 쓰고, 나도 절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차마 볼 수가 없어 비행장을 뛰쳐나왔다. 그래서 유럽의 무전여행은 시작된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여름이 오면 으레 여행을 갔다. 또 선교를 갔다. 멕시코의 남부 산악지대의 인디언 마을, 숨이 막히는 여름 뙤약볕에 미개인 이들을 돕는 일은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움막에서 자는 것은 한증막이나 다름없다. 나는 너무 더워 땅바닥에서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큰 멍멍이를 베고 잔 것이다. 더욱 고통스런 것은 자기들 음식을 먹으라고 줄 때다. 나는 분명히 선교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여름이 오면 어릴 때처럼 떠나고 싶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그렇다.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이익을 보면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겠지만 때로는 손해도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또한 인간의 삶이다. 삶은 오늘 손해를 보면 언제인가는 손해를 되돌려주고 반대로 오늘 이익을 보면 언제인가는 손해를 보게 하는 것이리라. 산다는 것은 수학이 아니라 예술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현명함과 바보스러움,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이며 또한 상호의존적인 요소인 것 같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고리도전서 3장 18-19)
우리 인간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삶을 위한 참다운 지혜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여 보면서 바보는 영원한 바보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가슴에 묻어 본다.
도진호 <베데스다,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