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제4막 1장>
열린 판도라, 그리고 수술
BFC계좌 입출금 40억弗행방 ‘아리송’ 金회장이 마음대로 빼쓸수있는 젖줄役
대우 분식은 수출 지상주의 부산물 신비한 자금조달 기? 끝내 올가미로
김영기 기자 young@sed.co.kr
『힘든 여정의 끝. 그 끝은 허무했다. 당한 자는 고통보다 허무와 공허에 빠져 멍한 상태가 됐지만 칼날을 겨눈 자는 어지럽게 널린 잔해(殘骸)를 수습하느라 부산했다. 지난 99년 8월26일 워크아웃 돌입. 김우중 회장의 화려한 연금술을 담은 부실한 판도라 상자는 열리고 금융시장에서는 망가진 대우의 몸체에서 한푼이라도 더 얻어가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김 회장이 남긴 빈 자리는 이렇게 혼란의 악순환이었다. 대우 빚 500억달러, 그 뒤를 정리하기 위한 푸닥거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우중 대우 회장은 “기업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고 파는 상품”이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선진 금융시장에서도 찾기 힘든 김우중 특유의 연금술이 있었다. 화려한 기술은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렸던 국내 신흥 재벌 오너들에게 답습됐다. 신화의 몰락, 그의 연금술은 결국 “부실한 세계 경영을 보호하기 위한 재테크”였다는 극단적인 비판으로 뒤바꿔졌다. 한 때나마 우상 대접을 받았던 그의 화려한 금융기법, 그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직후인 99년 8월27일. 여의도 한국투신의 10층 기업구조조정위원회에 한 중년 신사가 들어섰다. 다소 초췌한 얼굴빛, 그는 곧장 오호근 위원장 방에 들어섰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위원장님. 혹시 BFC(British Finance Center)라는 이름에 대해 들어본 적 계십니까.”
“듣기는 했지만 내용은 잘 모르겠소.”
“BFC는 말입니다…”
30분이 넘는 발언, 오 위원장의 얼굴이 서서이 변해갔다.
“말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 있는 일을 해줘 고맙소. 빨리 실사기관에 알리세요. 런던 현지법인을 실사할 때 투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구조조정도, 외국 금융 기관들과 협상하는 일도 못합니다.”
500억 달러의 워크아웃 실험. 대우 구조조정 과정을 깊숙이 아는 사람들은 이날 만남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금기(禁忌)의 성역으로 불렸던 ‘BFC’, 그 판도라?상자는 이렇게 우연하게 열렸다.
그 날 오 위원장을 만났던 사람은 훗날 “대李?이만큼 성공리에 워크아웃을 하게 된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사람은 바로 ㈜대裏?재정담당 총 책임자였던 임원 A씨였다. 김태구, 강병호 사장과 함께 김 회장의 구상을 실행에 옮긴 핵심 ‘연금술사’였다.
대우 런던 현지법인에 대한 실사는 곧바로 시작됐다. 구조조정위원회와 ㈜대우의 실사 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이 참여했다. 오랜 세월 은밀하게 감춰 있던 BFC의 실상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1월 중순까지 두달반에 걸친 실사작업, 실사반은 81년부터 BFC 구좌로 입출금된 누계가 74억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중 검찰 조사에서는 거래 총액 기준으로 계산하면서 수백조로 늘었지만. 실사 작업에 관여했던 고위 인사는 실사 도중 흥미로웠던 사실을 꺼냈다.
“74억달러 중 해외금융기관에게서 빌려 쓴 부채와 그 이자를 지급하는데 34억달러를 썼더군요. 이건 투명하지 못한 것과 관계가 없고. 문제는 나머지 40억달러 중 상당부분이 회계처리의 앞뒤가 맞지 않게 쓰여 졌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지막 몇 년 동안 해외 현지법인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집중적으로 유용됐더라구요.”
그랬다. BFC의 비극은 바로 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마지막 몇 년’에 모아져 있었다. 죽음 직전의 마지막 부르짖음이었던 셈이다.
비밀의 코드명 BFC. 그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길래 김 회장과 그의 분신(分身)들을 끝내 형장의 틀에 옭아 매고 말았을까.
오래가지 못한’화려한 연금술’
김우중 회장은 런던 체이스맨해튼은행의 부외계좌를 통해 화려한 연금술을 과시했다. 어쩌면 그는 트래펄가 광장 앞에서 런던의 금융가(사진 오른쪽)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신비로운 자금조달 기법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수출을 위해 허수(虛數)가 깃든 수출환어음(DA)을 할인받으며 대우의 속도 점점 곪아들어갔다. /서울경제 DB
시계추를 돌려 1981년말 런던의 체이스맨해튼 은행. 일군의 동양인들이 낮선 해외 땅에 그들만의 계좌를 만들며 ‘악마의 유혹’에 빠져든 것은 바로 이 때였다. 출발은 싱거웠다. 여느 한국 기업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그 마법의 코드에 왜 이리 관심을 갖고 있을까”라고 의구심을 품을 정도다. 전직 대우 고위 임원은 BFC의 출발에 대해 담담하게 전했다.
“BFC가 계좌의 공식 명칭이 아니고 ㈜대우 영국현지법인 재무팀의 ‘텔렉스 호출 명칭’이란 점은 검찰 수사로 대부분 다 알죠. 나중에 국외계좌를 관리하는 조직의 총칭이 됐지만. 처음에는 리비아 등 중동이나 아프리카 건설 현장에 필요한 운영자금을 쉽게 조달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현지에서 수주를 받아 공사를 할 때는 선수금을 받아 장비나 원료를 삽니다. 헌데 그 돈을 전부 한국에 들고 갔다가 나오면 환차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선수금을 받으면 일단 현지 계좌에 넣고 장비 등을 구입한 나머지 돈을 본국에 송금합니다. 프로젝트를 꾸려 나가는데 참 합리적인 도구였죠. 솔직히 당시 우리 기업 중 외환 관리법이네 하는 것을 꼼꼼히 지킨 곳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의 말은 일견 고개를 끄떡일 부분이 많다. 대우를 20년 넘게 지켜 본 전직 채권단 관계자의 발언은 신빙성을 蔥磯? 다소 대우를 두둔하는 발언이지만.
“대기업을 상대한 뱅커는 대충 압니다. 당시 큰 기업들은 瀏?부외 계좌를 다 갖고 있었어요. 70년대와 80년대 초 해외건설공사가 많았던 기업이나 종합 상사들은 대부분 그랬습니다. 나중에는 웬만한 중소 기업들도 따라 하더군요. 일종의 유행이었죠. 처음에는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빼서 쓰기 쉬우니까 정치자금 창구로 변한 거죠.”
과거의 관례, 하지만 지금 잣대로 볼 때 그것은 무지의 산물(産物)이었다. 반칙을 관례로 포장했다고 할까. 복잡한 국내 규정을 거치지 않고 해외에 계좌를 따로 만들어 사업하는 것은 매우 편?杉? BFC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대우 해외 법인들의 자금이 오가는 병참기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돌아가는 자금 상황을 아는 것은 김 회장이 파견한 ㈜대우 국제금융팀 5명과 ‘충실한’ 연금술사들 뿐. BFC의 금융통 인맥을 일컫는 ‘런던스쿨’의 핵심 멤버들이었다.
제대로 감시할 사람이 없으니, 한마디로 무방비였다. 황제에게 그 돈은 언제든 쓸 수 있는 젖줄이었다. 전용 계좌 전표인 ‘코드명 K(King)’와 ‘코드명 KC(King of Chairman)’을 통해. 세계를 오가는 탁월한 정치력도 여기서 나왔다.
BFC를 더욱 매력적인 도구로 만든 것은 수출 기업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온 수출환어음(DA)이었다. 김 회장이 훗날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500억달러 수출’를 주장하며 그토록 원했던 그 돈이다.
80년대초 DA는 ‘샘처럼 솟아 나오는 젖줄’이었다. 분식의 또 다른 망령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했다. 전직 은행 고위 임원이 전한 당시의 상황은 우스꽝스럽다 못해 한심하다.
“당시 DA 대출은 실적이 아니라 예상치에 따라 이뤄졌어요. 수출이 100만달러 정도 될 것이라고 하면 70~80%를 대출해주죠. 기업들은 예상치를 부풀리구요. 헌데 갚을 때는 60%만 가져 옵니다. 못 갚는 부분은 정부에 로비를 해서 사유를 적어오면 은행은 연장을 해 줍니다. 그렇게 10%씩 빼돌리는 거죠. 수십년 이어지다 보니 거대한 부실로 바뀐 겁니다. 나중에는 물건도 나가지 않고 본사와 지사간에 위장 계약서를 쓰는 상황도 수두룩했습니다.”
주채권 은행이駭?제일은행 전직 고위 간부는 관료들을 향해 촉수를 뻗쳤다.
“정부도 눈을 감아줬습니다. 대우 분식은 정부가 그렇게 강조한 수출지상주의의 부산물이었습니다. 몇십년 장 속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 터진 것이죠. DA만 해도 예외 없이 실적대로 대출해 줬으면 비극이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관료들도 부실을 방조한 셈입니다. 힘없는 은행권과 회계사들만 잡은 거죠”
아무리 허술한 성곽도 잘 나갈 때는 밖으로 구멍이 보이지 않는 법. 적어도 대우조선을 중심으로 팽창기를 걷던 80년대 말까지 BFC는 꿀을 보급해주는 튼실한 보고(寶庫)였다. “세계는 넓다”라는 선언문은 “(기업 사냥을 위한)돈 줄은 무한하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돈에 대한 잘못된 맹신. 그가 자금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갈수록 첨단(?)이 됐다. 출장 때마다 인수대상 기업을 물색했다. 자금은 너무 쉽게 동원됐다. 대우 전직 임원의 전언은 흥미롭다.
“FSO 인수와 우즈베키스탄 자동차 합작공장 건설 등 외부에 발표된 투자금액 200억 달러 중 실제 투자한 돈은 10억 달러도 되지 않았습니다.”
환상적인 포트폴리오였다. 은행차입과 해외증권 발행,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우즈대우모터를 세운 방법을 보면 신비함마저 느끼게 한다.
“대우가 이 회사에 투자한 규모는 6억5,000만 달러였습니다. 자본금은 2억 달러였구요. 그나마 지분이 50%이니 1억 달러면 되죠. 해외법인 자본금은 수출입은행에서 80%까지 ‘해외투자자금’이란 명목으로 빌려 주니까 생돈은 2,000만달러에 불과하죠. 일부 공장은 국내에 남아도는 생산라인을 떼다가 현물출자하면 됐습니다. 돈 한푼 없이 해외공장 하나를 건진 거죠.”(대우와 거래했던 금융권 관계자)
첨단 금융기법으로 미화된 자금 조달과 기업 인수 방정식. 김 회장은 금융 참모들을 등에 엎고 3세계를 공략했다. 수출을 위해 바이어에게 돈을 대신 꿔주기까지 했다. 변칙과 편법으로 물들어간 성장 신화는 이렇게 스스로를 옭아 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계는 성장의 달콤한 꿈이 채 깨기도 전인 90년대 중반 다가왔다. ⇒(다음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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