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봉 진
웃음을 많이 웃는 사람은 이 세상 태어날 때 장기 하나를 더 달고 나온 사람일 게다. 비록 가난하게 산다 해도 부자보다 여유로운 삶을 살게다. 그보다도 자기 자신은 가만있지만,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처럼 웃음 나게 하는 사람은 더 큰 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일 게다.
내가 자란 근동에도 웃음보 한 분이 살았었다. 그 분은 중학 때의 친구 아버지시다. 어렸을 때 한약을 너무 많이 잡수셔서 삼십대 후반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끼리는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백 새?가 어쨌다는 둥의 말을 입에 올리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이 공감할만한 어울리는 별명이 아니어서 아무도 면전에선 그렇게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한 사건이 있은 후로는 자타가 공인한 흰 닭으로 개명되고 말았다. 코메디 같은 기막힌 개명이어서 사람들은 그 별명만 들먹거려도 먼저 웃기부터 했다.
그 때 우리들은 중학생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은 급우들은 근질근질해서 가만있질 못했다. 어느 해 가을일 게다. 네댓 급우들이 모여 이집 저집 하루씩 교환 방문을 다녔었다. 한참 때이었던지라 밤늦도록 놀려면 무슨 먹거리 같은 것이 있어야 했다. 그것 때문에 더러 말썽이 났었다. 요즈음 세상이라면 생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들이었다. 우선 그날 모였던 집의 것이나 앞으로 갈 집의 것은 대상에서 뺐다. 약은 꾀였다. 그렇다고 전혀 인과가 없는 남의 것은 손댈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타켓은 지나쳐온 급우들 집의 것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집에 있었을 때 대상을 눈여겨 봐두거나 몇몇은 귀엣말로 시행계획을 쑥덕거리기도 했었다.
우리들의 교환방문이 끝나는 날이었다. 해찰궂은 아이들이 대미를 장식할 이벤트 하나 꾸며놓지 않았겠는가. 그 날의 이벤트는 젊은 백발 아저씨가 계시는 급우네 집의 닭서리였다. 그 집 닭장엔 예닐곱 마리의 토종닭이 있었다. 그 집은 언덕 위의 집이어서 작전상 어려움이 따랐다. 사립문은 안채에 바짝 붙어있어서 닭을 내오다 소리를 내면 곤란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전원이 행동대원으로 나서기로 했다. H아워는 초승달이 넘어간 어스름께로 정했다. 각자가 맡은 세부 역할도 정해졌었다. 닭장 조를 맡은 두 아이 중 한 명은 닭장 문을 여닫아주는 역할로, 다른 한 명은 따뜻한 보온이 유지되도록 자기의 손을 겨드랑 밑에 넣고 있다가 닭의 두 날개와 배를 살며시 움켜쥐고 내오는 역할이었다. 낮은 담장이 둘린 곳, 그 언덕 밑에 배치된 그 집 아들은 위쪽에서 닭을 내려줄 때 엎드리는 역할로, 다른 한 명은 그의 등에 올라서서 닭을 받아 내리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러나 나는 닭장 조와 함께 그 집 마당에 들어가서 안채와 사립문 근방을 살피다가 긴급한 일이 생기면 양쪽에 신호를 보내주고, 일이 끝날 때까지 망을 보고 있다가 마지막에 나오는 역할이었다.
밤하늘엔 별들만 총총했다. 길은 어림푸시 보였으나 얼굴을 바싹 디밀기 전에는 통행인은 누가 누군지 분간이 잘 안 될 것이었다. 나는 그 집 마당에 먼저 들어섰으나 아무런 징후가 없어보였다. 닭장 조 아이들이 그 집 모퉁이로 돌아 들어갔다. 각본대로 잘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콧노래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때였다. 별안간에 닭장 조 아이들이 후닥닥 뛰쳐나오면서 내 등을 확 떼밀었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뒤돌아보니 내 눈 높이로 허연 물체가 움직거리는 것 같았다. 틀림없는 젊은 백발 아저씨였다. 나는 담장 밑의 아이들에게 신호를 보내주기는커녕 도망쳐 나오기도 바빴다.
담장 밑의 아이들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자 좀 웅성거렸나 보다. 모든 상항을 눈치 차린 그 아저씨는 소리가 들린 쪽의 담장께로 짤막한 막대를 들고 닦아가서 머리를 살며시 들어올리며 넘보았던 모양이다. 그 순간 초조하게 기다렸던 담 밑 아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흰 닭 이가?라고 나직이 중얼거리듯 말하며 양손으로 백발 아저씨의 두상을 움켜쥐었다가 그만-. 제풀에 놀라 혼비백산한 상태로 동구 밖까지 도망쳤다. 그 날 저녁 우리 악동들은 닭은 못 잡아왔지만 시들지 않을 웃음꺼리를 안고 들어와서 밤새 키득거렸다.
그 젊은 백발 아저씨 역시 자기가 생각해도 그 일은 엄청 우스웠을 게다. 아무리 참고 있으려 해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처럼 그냥 있을 수가 없었으리라. 한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는데, 삽시간에 흰 닭 이야기는 온 동네에 퍼져버렸다. 그 날 이후 동네 사람들은 그 분이 고샅길에 얼른거리기만 해도 흰 닭의 거동이 들먹거려지면서 웃음 씨리즈를 역어내곤 했다.
그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날의 악역을 맡았던 나 역시 이젠 두상 양옆엔 흰 머리카락이 성성하다. 얼추 흰 닭이 된 듯하다. 고달팠던 이민 살이, 욕구 불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내 머리카락의 진액을 다 빼냈지 싶다. 어떤 사람은 내 머리카락에 염색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런다고 흰 닭이 새까만 오골계 되기는 만무할 게고 그저 옛날의 그 흰 닭 아저씨처럼 나로 인해 몇 사람이라도 순한 웃음 웃어줄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그것으로 더 바랄 것이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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