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서명 운동은 올해 2월 28일부터 5월 중순까지 인터넷상에서 전 세계적으로4,200만의 서명자를 확보하는 대대적인 성과를 내었습니다. 단일사안으로 단기간 이와 같은 수의 서명자를 확보한 서명운동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이 성과는 다시 말하면 “과거 만행을 속죄하지 않은 전범국가가 과연 세계 지도국이 될 자격이 있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준엄한 국제여론 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과거 나치의 전쟁범죄, 강제노역, 문화재수탈 등의 과거 만행에 대해 수 차례에 걸쳐 반성, 사죄, 배상이라는 응분의 조치를 취했으나 일본은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는 일본은 갈수록 군국주의적 성향이 강성해지면서 한국과는 독도문제, 중국과는 조어도(센까구)문제등의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고 또한 끊임없는 역사왜곡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나라는 일본과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아난 총장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일본의 상임위 진출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공적인 자리에서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안보리 진출이라는 현안은 일본의 침략전쟁과 만행으로 얼룩진 아시아의 과거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아시아국가들이 해결해야할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풀어가야할 인류의 역사적 과제입니다. 과거청산 없는 일본의 UN 최고 의결기구 진출은 유엔헌장 정신을 걸고 인간성과 인류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걸고 켤코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유엔은 지난 20세기 인류전체를 공멸케할 세계 대전을 두 차례나 치른 직후 앞으로는 그러한 참화를 막아야한다는 세계인의 염원과 인권존중 정신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특히 개인이 강대국, 약소국에 속하거나 여성, 남성을 막론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인권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 유엔헌장을 탄생케한 기본 정신입니다. 이 기본 정신을 지키기 위해 UN의 주요 구성국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은 전쟁범죄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안보리 확대 논의는 앞으로 안보리가 세계 평화와 안보에 관한 중차대한 문제들을 결정할 기구이기 때문에 21세기의 시대적 변화와 요구를 수용할 때 더욱 힘을 받을 것입니다. 2차 대전 직후 소수의 강대국을 제외하고 지구촌은 아직도 식민상태였거나 갓 해방된 신생 독립국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세계정세에 대한 뉴스나 정보를 접할 문명의 이기도 없었고 문자해독률도 매우 낮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지구촌의 민초들은 더이상 무지몽매한 식민상태의 백성이 아닙니다. 지구촌 시민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인터넷을 통해 마음껏 정보를 접하고 의견을 나누며 세계 평화와 안보를 결정짓는 이슈에도 옳은 길이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4,200만 인터넷서명자들은 디지털혁명시대의 능동적 참여자로서 안보리 개혁에 역사의 형평성이 존재함을, 역사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기를 원합니다.
만약 아난 총장께서 유엔재정 충당에 대한 일본의 공여가 지대하기 때문에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신다면 다시 한번 숙고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재정적 기여에 의한 안보리 진출이 이루어진다면 유엔 헌정사에 돈으로 세계 정의를 살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계속 진보해왔습니다. 17~18세기만 해도 아프리카 흑인은 쇠사슬에 묶이고 채찍에 찢기며 노예로 팔려 가는 참혹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난 총장께서 1997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하실 때 인종적 배경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인류의 역사가 진보해 왔기 때문이며 인류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살아있는 한 전범국가 일본의 상임위진출은 전 지구촌의 양심과 상식이 허용치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침략과 학살의 만행과 끔찍한 반인륜 범죄의 어두운 역사를 경제적, 정치적 힘으로 은폐, 왜곡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세계의 양심은 원하고 있습니다. 아난 총장의 현명한 판단과 지도력아래 동시에 일본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양심으로 거듭나서 세계의 존경받는 국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호혜, 평등, 상생의 원칙으로 지구촌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21세기를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정연진/정의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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