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타임지가 미국대도시 시장들에 대한 기획특집을 보도하면서 리처드 리오던 당시 LA시장의 이름을 로버트라고 잘못 썼다. 시카고의 리처드 데일리나 뉴욕의 루돌프 줄리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LA시장직이 얼마나 허약했던가를 보여준 단면이다. 그러나 아마 당분간은 앤젤리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런 실수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LA의 새 시장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가 요즘 미 정계에서 뜨겁게 각광받는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며 LA를 덩달아 신나게 하고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정가에서 열띤 환영을 받았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뉴스위크의 표지를 장식했으며 그의 취임식에는 미전국 각계의 인사들이 다투어 몰려오며 축제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6월초 워싱턴에 갔을 땐 한 기자가 물었다. 백악관에 도전할 겁니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수없이 묻고있다. 주지사에 출마할 겁니까? 그때마다 그는 대답한다. “난 LA 시장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하룻밤새 스타가 되어있더라는 말을 요즘의 비아라이고사만큼 실감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물론 미 전국적으로 라티노 정치력이 급부상하는 시기에 현대 LA의 첫 라티노시장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사람들과 미디어를 함께 사로잡은 것은 지칠줄 모르고 일마다 뛰어드는 그의 열정이다.
취임식은 내일이지만 당선 다음날부터 지난 몇주간 그는 적극적으로 시정에 매달렸다. 역대 어느 시장보다 더 바쁘게 곳곳을 누비며 주7일 하루24시간 강행군을 마다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밤샘 협상으로 14개월간 끌어온 호텔노조파업 중재에 성공했고 워싱턴으로 날아가 LA마케팅에 열을 올렸으며 교내폭력이 발생한 현장으로 달려갔고 정적까지 포함한 각 공직자들의 취임식, 동네축구 시구, 리틀리그 시상, 한인노동상담소 창립기념행사, 본보주최 한류축제에 이르기까지 커뮤니티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의 활짝웃음과 힘찬악수에 가는 곳마다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가 그를 찾아간 게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찾아 왔어요!” “그의 넘치는 에너지를 보면 우리도 힘이 절로 납니다!” 라티노 뿐 아니라 백인, 흑인, 동양인도 그렇게 감탄했다.
전국적 스타로 떠오르며 그는 단시간에 ‘정치가’로서의 발판을 굳혔다. 기분좋게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도 타고난 편이다. 그러나 시장은 정치가인 동시에 행정가다. 수십억달러 예산을 효율적으로 경영해야할 대기업의 총수여야 한다. 게다가 그의 앞에 놓인 숙제들은 만만치 않다. 시장의 파워도 현실적으로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공립학교 개선을 주요 이슈로 내세웠지만 현 LA통합교육구엔 시장의 입김이 미치지 못한다. 뉴욕과 시카고의 공립교 관할권은 시장에 속하지만 LA는 아니다. 현재 선거로 뽑는 7명 교육위원을 시장 임명제로 바꾸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주법을 개정해야 한다. 악화일로의 LA 공립학교 상황을 비판하며 주법을 개정해달라는 그의 요청에 주의회가 얼마나 움직여 줄지는 그의 역량을 테스트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교육이상으로 LA의 난제는 교통체증이다. 트래픽에 발묶여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매년 1인당 평균 93시간에 달한다. 그는 자신이 MTA 위원장을 겸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차, 버스등 대중교통에서 신호등과 하이웨이 램프까지도 관장하는 MTA를 직접 진두지휘하는 한편 메트로레일을 위한 연방기금을 확보하고 카풀등 주민들의 자발적 협조를 얻어내겠다는 그의 플랜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 범죄와 경기부양과 불법이민과 인종갈 등등…강하고 빠른 변화를 구체적으로 체감하기 원하는 주민들의 욕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비아라이고사 자신일 것이다. 기대가 높을수록 위험부담도 큰 것은 당연하다.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도 클 것이다.
아직은 밀월기간이다. 주민들도 미디어도 축하와 찬사를 보내는 이 하니문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란 변덕스런 애인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찬사란 덧없는 것이지요. 결국은 뭔가를 보여주어야지요. 난 시장이 되기를 정말 원했고 준비가 완료된 상탭니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할 겁니다. 그러나 넘어질 때마다 곧 다시 일어나 더 힘차게 달릴 겁니다”
52년 일생 내내 계속되었던 역경과 불운에 부딪칠 때마다 곧 다시 일어서며 결국 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라선 그의 다짐은 주변 사람에게 신뢰와 함께 동참하고 싶다는 신바람을 준다. 첫날이 되기 전부터 이미 달리기를 시작한 비아라이고사의 ‘신바람 나는 LA‘를 우리도 당분간은 함께 즐기고 싶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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