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는 유대-기독교 전통과 함께 서양 문명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그리스 도시 국가 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테네다. 철학, 과학, 문학, 예술, 역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그만한 업적을 이룬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네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후대에 그에 못지 않게 큰 영향을 미친 도시 국가가 있었다. 바로 스파르타다. 아테네가 개인의 존엄을 인정하고 가능한 한 모든 영역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힘쓴 반면 스파르타에서 개개인은 국가에 충성하고 그 존립을 위해 희생되는 존재로 여겨졌다. 또 아테네가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상업의 자유를 허용한 것과 달리 스파르타에서 모든 재산은 국가의 소유로 개개인은 귀금속을 소지하는 것이 금지됐다. 재산뿐 아니라 국민 자체를 국가의 소유물로 여겨 약한 어린 아이는 들판에 내다버려 죽게 했다.
이런 무자비한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였지만 스파르타를 찬미한 사람은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플라톤이다. 개개인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스파르타야말로 이상 국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대표작 ‘국가론’에 나오는 국가의 모델이 스파르타다. 그의 이상 국가에서는 사유재산제가 폐지되고 엘리트 계급의 경우는 아내마저 공유한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스와핑의 기원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지식인들이 스파르타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 가장 준열한 비판자는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모든 인간이 국가에 충성하고 그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스승의 주장을 반박하고 개인의 행복 추구야말로 삶의 목적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 필수 불가결한 수단으로 사유 재산권의 보호를 들었다. 개개인이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사유 재산이 없는 한 개인의 자유도 행복 추구도 공염불이라는 것이다.
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논쟁은 그 후 2,000년이 지난 후 루소-로크간의 논쟁으로 부활한다. 재산권 보장, 이익 추구의 자유, 제한된 정부를 주창한 로크와 달리 열렬한 스파르타 찬미자였던 루소는 모든 국민은 사심을 버리고 국가의 일반의지에 복종해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가르쳤다. 이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강제로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루소의 사상을 승계한 것이 그의 수제자 로베스피에르가 세운 프랑스 혁명 정부와 그 정신을 이어받은 레닌의 소련이다. 반면 로크의 사상은 영국의 입헌 민주주의를 거쳐 미 건국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미 ‘독립 선언서’에 ‘생명’과 ‘자유’에 이어 들어 있는 ‘행복 추구권’은 미국의 이념적 뿌리가 아리스토텔레스-로크의 토양에 박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독립 선언서’와 함께 미국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인 연방 헌법도 수정 헌법 5조에서 ‘누구도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재산을 빼앗길 수 없으며’ 그럴 경우에도 ‘공공용도(public use)에 한하며’ ‘정당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 주 코네티컷 뉴 런던 주민들이 ‘시 정부가 도시 재개발을 이유로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수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5대 4로 시 정부 편을 들어줬다. 길을 내거나 관공서를 짓는 등 공공용도가 아니더라도 도시 재개발 등 ‘공공의 이익’(public benefit)을 위한 것이면 수용령을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시정부가 재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시민들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량을 준 것이라며 시 관리들과 연줄이 있는 개발업자들이 힘없는 일반 시민들의 재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보상 협상에서도 수용령 발동의 위협이 남아 있는 한 시민들은 불리한 입장에서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파르타에서 소련에 이르기까지의 서양사는 사유 재산권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구두선임을 보여준다. ‘대표 없는 과세’에 반대해 혁명을 일으킨 미 건국의 아버지들은 재산권 존중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뒀다. 이번 판결에 찬 표를 던진 연방 대법원 판사들은 미 건국 이념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