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적포도주만이 숙성할 수 있다”
화이트중 우수한 샤도네 5~10년 숙성 가능
레드중 보졸레 누보 출시 몇달 안에 마셔야
잘 숙성하려면 태닌·산도 ·당도가 풍부해야
품질좋은 카버네 소비뇽 오래 두어도 좋아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것이다.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은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예’이기도 하고 ‘아니오’이기도 하다.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이 있는가 하면, 오래 두면 오히려 나쁘게 변질되는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우선 간단하게 이렇게 답변한다.
“비싼 레드 와인만이 오래될수록 맛이 좋아집니다”
이 답변을 조금 더 세분화해 보자. 화이트 와인은 숙성하지 않는 와인이고, 레드 와인은 숙성할 수 있는 와인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도 정확하지 않은 답변이다. 화이트 와인 중에도 품질이 우수한 샤도네는 5~10년 숙성할 수 있는 반면, 레드 와인 중에도 보졸레 누보는 출시된 지 몇 달 안에 마시지 않으면 맛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와인이 숙성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와인은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아서 코르크 마개로 꽉 닫아놓은 병 속에서도 계속 성장하여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데 이 과정을 숙성(aging)이라고 말한다. 주의할 것은 모든 생명체가 청년기에 가장 아름답고 중년기에 무르익어 성숙하듯이 와인도 맛이 가장 좋아지는 시기가 있으며 그 시기를 넘겼을 경우 맛이 내리막길을 걷다가 나중에는 아주 신맛 즉 식초로 변해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피크를 넘긴 와인에 대해서는 ‘오버 더 힐’(This wine goes over the hill)이란 표현을 쓴다.
그러면 와인은 어떻게 숙성하는 것일까?
와인의 맛은 크게 세가지 요소로 느껴진다. 태닌(tannin)과 산도(acid), 당도(sweetness)가 그것으로, 태닌은 포도껍질에서 얻어진 떫은 맛, 산도는 포도의 신맛, 당도는 단맛이다. 나이가 어린 와인은 신맛, 떫은 맛, 과일맛이 모두 크고 거칠며 강하게 느껴지는 반면 오래된 와인에서는 이 맛들이 다 융화되어 훨씬 부드럽게 느껴지는데 이것이 숙성의 결과이다.
와인이 잘 숙성하려면 태닌과 산도, 당도가 다 풍부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태닌이다. 이 태닌이 오랜 세월 숙성하는 동안 포도주의 거친 성분들을 끌어안고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래된 와인에서는 침전물이 가라앉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태닌이다.
처음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거친 성분들의 모서리를 갈아 모두 자기 몸으로 끌어안으면서 점점 입자가 커진 것이다. 백포도주에는 이 태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숙성하기 힘들다. 또한 적포도주 중에서도 멀로는 카버네 소비뇽보다 태닌이 적고, 피노 누아는 태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역시 오랜 저장은 권할 만 하지 못하다.
태닌이 가장 많은 품종은 카버네 소비뇽으로, 오랜 숙성이 가능한 와인의 대부분이 카버네 소비뇽을 주 품종으로 만든 적포도주들이다. 특히 고급 적포도주의 대명사인 프랑스 보르도 레드 와인의 경우 적어도 10년이 지난 후에 마셔야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으며, 30년 이상 두어도 맛이 변치 않고 오히려 더 우아해질만큼 좋은 적포도주에서 숙성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 모든 경우는 보관상태가 대단히 양호하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어떤 순서로 빨리 마셔야 하는지 정리해보자. 첫째가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 6개월 이내 마셔야할 정도로 수명이 가장 짧다.
그 다음으로는 것은 백포도주들. 특히 맛이 가벼운 소비뇽 블랑이나 피노 그리 같은 와인은 1~2년 내에 마셔야 한다. 그러나 백포도주 중에서도 디저트 와인은 당도가 높기 때문에 오래 두어도 좋은데 디저트 와인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소테른(Sauternes) 같은 것은 10년, 20년, 30년, 40년… 오래둘수록 그 맛이 더 우아해진다고 한다.
레드 와인은 보통 3~5년 내에 마시는 것이 좋다. 피노 누아와 같이 가벼운 적포도주는 5년 이내, 멀로는 4~7년까지 좋고, 카버네 소비뇽의 경우 10~15년 사이에 가장 잘 숙성된 맛을 낸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와인은 사서 금방 마시라고 출시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켓에서 살 수 있는 와인, 식사와 더불어 즐기기 위한 와인이라면 사자마자 금방 마셔도 좋다는 얘기다.
하지만 좋은 와인의 잘 숙성된 맛을 즐기고 싶다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레드 와인을 여러병 사다 잘 보관해두었다가 10년쯤 후에 마셔보면 좋을 것이다. 특별히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때 오래 저장했던 와인을 꺼내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축하하며 마신다면 더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자녀가 태어난 해에 수확한 포도로 빚은 레드 와인을 몇 케이스씩 사두었다가 아이의 각종 기념일에 꺼내 마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좋은 적포도주는 해가 갈수록 가격도 비싸지고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투자라는 면에서도 매우 유익하다 할 수 있다.
프랑스 보르도 산 레드 와인은 수십년이 지나도 균형잡힌 맛을 선사한다. 최고급 와인 중 하나인 샤토 오브리옹 1929년 산 와인이 뽀얗게 먼지를 쓰고 있다.
나파 밸리의 샤토 몬텔레나 와이너리도 최고급 카버네 소비뇽을 생산한다. 오래된 적포도주를 꺼내보는 와이너리 관계자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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