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엔지니어, 수필가>
중국을 찾아서
K형, 서안(西安)으로 갑니다. 옛 말에 온 서울 장안이 떠들썩하다고 했는데 그 연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바로 서안의 옛 이름이 장안(長安)이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왕성했던 당나라 때 인구 2백만이 넘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의 뉴욕이나 런던과 같았겠지요. 그 때. 신라, 일본은 물론, 아랍 유학생들까지 몰려들었던 선진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서울 장안이란 합성어가 생겨난 유래가 되었지요.
서안으로 구름에 달 가듯이 갑니다. 2200년 전,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천도한 고도(古都). 그 후, 한(漢)을 거쳐 당(唐)에 이르기까지 숱한 영욕의 세월을 견뎌낸 역사의 현장입니다. 그 도읍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기 위해 설렘과 호기심을 가득 안고 떠납니다. 마치 불경을 찾아 먼 서역(西域)으로 떠나던 당나라 현장법사 일행처럼 제 나름대로 역사 바로 보기란 일말의 사명감까지 품고 떠납니다.
오후 늦게 서안공항에 내렸습니다. 새로 말끔히 단장된 공항 청사는 화사한 형광판 벽 장식물들로 싱그러운 느낌이 가득했습니다. 노후한 모습을 버리고, 이제 서안은 병마용(兵馬俑) 유적으로 인해 국제 관광지로 크게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서안은 당의 멸망 후 지난 천년간 계속 내리막길이었다지요. 그러다가 마치 신의 점지인 양 1974년 어느 농부가 밭에서 우물을 파던 중 병마용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젠 매년 150만 이상이 몰려드는 중국 관광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병마용(Terra-cotta)은 한마디로 불가사이였습니다. 진시황이 죽은 후 산 군대를 순장시키는 대신 흙을 구워 만든 인형(허수아비 俑) 군사들과 말들을 묻은 무덤입니다. 우선 그 규모가 놀랍습니다. 현재 3개의 갱만 발굴하였는데 축구장 4개를 합친 것보다 더 컸습니다. 갱에 가까이 다가가니, 선두엔 6척 장신 무사들이 가로 3열로, 그 뒤로 약 7천 병졸들이 11열 전투 종대를 이루며 창과 긴 병기를 들고 정렬해 있었습니다. 기마병, 보병, 궁병(弓兵)들과 전차들이 혼합되어 서로 독립된 단위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금방 전투에 임할 듯, 남쪽 병사는 남을, 북쪽으로 선 병사들은 북을 경계하며 서 있습니다.
병마용의 예술성은 더욱 경이로웠습니다. 그 옛날 폭군의 억압을 받던 사람들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소문대로 병사들의 표정이 각자 다릅니다. 수염과 상투 튼 모양, 허리띠, 신발조차도 각양각색입니다. 눈을 부릅뜬 자, 약간 웃는 표정, 턱을 치켜든 모양, 한결같이 살아있는 듯 섬뜩할 지경입니다. 변방 시찰 중 갑자기 죽은 진시황의 시체를 몰래 입성할 때 냄새를 감추려고 전복을 실은 수레를 뒤따르게 했다는데, 급히 장례를 치뤄야 했던 그 와중에도 작품의 조잡함이 조금도 없습니다.
K형, 나는 이 조각품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병사들 옷자락에 조그맣게 새겨진 도공(陶工)들의 이름들을 찾아내었습니다. 책임을 지우려고 강제로 이름을 써넣게 했다는 설도 있지만 믿어지지 않습니다. 예술의 혼을 작품에 새김은 자긍심이지 어찌하여 강제력의 표현이겠습니까? 작품 하나 하나에 마치 입김을 불어넣듯 새겨놓은 예술혼의 흔적이었습니다.
나는 병마용을 바라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곱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불후의 세계적 문화 유산도 따지고 보면 세기적 폭군의 폭정의 소산이었습니다. 만약 진시황이 어질고 선한 왕이었다면 자기 사후를 위해 이런 대규모 사업을 벌여 가난한 백성들을 파탄으로 몰아갈 리가 없었겠지요. 그러나 오늘에 와서 그 폭정의 상징이 후예들을 먹여 살리는 모순을 봅니다. 그렇다면 2천년이 지난 지금, 후예들에게 누가 폭군이고 누가 선왕입니까?
석양 무렵, 종루(鐘樓)와 고루(鼓樓)에 올랐습니다. 옛날, 낮에 종을, 밤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는 성곽. 이곳은 또한 멀고 먼 실크로드로 떠나는 출발지였습니다. 그런 나는 서역보다 더 먼 미국 땅에서 천년세월이 지난 후에 이곳에 온 셈입니다. 사실 이제 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현장의 깨달음처럼 결국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좁디좁은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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