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방향도 말할 수 없습니다
69년만의 ‘마운트 디아블로 벅휘트’ 발견자 마이클 박(UC버클리 박사과정) 씨
극진한 식물보호에
허탕친 동행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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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서른다섯 만학도 마이클 박 씨가 이스트베이의 성배(Holy Grail of the East Bay)로 불리는 희귀식물 마운트 디아블로 벅휘트(Mount Diablo Buckwheat. 메밀의 일종. 학명 Erigonum truncatum)를 69년만에 발견한 것은 지난 5월10일 오전이었다.
이곳 환경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세이브 마운트 디아블로’가 공원관리공단측에 기증한 땅이며 등산로에서 의외로 가까운 곳이라는 점만 공개됐을 뿐 구체적인 장소는 비밀이다. 대나물처럼 작고 연약해보이면서도 탐스러운 분홍색 꽃을 피운 귀한 식물 12그루(언론매체에 따라 18그루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박 씨는 12그루라고 했음)에 대한 뉴스는 바버라 어터 UC버클리 교수 등 식물학계 권위자들의 공식확인 절차를 거쳐 5월24일 콘트라코스타 타임스지 등 주류언론에 처음 보도됐다. (본보 5월25일자 A1면)
박 씨 동행취재는 남가주 풀러튼에 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부탁해 간접승낙을 받아낸 뒤에도 다른 지역으로 식물연구를 떠난 그를 기다리면서 또다시 며칠을 허비하느라 지난 14일에야 이뤄졌다.
이날 오전 10시쯤. 댄빌의 어느 샤핑몰 주차장.
약속보다 한참 늦게 그는 먼지를 뒤집어쓴 빨간색 토요타 4Runner를 타고 나타났다. 초면이었지만 차림새만 봐도 단박에 박 씨라고 짐작됐다. 그을린 얼굴, 삐죽삐죽한 수염, 봉두난발에 가까운 약간 곱슬 꽁지머리, 흙 묻은 등산화, 벙거지 모자, 오른손에 작은 현미경 왼손에 물통, 골프가방 비슷한 장비가방…. 반팔 윗도리와 반바지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산사람이었다.
시종 쾌활한 대화상대였다. 시시콜콜 신변잡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질문에 기대보다 서너줌씩 덤을 얹힌 대답을 안겨줬다.
결혼했어요?
싱글이에요. 여자친구도 없어요, 이러고 다니느라 시간도 없어서. 또 누가 저 같은 사람을 좋아하기나 하겠어요? 하하하. 그래도 이 일이 재미있으니까 그냥 사는 거죠, 어렵기는 하지만.
마운트 디아블로 벅휘트? 그 식물에 대해서 좀…
1863년에 처음 발견됐고 1936년에 7번째로 발견된 이후 이번에 제가 8번째로….(별도박스 참조)
처음 봤을 때 그게 그건지 알아봤어요?
그 식물에 대해 알기는 했지만 확신은 못했어요. 사이언스라는 게, 원래 모든 걸 의심하도록 교육받잖아요. 처음 보는 것이라 이렇게(무릎을 꿇고) 찬찬히 살펴보고는 수퍼바이저(바버라 어터 교수)에게 보고했지요. 하필 그날(5월10일) 카메라도 가져가지 않아 이틀뒤에 사진을 찍어 보여드리고 또 그분이 직접 현장을 확인한 뒤에야 마운트 디아블로 벅휘트라고 결론이 내려졌어요.
11시가 다 되어갈 즈음, 정상이 바라보이는 커리포인트.
(정상을 가리키며) 저쪽입니까, 그걸 발견한 곳이?
당연히 ‘그곳’으로 가는 줄 알았던 기자는 거기서 꿈을 깨야 했다. 박 씨는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정답은 결코 주지 않았다. 거짓말하기 싫으니까 모른다는 말은 안하지만 어디인지는 말할 수 없다더니 저쪽(봉우리 아래 골짜기)을 보세요, 그 옆에 바위가 있는 곳을. 거기 비슷하게 생겼어요라고 말하고는 한참 웃었다. 가리키는 범위가 워낙 넓은데다 늘 보는 식물 이름도 잘 모르는 까막눈 기자에게 그 말은 아무말도 아니었다.
이쪽이다 저쪽이다, 동서남북 방향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걸 보호하자니 어쩔 수 없어요. (콘트라코스타 타임스 등 주류언론에 난) 사진들은 우리가 찍어서 보내준 거에요. KCBS나 산호세NBC같은 데서 인터뷰할 때도 그 근방에서 한 게 아니라 여기나 다른 엉뚱한 데서 한 거에요.거기에는 통제선도 없어요. 그러면 괜히 사람들한테 알리는 꼴이 되니까요. 거기 위치 아는 사람은 수퍼바이저 등 모두 15명밖에 안돼요.
별수 없이 그럴싸한 다른 곳으로 옮겨 ‘연출사진’을 찍으러 가는 동안 그를 알아본 노부부가 눈인사를 보내고는 몇 번 굿 잡(Good Job)을 연발했다. 식물학계와 주류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는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그러나 현장확인을 위한 2시간40분 동행취재는 끝내 허탕이었다. 다만, 희귀식물 보호에 그토록 철저한 그의 프로정신을 확인한 것은 허탕 속에 건진 소득이었다. 보통사람들의 관심이 덜 가는 분야에서 그토록 열심히 자기몫을 다하고 있는 젊은 코리안이 있음을 확인한 것 또한 뿌듯한 소득이었다. <정태수 기자>
◇마이클 박 - LA에서 태어난 2세로 그곳에서 고교까지 다녔다. 1990년 UC버클리에 입학, 물리학을 공부하다 흥미를 잃어 그만두고 7-8년을 괴짜로 보냈다. 사업을 벌였다 돈을 날리기도 하고 무작정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산과 식물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일찍이 식물을 좋아했고, 약초 사업을 하기도 했다. 이 역시 재미는 못봤지만 식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새 의욕을 심어줬다. 그래서 2001년 다시 UC버클리에 들어갔다. 지금은 박사과정 첫해, 대략 4년정도 더 하면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뒤 대학강단에 설지 회사에 들어갈지 아직 모르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한번 가르쳐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13세때 한인청소년 대표단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 비무장지대와 어느 절 등지를 둘러본 것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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