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안철수기업관 ‘아름다운 닮은꼴’
컴도사가 된 의사 안철수 박사 축하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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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의 배경부터 말씀드리면, 의과대학을 들어가긴 했지만 어릴 적부터 전자부문에 관심이 많았다. 중2때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기도 했고. 의사 집안 장남이다보니 의대에 들어갔지만 방학때면 전자공학 분야에 더 관심을 가졌다.
(서울)의대 다닐 때 고민한 것은, 배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회에 봉사할 것인가, 사회로부터 받기만 하고 저는 하나도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신자는 아닌데 가톨릭 봉사서클에 가입해 (학기중) 토요일에는 구로동에서 방학때는 무의촌에서 무료봉사를 했다.
박사과정에서는 심장에서 부정맥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전기생리학이다보니 퓨터 실력도 상당해졌다. 88년 박사과정 때 한국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바이러스가 발견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의대 본대 후배 한명이 찾아와 치료방법이 없다더라고 그래서 그날 밤새 연구했다. 컴퓨터 복사 프로그램은 내가 명령을 내릴 때 실행되지만, 컴퓨터 바이러스는 내가 원하지 않는 때 실행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날밤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을 해서 백신을 만들었다. 그것을 컴퓨터 잡지에, 바이러스 분석부터 치료(방법)까지 만들어 발표했다.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부정맥만 (연구)하게 됐다. 2주일쯤 후에 (그 잡지사) 기자가 (그 글을 읽고 독자들이 맡겨놓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플로피 디스켓을 많이 가져왔다.
사회로부터 받기만 했는데 이걸(바이러스 백신을) 만들면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까지 백신만들기에 매달렸다. 그걸로 돈벌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박사학위 받고 전임강사 하고 군의관 하고, 나중에 보니 ‘새벽형 인간’으로 7년을 살면서도 보람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고민은 그 다음에 있었다. 바이러스가 매년 2배씩 늘어나 새벽 파트타임 잡으로는 감당이 안됐다. (의대) 지도교수가 된다는 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건데 지도교수가 새벽에 딴짓을 한다면 학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6개월정도 고민했다. 선택을 할 때는 과거를 잊어버려야 한다,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의과 분야는 훌륭한 분이 많지만 컴퓨터 바이러스 분야는 저 혼자였다. 20대 박사, 20대 교수, 그런 것을 선택을 할 때는 잊어버려야 했다. 그래서 의과대 교수를 그만 두고 중소기업 사장, 안철수연구소 사장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게 1995년, 즉 10년 전 일이다.
기업이란 한사람이 할 수 없는 의미있는 일을
여럿이 모여서 하는 것…수익은 목적 아닌 결과
그때 기업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정리했다. 조직원의 생활을 영위하고 자아발전? 그렇다면 프리랜서의 모임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저는 첫째 한사람이 할 수 없는 의미있는 일을 여러사람이 모여서 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또, 기업의 목적이 수익이다 그러는데 그것이 좋은가 의문을 가졌다. 불량식품 회사를 보면 그 기업은 수익은 올릴지 몰라도 사회악 아닌가. 그래서 둘째로 수익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라는 정립된 생각을 갖게 됐다. 셋째는, 개인사용자들에게는 계속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들에게는 돈을 받아서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주위분들이 대기업이나 그러는 것이지 당신 그러면 망한다고 그랬지만 10년 지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란 이름은 ‘한글과 컴퓨터’가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미국에는 사람 이름이 붙은 기업이 많은데 그래도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한국에는 사람 이름이 안붙어 있어도 한사람이 좌지우지하는 하는 것 같다. (안철수연구소라고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운영하겠다는 상징과도 같다, 저한테는.
안철수연구소를 처음 만들 때 기업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한글과 컴퓨터’가 사업계획서를 가져왔는데 손익계산서(대차대조표)에 왜 차변이 있고 대변이 있는지도 몰랐다. 딱 한가지만 궁금했다. 제가 좋아하는 책 읽고 사람들 안 만나고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사장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그러더라. 석달정도 해보니까, 죽기보다 싫은 일을 하는 게 리더라는 걸 깨달았다. 개인의 이익과 조직의 이익이 부딪칠 때 개인의 이익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97년6월에 실리콘밸리 어느 회사 회장이 방문해달라고 해서 정탐 겸 배울 겸 왔다. 회장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97년1월에 일본의 토종 (컴퓨터바이러스) 백신회사를 샀다고 설명하고는 (안철수연구소의) 매출액의 10배인 1,000만달러를 주겠으니 팔라고 했다. 당시 나는 목적과 결과를 혼동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듣는 순간 어리벙벙했지만 저 사람이 나한테 주는(준다는) 게 돈인데 돈 빼면 하나도 없더라. 협박도 하더라, 한국에 지사를 설립할 거라고. 실제로 설립했는데 마침 IMF 위기(한국의 외환위기)가 와서 금방 문닫았다. (안철수연구소에게는) IMF가 위기가 아니라 시간을 벌어준 기회가 됐다.
기업은 영업이익이 나야지 영업외 이익을 버티면 안된다. 그래서 (안철수연구소는) 펀딩을 안받는다. 작년에 처음으로 순익이 100억원을 돌파했다. 2년정도 공부하고 돌아가면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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