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의무를 이행하거나 면제받기 전에는 한국 국적을 이탈할 수 없게 만든 개정 국적법은 직계존속이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 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자에게만 해당하므로 원칙적으로는 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영향이 없다. 하지만 이런 법이 있기도 전에 발생한 가수 유승준의 입국금지조치는 국민여론이라는 이유로 한국입국 자체를 아직도 근거가 모호한 행정조치로 지속하고 있다. 해외로 이민한 한국동포들의 후예들은 한국에서 다른 외국인들보다 더 심한 차별을 받는 것 같다.
이번 국적이탈과 관련된 한국정부, 입법기관, 그리고 언론들의 행태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법무부는 국적을 이탈한 경우의 불이익들을 사전에 홍보하기보다 여론이 악화되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뒷북을 치며 마치 국적이탈을 못하도록 혹은 취소하도록 위협하는 듯하였다. 한국군의 한해 입영필요인원이 약 25만명인데 현재의 병력자원은 남아도는 실정이다. 따라서 수백명에 불과한 이중국적자들의 병역이탈은 감정적인 문제이지 실질적 효과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이중국적자들로 하여금 양자택일을 강요한 후 그 결과에 대해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이 가혹한 여론재판을 할 것이 아니라 대체 복무등 이들을 포용하는 대안을 강구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론에 따라 입법과 법 집행이 좌우되는 후진국형에서 벗어나 세계11위로 상승한 한국의 경제적 위치에 걸맞게 엄정한 법 적용을 통해 선진적 법치국가가 되도록 노력해야한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불감증을 문제삼겠다는 것이 여론에 영합하려는 언론들이 국적 포기자 부모의 신상 공개 명분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사회 지도층 혹은 고위층은 주로 공무원, 국공립대 교수, 국영기업체 연구원 등을 지칭한다.
하지만 사립대 교수, 상사원 및 기업체임원, 변호사와 의사 등의 자영업자들이라고 하여 낮은 도덕율을 적용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사회 지도층이란 발상부터가 관리라는 지배계급과 그외는 모두 피지배계급으로 분리하는 봉건적 사고방식이므로 국민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일관된 도덕적 기준을 사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대중의 알 권리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상충되는 경우 한국에서는 후자가 너무 심하게 훼손을 당하지만 당연시된다. 프라이버시는 남의 간섭 내지 눈을 피할수 있는 자유를 말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법에 의해 명시적으로 보호된다.
법무부는 국적이탈자와 호주의 실명을 관보에 공시한다고 한다. 따라서 가족들의 신상명세가 전부 노출되는 것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된다. 이를 근거로 언론등이 이들의 신분을 노출시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은 국적법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산물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이 약하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제고와 이를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나는 유학을 마친 후 미국에서 직장을 잡고 영주권도 받았다. 그후 미국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되었지만 한국국적을 포기한다는 것이 찜찜하여 한동안 그냥 있었다. 그러다가 큰애가 대학에 들어갈 때쯤에 필요를 느껴 시민권을 받고 한국영사관에 국적포기신청서를 요청하였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의아해 하며 “한국국적을 그냥 갖고 계시지요”라고 하였다. 따라서 본의 아니게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몇년 후 한국의 한 대학으로 갈 기회가 생겼는데 나의 국적을 묻기에 미국 시민권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시민권을 포기하란다. 친구에게 상의를 했더니 한국은 묵시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므로 한국국적이 있다고 했더라면 그런 문제가 없었을텐데라고 하였다. 즉 미국시민권을 받았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한국국적이 포기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런 방식의 이중국적은 제한적으로 존재한다.
병역기피가 한국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서울 지역 대학생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도 군대에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다. 만약 국적 포기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자신들에게도 주어졌을 때 얼마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래도 병역의무를 택할 지 궁금하다.
임진혁/새크릿 하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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