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회와 한인회장 재조명 해야
▶ 시끄러울수록 민심은 고개돌린다. 봉사정신에 입각한 자세 필요.
과거 한인회 경선이 실시되면 적어도 두어 달간은 전 커뮤니티가 떠들썩하게 두 패로 나뉘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름을 무릅쓰고 힘겨루기에 들어가곤 했었다.
지지자들은 때론 몸싸움과 욕설, 삿대질까지 서슴지 않으며, 자기들이 미는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후보자는 정책과 아이디어를 목소리 높여 내세우다 못해 급기야는 많게는 수십만 달러까지 되는 자금을 동원하며 표심 잡기에 돌입했었다.
이처럼 열띤 선거전이 적임자 선출이라는 결론으로 도달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과거 변효현, 진학수 후보가 격돌했던 20대 시카고 한인회장 선거는 64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투표를 치르고도 결과는 법원 행으로 연결, 경선 자체가 무효가 됐었다. 두 후보가 수개월 동안 투자했던 물질적, 시간적 노력, 정신적 헌신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시점에서 짚어봐야 할 것은 과연 한인회장이란 자리가 쓸데없는 소모전과 함께 수십만 달러까지 써가며 반드시 경선을 치러야 하는 위치인가 하는 점이다.
한인회장은 권력이 있는 공기관의 수장자리도 아니고, 가문의 영광에 빛나는 명예가 뒤따르는 자리도 아니다. 그야말로 다문화권에서 한인들의 위상정립과 권익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봉사정신에 입각, 개인의 돈과 시간을 희생해야하는 헌신의 자리다. 그저 한인들과 동포사회를 위해 묵묵히 일하겠다는 순수한 마음가짐만이 요구될 뿐이다.
이처럼 한인회장의 역할과 위치를 십분 이해한다면 한인회장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의 마음 가짐에도 여유가 생기게 된다. 설령 다른 출마자가 나타났다고 해도 상대방의 의견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렴, 옳다고 생각하면 양보할 수도 있는것이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대화와 타협으로 의견 조율도 가능한 것이다. 그그 자리엔 반드시 내가 있어야 된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경선으로 치닿게 된다.
물론 경선이란 것이 여러면으로 봤을 때 민주사회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출마한 입후보자들이 처음의 다짐처럼‘공명선거’를 외치면서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며 페어플레이를 해 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반면 선거전이 과열되면서 양측간 비방과 음해, 모략이 일삼아지고 급기야 유권자들의 표심을 돈으로라도 사야겠다는 움직임이 시작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과거의 전례에서도 알수 있지만 한인회장 선거를 위해 많게는 수십만 달러씩 뿌려야 하는 상황이 재현된다면 이는 출마자 본인에게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한인회 경선을 치른 전직 한인회장은 “경선을 하게 되면 출마자들은 최소 20만달러 가까이는 쓰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바 있다. 또 다른 전직한인회장은 “두번의 선거전을 치르면서 적어도 100만달러 정도는 썼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지고 있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의지와 포부를 펼쳐 보기도 전에 애꿎은 선거전으로 거액이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다.
과연 이같은 과정과 손실을 거쳐 한인회장에 당선됐다고 해도 그 당선자가 행복과 보람을 느낄지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한인회장이 뭔데 피땀 흘린 사재와 노력을 투자해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한인회장의 본질이 봉사가 아니라 경선을 통한 자리 획득으로 왜곡된다면 차라리 한인회를 없애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일부의 목소리도 들린다.
여기에 선거 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따라다니는 커뮤니티의 분열과 혼란은 결코 짧은 시간 안에는 보상받을 수 없다. 한인들은 여전히 두패로 갈려 ‘이번 선거가 잘못 됩네’하며 딴지를 걸것이고, 설령 선출된 사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래 네가 하는 일에 내가 도와 주나 봐라’하며 방관하는 자세를 보이는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 기관단체장은 “한인들의 정서로는 경선을 안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만약 선거전이 안 좋게라도 끝나면 아마 적어도 임기 2년 동안은 반대편 쪽 사람들은 한인회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시카고 한인사회는 몇 번의 경선을 치르면서 영남권 인사들의 경우 지난 십수년간, 선후배도 없이 두패로 갈려 원수처럼 지내고 있다.
이처럼 커뮤니티가 갈라지고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한인들의 관심 또한 동포사회에서 점점 멀어지게 마련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 27대 한인회장 선거전이 일단락 됐는데도 불구, 후유증을 앓고 있는 현재의 시카고 한인사회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본보는 한인커뮤니티의 정서와 분위기를 반영하는 정론지로서 한인회장이란 위치를 격하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화합과 결속을 이어가도 소수민족으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쉽지 않은 이민사회의 특성상, 자칫 분열이 초래될 수 있는 한인회장선거의 경우 경선 보다는 봉사를 진정으로 원하는 인사가 단독 입후보해 회장직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본보는 제하의 글을 경선 이전부터 게재하고 싶었으나 제27대 한인회장 선거에 출마하고자 했던 두 인사들에게 누가 될까 자제한 바 있음을 밝혀둔다.
박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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