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보다‘기’살릴 학교로 가라
여름방학이 코앞에 다가온 매년 이맘때면 학부모들의 마음은 조급해 진다. 특히 중학교를 졸업한 후 올 가을 고교에 진학할 자녀가 있다면 학교선택을 두고 적지 않은 혼란을 겪기도 한다. ‘고교는 수재(highly gifted) 매그닛 스쿨이나 IB프로그램 등 시험을 치르고라도 우수 프로그램에 들어가야 교육적으로 좋다’는 의견에 맞서 ‘아니다, 오히려 성적은 평균수준에 학생 인종구성이나 가정환경이 다양한 일반적인 학교가 대입에 유리하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이 문제는 한인 학부모들에게 중요한 교육이슈가 되고 있다. 정답은 뭘까. 아니, 과연 정답은 있을까. 자녀가 우여곡절의 고교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한 선배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의 소감과 충고, 또 이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봤다.
중학땐 올A... 노력해도 성적 부진 당황
명문고 진학 앤드류군 경우
10학년 중반 일반학교로 옮기자
GPA올라 끝내 UCLA장학생 입학
파운틴밸리에 사는 앤드류(12학년)는 지난 2001년 남가주 최고의 성적 우수교 중 하나인 OC북부의 한 공립고교 IB프로그램에 시험을 쳐 합격했다.
20대1이라는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합격했다는 감격에 앤드류의 어머니도, 앤드류도 매일 왕복 2시간 반씩 걸리는 고단한 통학을 기꺼이 감수하며 다녔다.
IB프로그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12학년에 올라가 디플로마까지 받으면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것은 물론, 입학 후 대부분 대학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니 일거양득일 터였다. 목표를 향해 1년을 버텼지만 이듬해 결국 주거지 학교로의 전학을 결정하고 말았다.
“중학교에선 올 A학점만 받던 앤드류가 노력을 덜하는 것도 아닌데, 성적이 영 부진하다 싶더니 10학년 1학기 중간성적표엔 C학점도 있었고 GPA는 3.5로 뚝 떨어졌다. 이러다간 어지간한 4년제 대학도 어려울 것 같았다”는 것이 어머니가 설명하는 전학의 이유.
다급해진 이들은 곧바로 사설 진학상담소의 전문 컨설턴트와 상담한 결과 ‘학기가 끝나기 전, 서둘러 일반학교로 전학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과 함께 ‘재학중인 학교는 학년별 IB프로그램 350명 중 디플로마를 받는 인원은 고작 50명 내외’라며 ‘그 때 전학하기엔 너무 늦다’는 컨설턴트의 설득력 있는 설명이 와 닿았단다.
“특히 사립대학 지원엔 추천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12학년에 전학가면 누가 추천서를 써줄 수 있겠느냐’는 지적에 앞이 캄캄하더라”고 회상했다. 앤드류와 상의 끝에 미련 없이 거주지 근처의 등록 가능한 학교로 전학을 결정했지만 그도 쉽지만은 않았다.
“동네 학교 교장을 만나 사정을 얘기했더니 ‘시험 쳐서 갈 때는 언제고 왜 돌아왔느냐, 우리도 만원이다’면서 빈정대더라”며 “자존심이고 뭐고 납작 엎드려 간청했더니 결국 중학 시절 앤드류의 성품과 성적을 잘 알던 그 학교 카운슬러의 도움으로 전학이 가능했다”고 전했다.
3.5였던 앤드류의 GPA가 10학년 1학기에 4.26으로 금새 뛰어 오르더니, 11학년엔 4.5로, 12학년 5월 현재 4.66으로 거듭 향상됐고 올 가을 UCLA에 장학생으로 입학이 결정됐다.
앤드류 어머니에 따르면 중국계 학생들 가운데는 이처럼 소위 우수고 입시에 응시해 합격을 확인하고는 정작 등록은 거주지 일반 고교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일단 아이 기는 살려 놓고, 거주지 일반 학교서 좋은 성적으로 대우받다가 명문대 들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란다. “특히 이런 미등록 공석에 보결로 합격된 명단 가운데는 한인들도 많은데, 이 경우 입학 후 9학년에 벌써 기초미적분(pre-calculus)을 하는 실력자들 사이에 치여 고전이 한층 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입학시험을 치르고, 몇 시간씩 걸리는 통학을 감수하고라도 성적우수 고교에 입학해야만 교육효과가 높은가, 또는 적어도 대학진학에 유리한가’를 둘러싼 의견은 분분하다. 소위 명문고교 출신이라 해서 무조건 대학입학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으의견이다. 시험에 열중하고 있는 중학생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사진은 특정기사내용과 관계없음.
학교친구들과 어울려 하향평준화 후회
일반학교간 데이빗군 경우
‘뱀의 머리 되자’ 집근처 학교로
성적 무관심, 대학 갈 생각 안해
몬트로즈의 데이빗은(12학년)는 앤드류와는 상반된 경우.
아버지 박씨가 집을 세주고 큰 길 건너 아파트를 렌트해 온 식구의 이사를 결정한 것은 4년 전 장남 데이빗(UCI 3학년)이 대학에 들어간 직후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학군을 고려해 이사왔다”는 박씨는 ‘바로 옆이 부촌이라 학교를 잘 골라 보내지 않으면 아이들 기가 눌리든지, 아니면 ‘이것 해내라, 저것 해내라’ 하는 등쌀에 부모가 못 배겨낼 것’이라던 이웃의 충고를 새겨듣고는 “성적도 중간쯤, 학생구성도 백인이나 한인보다 히스패닉이 다수인 학교에 등록할 수 있는 주소지를 골라 일부러 집을 샀다”고 설명했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길 바랐던 것.
하지만 “중학교를 수석 졸업했던 데이빗의 성적이 고교에 올라가면서 곤두박질 치는가 싶더니 11학년이 됐는데 성적관리는커녕, 아예 대학 갈 생각이 없더라”고 전했다.
대학진학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대부분의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더니 ‘선배들처럼 인근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면 될 것 아니냐’는 아들의 말을 듣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박씨는 “애초 계획이던 ‘군계일학’은 고사하고 하향평준화 돼 버린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라며 후회가 막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데이빗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다시 공부에 흥미를 붙여 지난해 UCI 3학년으로 편입했지만 둘째 아이 애니 때는 “아예 살던 집을 세놓고 큰 길 건너 작은 아파트로 옮겨가 4년째 렌트해 살면서 교육열 높다는 한인 밀집 고교에 넣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애니가 지원한 6개 UC 계열대로부터 모두 입학 허가서를 받고 그중 골라 UC버클리로 올 가을 진학하게 된 데는 너나 없이 명문대 진학에 열올리는 학교분위기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어머니 박씨도 “10∼11학년에 가서 학교를 옮기고 뒤늦게 학원이다, 과외다 시켜봐야 본인이 대학갈 마음 없이는 부모만 죽을 노릇”이라며 “거주지도, 학교도 미리 몇 년 씩 앞을 내다보고 선택해야 하는 것을 막내가 대학가고 난 지금에서야 확실히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상경 기자>
sangk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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