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소설(허구) 보다 더 재미있다는 말이 있다. 1972년 6월 17일 새벽 2시30분 경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건물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신사복을 입고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던 5명의 괴한들이 체포되었기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명명된 사건이 발생한다. 뉴욕 타임즈 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신문들은 그 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3류 절도사건’ 정도로 취급한 반면 워싱턴 포스트만은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 두 사회부 기자를 그 사건에만 전념시켜 여러 차례 1면 기사로 다룬다. 그해 11월의 대선에서 닉슨 대통령이 압승했지만 그 두 기자의 끈질긴 사건 추적으로 백악관과 닉슨 재선위원회가 사건 배후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검찰 조사와 상원 청문회가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백악관 구수회의에 존 미첼 법무장관, 할더맨 비서실장 등만이 아니라 닉슨까지도 참여했었음이 드러나고, 또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비밀 녹음장치가 되어있었음이 밝혀진다. 존 시리카 연방판사는 닉슨에게 백악관 녹음 테이프가 이 형사사건의 결정적 증거니까 검찰에 제출해야 된다고 명령하고 연방 하원에서는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시작된다. 닉슨은 ‘대통령의 기밀유지 특권’을 근거로 연방판사의 명령에 불복했지만 연방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대통령도 사법상의 증거제출을 거부할 수 없으니까 비밀 녹음 테이프를 내놓아야 한다고 판결하게 되자 사면초가 신세가 된 닉슨은 1974년 8월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불명예를 겪게 된다.
현직 대통령을 중도하차 시키는데 수훈갑을 한 우드워드와 번스틴 두 기자는 퓰리처 상을 받았고 ‘대통령의 모든 참모들’(All the President’s Men) 이라는 책을 써서 백만장자가 된다. 그 책은 더스틴 호프만이 번스틴 역으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우드워드 역으로 영화화되어 그 두 사람은 20세기 말엽에 가장 잘 알려진 미국 기자들이 되었다.
그런데 물론 그 두 사람의 부지런한 취재능력이 사건의 핵심을 파헤치는 기초가 되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 두 사람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확인을 해준 ‘딥 스로트’(Deep Throat)라는 비밀 취재 소스가 있었다는 내용이 책에도, 영화에도 잘 모사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신분은 죽은 다음에나 공개할 수 있다는 게 그 두 사람과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주필이던 벤자민 브래들리의 주장이었다.
그와 같이 33년이나 지켜진 비밀이 이번 주에 밝혀졌다. 당시 FBI의 부국장이던 마크 펠트(91) 씨가 바로 비밀 소스였다는 사실이 그의 변호사가 배니티 페어(Vanity Fair) 잡지에 기고함으로써 알려졌기 때문이다. 취재원에게 한 약속 때문에 특종 중의 특종 기사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잡지에 의해 선수치기를 당한 워싱턴 포스트 지도 그 사실을 확인해 주게 되었다.
포스트는 6월 2일자 신문에서 현재 편집 부국장으로 있는 우드워드의 배경설명을 대서특필로 다루었다. 눈이 침침해서 기사를 대강대강 읽는 버릇이 생긴 나로서도 첫 줄부터 끝 줄 까지 다 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글이었다.
우선 펠트와 우드워드의 우연한 조우 장면부터 그렇다. 1970년 해군 중위로 해군 참모총장실에 근무했던 우드워드는 주요 문서를 전달하러 백악관에 가곤 했었는데 대기실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기가 십상이었던 모양이다. 어떤 날 그 옆에 아주 위엄 있어 보이는 중년신사가 기다리기에 마치 비행기 여행 중 옆 좌석 사람과 이야기하듯 이야기가 시작되었단다. 제대를 앞두고 어떤 직장을 가질까 고민 중이던 우드워드는 자기가 조지 워싱턴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론 강의를 듣는다면서 일리노이 출신 하워 의원의 보좌관 노릇을 했었다는 말을 하자 말을 아끼던 그 중년신사(마트 펠트)는 자기도 1930년대에 조지 워싱턴 법대를 다녔고 자기 주 출신 상원의원실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FBI의 부국장보라고 직함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같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 두 사람은 전화로 우드워드의 장래 계획에 대해 의논하는 상대가 된다. 삼촌과 조카, 또는 스승과 제자 같은 관계가 발전되어 우드워드는 법과대학은 3년이 걸리니까 기자가 되겠다는 자기의 포부도 펠트에게 털어놓기까지 했다. 또 펠트는 자기의 중요한 뉴스 소스가 될 것이라고 우드워드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메릴랜드 주간지에서 일하다가 워싱턴 포스트로 온 우드워드에게 펠트는 정말 비길 데 없는 비밀 소스가 된다. 예를 들면 펠트는 자기 이름은 물론 FBI 내부자라고도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여러 차례 기막힌 뉴스거리를 제공한다. 한 예는 닉슨의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가 집무실에서 2,500불 뇌물을 현금으로 받아 서랍에 넣었다는 정보가 FBI에 들어왔다는 귀띔을 해준다. 메릴랜드 전담기자에게 우드워드가 그 얘기를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지만 2년 후에는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어 애그뉴가 사직을 하게 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 우드워드는 펠트에게 워터게이트 침입자들과 백악관 근무 중인 CIA 전 직원과의 관계를 확인해달라는 전화를 한다. 펠트는 그 사실을 확인해주면서 전화는 절대로 하지 말고 자기를 만나고 싶으면 우드워드 아파트의 발코니에 놓인 화분의 위치를 옮겨 놓으라고 말한다. 자기가 우드워드를 만나고 싶으면 우드워드가 받아 보는 뉴욕 타임즈 정치 국제기사가 실린 A 섹션 20페이지의 20이란 숫자에 동그라미가 쳐 있을 것이고 시계바늘 선이 그어져 있을 것이라고 부연한다. 택시를 타고 멀리서 내려 걸어와서 새벽 2시경 만나는 장소는 버지니아 라슬린에 소재한 지하 파킹장.
펠트가 후버 다음으로 FBI 국장이 안 되었기 때문에 닉슨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 ‘범법자’인지, 또는 닉슨 정권의 헌정문란을 비밀리에 폭로함으로써 헌정질서 유지에 공헌을 한 ‘영웅’인지, 또 펠트의 동기가 무엇인지 한 동안 논란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또 베스트 셀러를 쓰게 될 것이고.
(지난 주 칼럼에서 시편 37:25는 37:29로 바로잡습니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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