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대학은 스티브 잡스 애플 컴퓨터회장을 확보했고 USC는 우주인 닐 암스트롱을, 하버드는 배우 존 리스고우를, 노스웨스턴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택했다. 그리고 조지아주의 아그네스 스캇 칼리지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섭외하는데 성공했다. 5월부터 6월중순까지 계속 열리고 있는 미대학 졸업식의 초청 연사들이다.
지혜와 유우머가 넘치는 명사들의 스피치는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가장 짧은 연설이 최고의 명연설이라는 원칙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지만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어렵게, 비싸게 모셔온 이들의 스피치에는 거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의 가슴에 와 닿는 인생의 예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등으로 풀어가는 그들의 메시지는 결국 한가지로 압축된다 - 바로 여러분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부시대통령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명 연설가라는 것은 졸업연설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정세에 접근하는 시각부터 다르다. 지난 주말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부시는 테러전쟁에서의 승리가 최상의 임무라고 강조하며 최신전략과 최신무기로 보강한 21세기 군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해 코넬대학에서 행한 클린턴 스피치의 주제는 ‘휴머니티’였다. 테러전쟁에서 궁극적 승리를 거두기위해선 무력대결보다는 나라와 나라, 종교와 종교, 인종과 인종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공동의 인류애를 키워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편견을 갖지않은 젊은 여러분이 실현해야할 최상의 과제라고 당부했었다.
몇주전 LA타임스는 올해 USC를 졸업하는 한 불법체류 여대생 앤의 스토리를 소개했었다. 신분보호를 위해 국적도 밝히지 않았지만 남미, 중동, 한국 어느 이민자녀의 경우일 수도 있어 마음이 끌렸다. 10여년전 합법으로 입국했다가 비자만료로 불법체류가 되어버린 앤은 가난한 홀어머니가 네 동생을 키우고있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민국 레이더망을 피해가며 신분을 감추었다. ‘합법주민’처럼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고 소셜시큐리티 카드까지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액센트 없는 유창한 영어였다.
롱비치 커뮤니티 칼리지를 마친 앤은 USC에 합격했다. 장학금까지 받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추가재정지원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불법체류가 드러난 것이다. 이민국에 고발은 당하지 않았으나 장학금이 취소되었다. 변호사는 시민권자와 결혼을 권했고 몇몇 친구들이 서류결혼을 자청해주었으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학비를 벌기위해 휴학계를 냈다. 투잡이 아니라 쓰리잡을 뛰었다. 그동안 받은 10여개의 상장을 벽에 가득 붙여놓았다. 새벽5시 눈이 떠지지 않을 때마다 내가 왜 일어나야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1년후 등록금을 마련해 돌아온 그에게 학교는 아무것도 묻지않고 복학을 허락했다. 매일 4시간씩 버스와 기차로 학교와 직장을 오가며 조마조마 숨도 크게 안쉰 4년을 무사히 지내고 이제 졸업을 맞게 된 그는 TV방송국의 해외특파원이 될 꿈에 부풀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모두의 딸일 수 있는 한 여학생의 가슴조린 삶이 안쓰럽고 혼자 힘으로 이루어낸 그의 졸업이 장하긴 하지만 이민사회 그늘엔 종종 있는 이야기였다.
놀라운 것은 그 기사에 대한 미국독자들의 반응이었다. 어떻게 범법자를 미화할 수 있느냐, 감상적으로 그를 미화하는 대신 FBI에 고발했었어야 한다, 그 범법자의 불법입학으로 인해 미국시민인 다른 학생한명이 떨어진 것을 아느냐…클린턴의 휴머니티보다 부시의 무력대응을 지지하는 정서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강하게 미국민들 저변에 퍼져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금년에도 약2백만명의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한다. 제각기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들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싱싱하게 아름다운 그들을 바라보면 우리에게도 잃었던 꿈이 다시 되살아난다. 우리는 못했지만 그들은 해 낼 것이라는 바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풍요한 나라 미국의 엘리트인 그들이 그 책임감을 깨닫고 사회의 그늘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이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평화의 반대도 전쟁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파수꾼이여, 이제 새 날이 그 여린 날개를 펴고 떠오르고 있다. 우리의 삶에 기쁨을 채우기 위해선 우리는 타인의 두려움에 함께 눈떠야 한다.”
자신보다 낮은 곳에 베푸는 따뜻한 관심은 금년 졸업생들에게도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첫 걸음이 될수 있을 것이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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