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검사에서 한 청년은 자기가 귀머거리라서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손으로 시늉을 했더란다. 그런데 수석군의관이 자기 옆에 앉은 동료에게 귓속말로 “저 아이는 정말 귀가 먹었으니까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속삭였더니 그 청년이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절을 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손가락에 신경통이 있어서 아무 것도 집어 올릴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청년에게 신경통이 있기 전에는 어떻게 물건을 집어 올렸느냐고 군의관이 질문하니까 “이렇게 했지요” 하면서 정상적인 손놀림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군대 안 가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절 사실인지 풍문인지 그 비슷한 유언비어가 많이 횡행했던 것을 기억한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느니 하면서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소위 지도층 집안에서 특히 아들들 군대 보내기를 몹시 싫어했었다. 6.25 동란 때 군대 간다는 것은 전사와 전상의 지름길이었기에 병역기피자들이 많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군대생활 2, 3년이 사회진출에 지장을 준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기피하기도 했다. 또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여러 신문사 편집국이 상당수 병역기피자들의 온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병역기피의 수단 방법이 교묘해져 튼튼한 젊은이들이 병종 판정을 받는 수가 드물지 않았으며 군의관들이 돈을 받고 그렇게 했었던 사건들이 발각되기도 했다.
이광재(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의 단지사건에 대한 최근 보도를 보고 그런 과거사가 생각되었다. 이 의원의 오른쪽 손의 둘째손가락은 잘라져있기 때문에 그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었던 모양이다. 이 의원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2년 전에는 그의 손가락 사정을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단다. “당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위장취업자로 인천의 한 주물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다가 잘렸다”고. 그런데 월간조선의 폭로기사에 의하면 이 씨의 손가락이 그리 잘라진 것이 아니라 군대 안 가기 위해 자기 스스로 손가락을 잘랐다는 것이다.
19일 이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암울했던 1986년, 시위를 주동할 예정이었던 내가 입대하게 되면 보안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할 것이고, 고문을 못 이겨 동지의 이름을 불게되면 동지들이 잡힐 수 있는 상황이어서 스스로 손가락을 버려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는 혈서를 썼다.” 이 말을 믿자면 2년 전 그의 손가락 설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또 조선일보의 사설에 따르면 이 최근의 설명조차 참말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뼈 째 잘라 혈서를 쓰면 워낙 통증이 심해 정상인이라면 못할 일이라는 정형외과 전문의의 말이 인용되었다. 그리고 이 의원의 일구이언 사례들이 지적된다. 지난 대선 때 선 앤 문 측으로부터 1억 원의 검은 돈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다가 사실로 드러났다든지, 최근의 철도청 러시아 유전개발사건을 둘러싼 그의 횡설수설이 예들이다.
남의 병역 과거를 들추는 필자는 깨끗하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까 보아 내 얘기도 해야되겠다. 나로서는 살인하지 말라,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성경의 계명을 문자그대로 받아들였기에 군대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발이 심한 편평족이라 군대 징집면제 판정을 받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여호와의 증인 중 나와 같은 또래이던 유흥렬과 안현기 처럼 군대 대신 양심적인 병역거부로 감옥행을 선택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OECD 국가들 중 유일하게 아직도 양심적인 병역거부자들에게 민간인 대체복부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800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청년들이 1년6개월 내지 2년형을 살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필자가 한국에 나갔을 때 여호와의 증인들 60여 명의 젊은이들이 수감되어 있는 성동 구치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구치소 강당에 모인 숫자는 40여 명 뿐이었다. 교도과장의 설명에 의하면 20명은 수인들의 귀중품 영치를 맡고 있거나 심지어는 미결수들이 재판 받으러 법원으로 호송될 때 교도관들의 보조로 따라가야 하는 필수요원들이기 때문에 집회에 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에 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민간인 대체봉사제도가 도입되어 그처럼 정직한 젊은이들이 옥고를 치르는 대신 중환자 간병 등 사회봉사를 하게될 날이 올는지.
<남선우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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