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분위기 간 곳 없고 관광객 북적
테이스팅 가격 거의 2배 오르고 노골적 상업화
무료 시음 가능한 하이츠 셀라스 인상적
첫 방문자 투어할 수 있는 세인트 수퍼리·스털링을
이달 초 사흘간 나파 밸리(Napa Valley)에 다녀왔다.
신록이 아름다운 5월이어서 굽이굽이 포도원의 경치가 그림 같았고, 날씨 또한 너무 좋아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지만, 한편 나파의 분위기가 많이 변한 것을 보며 안타까움도 느꼈던 여행이었다.
지난 4년간 매년 한번씩은 나파 밸리에 다녀왔는데 언제나 비슷했던 그곳의 분위기가 올해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여행하기 좋은 시즌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와인 붐에 기인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진지한 와인 애호가보다는 관광객이 많았고, 좁은 29번 길이 트래픽으로 엄청나게 밀렸다.
많은 와이너리들이 몇 년째 변치 않던 테이스팅 가격을 거의 두배로 올렸거나, 고급와인 프리미엄 테이스팅을 따로 만든 곳이 많아졌다. ‘세인트 수퍼리’(St. Supery)의 경우 5달러였던 것이 10달러로 올랐고, 전에 8달러였던 ‘니바움 코폴라’(Nibaum Coppola)는 12달러가 되었으며, ‘조셉 펠프스’(Joseph Phelps)는 일반 시음이 8달러, ‘인시그니아’ 시음이 포함될 경우 20달러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8달러짜리는 아예 없어지고 모두 20달러가 되었다. 원래 비싼데다 미리 예약해야 하는 ‘오퍼스 원’(Opus One), ‘퀸테사’(Quintessa), ‘스완슨’(Swanson) 등은 25달러, ‘파 니엔테’(Far Niente)는 40달러나 한다.
문제는 이렇게 비싸졌는데도 전처럼 즐겁고 여유있게 와인 맛보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코폴라와 세인트 수퍼리, 로버트 몬다비처럼 잘 알려진 와이너리들은 완전히 시장통처럼 사람들이 북적였고, 언제나 한산하여 피크닉하는 기분으로 테이스팅 할 수 있었던 조셉 펠프스의 야외 시음장도 사람들이 몰려 이곳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당연히 와이너리 직원들의 태도도 전과 달라졌다. 시음 고객들과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느긋하게 즐기는 모습은 간 데 없고, 다들 분주한 테이스팅 룸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서브하느라 대화는커녕 순서에 따라 와인을 받아 마시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게다가 고객들이 와인을 사가도록 은근히 유도하는 인상마저 받게되니 여러 가지로 즐거운 느낌은 아니었다.
전에도 나파 밸리는 너무 상업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있어 왔다. 좋은 와인 만드는 일에 주력하는 포도원 지역이라기보다 경쟁적으로 멋진 테이스팅 룸을 지어놓고 관광과 샤핑 거리 제공에 더 치중한다는 비난이 제기되곤 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더 심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이번에 방문한 와이너리는 세인 수퍼리, 니바움 코폴라, 하이츠 셀라스(Heitz Cellars), 케익브레드 셀라스(Cakebread Cellars),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 오퍼스 원, 조셉 펠프스, 스택스 립 와인 셀라스(Stags Leap Wine Cellars), 스털링(Sterling) 등 9곳이다. 이중 5군데는 전에도 몇번씩 갔던 곳이고, 4군데는 새롭게 방문해 본 와이너리들이다.
새롭게 발견한 하이츠 셀라스는 드물게 무료 시음이 가능한 곳으로 와인 맛도 품위있고 개성적이어서 인상깊었다. 케익브레드 셀라(시음 10달러) 역시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는 곳답게 아름다운 포도밭과 시음장 등이 매혹적이고 시음한 와인들 모두 대단히 훌륭한 맛이었다.
나파에서도 최고급 카버네 소비뇽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스택스 립 디스트릭 내에 위치한 스택스 립 와인 셀라스는 일반 시음 10달러, 프리미어 에스테이트 와인 시음 30달러인데, 카버네의 진수를 맛보려면 이곳의 프리미어 테이스팅을 하는 것이 좋다.
나파 밸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샤토 몬텔레나는 조금 멀지만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하고 싶다. 이 와이너리 덕분에 나파의 이름이 세계 와인 지도에 기록되었고 지금도 아주 우수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6년 파리에서 열린 시음회에서 73년산 샤토 몬텔레나 샤도네와 역시 73년산 스택스 립 카버네 소비뇽이 프랑스산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를 제치고 우승해 전세계를 깜짝 놀래켰으며 이때 이후 나파가 유명해진 것이다.
이곳에 가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든과 호수도 구경할 수 있고 시음도 두가지로 할 수 있는데 10달러짜리 일반 시음과 25달러짜리 버티컬 테이스팅(vertical tasting)이 있다. 버티컬 시음이란 3개 빈티지의 카버네 소비뇽을 맛보게 해주는 테이스팅으로 연도에 따른 와인 맛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시음이다.
나파 밸리에 처음 가는 사람, 와인 양조과정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은 셀프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는 세인트 수퍼리와 스털링을 한번 들러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파 중심부에서 좀 떨어진 북쪽에 자리잡은 스털링 와이너리는 대중적인 중저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인데 산꼭대기까지 트램을 타고 올라가 전체 시설을 둘러보고 테이스팅 할 수 있는 특별시설을 갖추고 있다.(15달러) 솔직히 말해서 나파 밸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지만 오랜만에 케이블카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라가 발아래 펼쳐지는 포도원 풍경도 보고 양조시설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나파에서 가장 호화롭게 지어진 오퍼스 원 와이너리의 입구.
조셉 펠프스 와이너리는 야외에서 테이스팅을 제공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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