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누이 동생네가 그림 한 점을 선물로 가져왔다.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면서도 나는 고마워서 한쪽 벽에 걸어놓고 보고 있다. Norwegian Star 라는 그림인데 나로서는 그림 속에 내재하는 작가의 사상과 그 아름다움의 세계에 참여할 미술적 조예가 없다. 붉은 색 드레스에 자색 망또를 두르고 푸른색의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그녀의 감은 눈두덩은 푸르둥둥하고 입술은 작고 도톰한데 빨갛게 칠해져 콧날은 없는 듯 한 그 얼굴. 잘되고 유명한 그림이라니 균형 잡힌 얼굴과 몸매에 초점이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색깔은 진한 원색을 사용했으니 나의 취향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 또 미소가 없으니 영혼의 전달도 없는 듯 하다. 아마도 작가가 표현하기 원하는 것은 어떤 다른 무엇이 있는가 보다. 색깔의 조화와 앉아있는 여인을 그려 낸 그 의미를 읽을 수 있어야겠는데 답답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 가서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고는 한다. 온갖 다른 인종에다 균형이 잘 잡힌 사람보다는 그림의 여인처럼 울퉁불퉁한 불균형의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내면에는 모두가 다르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의 그림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마음의 텃밭에 사랑의 꽃을 심고 행복을 가꾸어 가며 살 것이다. 다만 내가 이 그림 속에 내재한 의미를 모르듯이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속내의 아름다운 그림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찾아보게 되는가 보다.
파리에 있는 루부르 박물관에 처음 갔을 때 ‘모나리자’는 꼭 봐야겠다고 이태리 미술품들이 진열된 전시실을 찾아갔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섰는지 그 그림 앞으로는 가까이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모나리자를 바라보며 옛적 고향 땅 산기슭에 자지러지게 피어난 진달래를 떠 올렸음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입가 양쪽 끝으로 살짝 열린 듯 하게 끌어올리며 머금은 미소는 그 얼굴에 가득하고 또 나에게도 영혼의 전달이 오는 듯 하였음은 또 어쩜이었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적어도 이 그림에서 모양을 그리는 선을 중요시 하기 보다는 그림 속에 영혼을 그려 넣으려 했다니 나 같은 문외한은 관객들이 터뜨리는 탄성 속으로 숨어 들 수밖에 없었다. 행복한 미소인지 슬픔을 감추려는 미소인지 조차 가릴 수 도 없으면서 나는 오늘 당신의 미소를 보았다는 행복감만으로 못 박듯 서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개인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이 그림을 도적질했던 사람들은 온 인류에게 스며오는 이 미소의 파문을 가로막을 뻔했으나, 그런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모나리자의 미소를 더욱 높은 파도로 밀려오게 하였을 뿐이구나.
상대방의 순수한 마음의 미소를 자신의 왜곡된 감정적 판단에 따라 질시의 비웃음이라 억지를 부린다면 이는 미소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죄를 짖는 일이 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축적하려고 상대방의 이익과 명예와 행복을 방해하는 일도 동일한 범죄적 처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이익 추구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서로 미소를 주고받으며 이런 범죄들은 만들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다.
내 서재의 한쪽 벽 끝, 눈길이 잘 가지 않는 구석에 나를 그리던 초상화(?) 한 점이 미완성인 채 걸려있다. 많지 않은 시간을 쪼개어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화가들의 광장을 보기 위해 오른 쪽 옆에 있는 사원을 보는 것도 마다하고 숨차게 뛰어 그 곳에 갔었다. 사랑과 낭만이 술렁일 것 만 같아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었다. 초상화를 하나 그려 가라고 옷깃을 붙잡는 화가들의 초청으로 실망은 되었으나 결국 한 그럴듯한 화가 앞에 앉게 되었다. 정한 시간 내에 다 마칠 수 있다기에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사정이 그렇지 못해 그리던 그림을 집어들고 돌아오게 되었다. 사진을 볼 때와는 다르게 내가 이렇게 생겼나 하는 생각에 자주 드려다 보게 된다.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모든 모양은 갖추어져 있으니 어찌 보면 나 같고 달리 보면 아닌 것 같아서 미완성임을 탓해 보게 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입가에 여리게 퍼지는 미소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잔잔한 호수 가에 나무 그림자가 잠겨 있듯, 내 입가와 얼굴 전체에 미소가 젖어 있는 것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만큼은 못 되겠으나 꽤 그럴 듯한 미소를 짖고 있는 것이다. 여행 중에 내가 원하던 곳을 오게 되어 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이 즐거움 때문이었을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화가에게 미소를 전해 주었으니 지금도 기쁘다.
웃음은 꽃과 같아서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한다. 화려하게 펼쳐진 꽃 들판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는 그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미소하는 마음이지. 꽃을 짓밟고 싶은 사람도 있을까? 없지. 그 꽃 들판에 오물을 들어붓고 싶은 사람도 있을까? 없구말구.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더 아름답게 되도록 물주고 거름 주면 어떨까? 좋지. 마음속에 미소를 띄우고 살면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나리라. 미움, 질투, 경쟁, 이기심과 파괴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는 하나 서로가 먼저 양보하고, 향기로운 꽃밭을 펼쳐내듯, 미소를 보내 보면 어떨까? 좋구말구, 60의 나이를 넘기고도 아직도 미완성인 자신을 안타까워하며 드려다 본다, 초상화가 미완성이듯 나의 인격과 인생도 그리다 포기한 그림 같아서 절망스럽지만 미소하며 이웃들에게 용서와 자비를 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온 인류의 고뇌를 담당하는 부처님의 자비의 미소를 닮은 듯 하여 뭇 중생에게 자비의 미소를 나누어 줄 것 같기 때문이다.
Norwegian Star의 여인처럼 미소없이 살아온 과거는 지워 버리고 모나리자의 미소를 띄우며 이생의 슬픔 건너편에 영원한 행복이 있음을 얘기하며 살고 싶다. 이민 생활 30 몇 년여 생애에도 미소 없는 마른 막대기처럼 메마름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빨리 미소하기를 시작해 보아야겠다. 아름다움을 보기를 배우고 또 아름답다고 상대방에게 미소하여 말해 주며 살도록 애써 보아야겠다, 그러면 미소가 산울림 되어 돌아오겠지. 꽃 들판에 오물을 붓는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미소로 바라보도록 애쓰며 미완성의 초상화 속의 내가 끊임없이 미소하고 있듯 앞으로의 여생은 그렇게 살아 보고 싶다.
이제 미완성인 내 초상화 그림을 조금 더 밝은 앞쪽의 벽으로 내다 걸어야 할까 보다. 생김새는 보잘 것 없으나 매일 그 잔잔한 미소를 보며 더 닮아 가기 위해서-.
고대석
약 력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치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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