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70’s’ 열정적 디자이너 닮은점 많네!…복잡 미묘한 내면 섬세히 그릴터
김민정의 커다란 눈망울이 다시 태양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MBC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재복(김민준)이랑, 국(현빈)이랑 코끝 시린 사랑을 나눈 커트머리 에로배우 시연 역의 김민정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섬을 떠나 이번에는 70년대의 화려한 사교계로 뛰어든다.
스물셋의 인생 가운데 2/3를 연기자로 살아온 그녀는 ‘아일랜드’를 통해 성격파 배우의 가능성을 드러내며 비로소 아역 출신, 혹은 예쁘게 생긴 연기자 등과 같은 ‘무심한’ 수식어를 떨쳐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현재, 갈아입을 옷 역시 범상치 않다.
오는 23일 첫 방송되는 SBS 새 월화드라마 ‘패션 70’s’(연출 이재규)에서 김민정은 타임머신을 타고 정열의 화신으로 탈바꿈한다. 70년대 패션계를 주름잡은 디자이너 고준희 역으로 ‘화려한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드라마 개봉 박두 시점에서 만난 그녀는 산뜻한 단발머리와 치켜올린 긴 속눈썹으로 사뭇 낯선 자태를 뽐냈다. 그에게서 풍겨나?새로운 여인의 향기는 제법 고혹적이어서 신작을 향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김민정은 갈수록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연기자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 ‘아일랜드’가 오래오래 발목을 잡다
김민정이 성인 연기자로 강한 이미지를 새긴 첫 계기는 2002년 SBS 드라마 ‘라이벌’이었다. 악녀의 독기를 살벌하게 내뿜었고, 이후 얄미운 이미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김민정의 얼굴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드라마의 배역은 마냥 여우같고 이기적일 것처럼 보였던 그녀에게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으며 시청자들이 김민정을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드라마가 끝난 뒤 한참이 지난 올해 초까지도 시연의 말투, 행동 등에 젖어있었다는 김민정의 고백은 일견 수긍이 간다.
“한 번은 정옥 언니(‘아일랜드’의 인정옥 작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고 책망하며 엉엉 울기도 했다. 어떤 배역에 푹 빠진다는 게 그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지독히 사랑한 여인을 떠나보낸 것처럼 외로움과 허탈감에 시달린 김민정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패션 70’s’의 시놉시스를 읽었다. 고준희라는 역은 열정과 근성이 넘치는 디자이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적인 재능의 라이벌 더미(이요원) 때문에 열패감을 맛보는 인물이다.
김민정?시놉시스를 보면서 딸꾹질을 하듯 ‘헉’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신기하게도 나와 똑 닮은 구석이 많았다. 놀란 나머지 몇 번을 ‘헉, 헉’ 거렸다”며 배시시 웃었다.
모차르트와 샬리에르 가운데 한 명을 택하라면 천재의 그늘에 가려진 비운의 노력파 샬리에르의 삶에 손을 들겠다는 그녀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인간의 복잡미묘한 내면을 풍부하게 그려볼 참이다.
김민정이 오드리 헵번, 비비안 리 등 추억의 배우를 연상케 하는 현대적인 감각의 복고풍 의상을 다채롭게 보여준다는 점도 기대해볼 만하다. 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100여벌의 의상을 준비했다.
# 이혜영의 고독한 카리스마를 동경하며
김민정은 중견배우 이혜영이 이 드라마에서 선배 디자이너로 출연한다는 사실을 자기 일처럼 자랑했다.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을 보면서 이혜영의 고독한 카리스마에 매료당했다는 그녀는 “아직 얼굴만 쳐다봐도 부끄러워 말을 잘 못하겠다. 하지만 그 분하고 같이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고 신나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이혜영은 김민정이 지향하는 내일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배우라는 호칭을 달지 못한 것 같다. 그냥 듣기만 해도 입이 헤벌쭉 벌어지는 그 말에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는 과정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해왔고, 누구나 잘 하는 그런 배역이 아닌 나만의 색깔을 갖고 싶다.”
진지하게 조곤조곤 말을 내뱉는 김민정에게 ‘그 새 많이 성숙해졌다’고 한 마디를 던졌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귀엽게 반박했다.
“그 표현, 너무 상투적이다. 뻔한 것은 재미없는데….”
/조재원기자 miin@sportshankook.co.kr
/사진=홍기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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