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포드는 지난 100년 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영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자동차를 그는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 ‘보통 사람들’의 신발로 만들었다. 1908년 그의 공장에서 굴러 나온 모델 T는 공전의 히트를 쳐 10년 후에는 미국인들이 타고 다니는 차의 절반이 이 제품이었다.
1903년 세워진 포드 자동차의 약진은 단순히 자동차 뿐 아니라 철강, 석유, 고무, 알루미늄 등 연관 산업은 물론 도로 건설을 촉진하고 미국인의 주거, 식생활, 레저 등 삶의 전반적인 패턴을 바꿔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미시건 주 디어본에 세운 종합 자동차 제조 단지는 세계 최대의 산업 시설이었다. 미국이 20세기 신흥 공업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데는 자동차 산업의 부흥이 톡톡히 한몫을 했다.
그는 또 노사 관계에 있어서도 다른 어떤 기업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했으며 주 5일 40시간 근무제를 제일 먼저 도입했다. 미국인들이 하루 여덟 시간씩 일하며 주말 이틀을 쉬게 된 것은 누구보다 포드의 공이 크다. 그는 말년에 가서 자기가 만든 모델 T에 지나치게 집착, 이를 개선하기를 게을리 하고 할부제 판매도 거부했으며 아들 에젤이 죽은 후 손자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추태를 벌였지만 미국을 ‘자동차의 나라’로 만든 일등 공신이 그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포드가 방황하는 사이 1908년 뷰익을 모체로 해 탄생한 제네럴 모터스(GM)는 미국 자동차 시장을 파고들었다. 이 회사는 그 후 이보다 일찍 1897년 문을 올즈 모터스 등 독립 회사들을 잇달아 흡수하며 덩치를 키우고 힘들게 크랭크를 돌리지 않고 키만으로 발동을 거는 장치 등 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기술 혁신을 계속함으로써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도약했다. 1955년 연방 상원 청문회 출석한 찰리 윌슨 GM 회장의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발언은 GM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보여준다.
영원할 것 같았던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세는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꺾이기 시작한다. ‘개스를 마시는 차’(gas guzzler)가 주종을 이루던 미국 차의 틈새를 값싸고 연료비가 얼마 안 드는 일본차들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이 무슨 자동차를 만드냐’ 비웃음에도 불구, 그 후 지금까지 미국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은 하락 일로를 벗어나지 못해왔다.
지난 주 스탠더드 & 푸어사는 미국을 대표하는 GM과 포드의 채권을 ‘투기 채권’(junk bond)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두 회사의 종업원 은퇴비와 의료비 부담, 수입에 비한 부채 총액이 너무 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제2차 대전 직후 미국 정부가 임금을 통제하자 미 대기업들은 부족한 일손을 충당하기 위해 은퇴 및 의료 보험 등 소위 베네핏을 크게 늘렸다. 현재 GM이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의료비용은 철강 값보다 더 비싸다. 은퇴자 의료비는 정부가 부담하는 일본 기업과 경쟁에서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차가 팔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까지 이 두 회사를 먹여 살리던 대형 SUV 판매는 고유가와 함께 30~40%가 격감했다. 개스 가가 갤런 당 3달러에 육박하는 지금 마일리지가 10마일 남짓한 이런 차를 타려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일부 차종을 제외하고는 일본 차, 독일 차, 심지어는 한국 차와의 경쟁에서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다.
망하기 직전 크라이슬러를 되살린 아이아코카는 “경쟁은 좋은 것이다. 우리에게 자기 혁신을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생산자로 하여금 소비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소리 없이 요구하는 것은 자유 경쟁 체제의 제일 큰 장점이다. 역시 한 때 세계 최대의 기업이었던 AT&T에 이은 GM과 포드의 몰락은 끊임없이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살피고 그에 부응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만이 살아남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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