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한인상의 주최 제2회 한국무역박람회에서 빛을 본 수출업체들의 성공비화
성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저절로 오는 것은 행운일 따름이다. 한국의 중소업체에 대미수출의 징검다리가 돼주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한인상공회의소가 마련한 제2회 한국무역박람회에서 기대했던 대로 혹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을 거둔 업체들에게 행운이라고 말하면 결례다. 그들이 남모르게 흘린 땀에 대한 밀알같은 보상인 것이다. 내년 내후년 그 다음에도 쭉이어져야 할 또다른 성공스토리를 위하여, 그리고 이번 박람회에서 소득이 없어 빈손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쉴지도 모를 업체 관계자들에게 한두번 실패로 고개를 떨굴 필요가 없음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성공업체들의 ‘고달픈 성공담’을 엮는다. <글·사진-정태수 기자>
소리와 영상의 세계를 제패하는 그날까지
스피커 등 음향·영상기기 전문 (주)세중미디어 대야망
주전자가 둘 있다. 하나엔 따스한 물이, 또 하나엔 펄펄 끓는 물이 담겨 있다. 두 주전자에 각각 개구리 한 마리씩 집어넣는다. 어느 주전자 개구리가 살아남을까. 불행하게도 뜨거운 주전자행을 강요당한 개구리다. 앗 뜨거워. 미련없이 즉각 주전자에서 튀쳐나와 기약은 없지만 새삶을 개척해나간다. 그러나 따스한 주전자에 들여보내진 개구리는 그 따스함에 마음을 풀고 지내다 결국 삶아지고 만다,
어중간히 괜찮은 환경이 도전의식을 잃게 만드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비유되는 얘기다.
1990년대말 한국에 몰아닥친 소위 ‘IMF 위기’로부터 끝없이 이어진 경제불황이 아니었다면, 서울 소재 회사로는 유일하게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주)세중미디어(대표 김용욱)는 자칫 따스한 주전자 속 개구리가 됐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게는 안됐더라도, 지금처럼 감히 ‘소리세계의 제왕’을 꿈꾸며 세계의 문을 두드리지는 않았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 이전까지 15년가량 일본의 유명 음향기기와 영상기기를 들여다가 한국에 보급하면서 시쳇말로 별로 힘 안들이고도 잘먹고 잘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나갈 때 한달수입이 20억, 30억에 달했으니 공연히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황은 김용욱 대표에게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다. 남의 것 팔아다 ‘나는 조금 좋고 남은 많이 좋은’ 일보다는 자체 브랜드로 승부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특히 음향기기(스피커 앰프 마이크 등)에 대한 대대적인 기술개발에 나서 이제는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스피커 생산업체로 점프했다. 지난해 한국내 ‘귀밝은’ 음대교수 3명을 초대해 커튼으로 가려놓고 용량이 큰 세계정상급 스피커와 용량이 작은 세중미디어 스피커의 소리를 들려준 뒤 동급판정을 받고 자신감을 얻었다. 이름없는 작은용량 스피커로 이름있는 큰용량 스피커와 무승부를 했다면 승리다.
실은, 2002년 독일의 HZ사와 기술제휴를 하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이미 정상급 스피커 개발에 성공하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세계시장에 노크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당장 돈이 아쉽다고 내 맘에 안드는 물건 내놨다가 고급이미지 구축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김 대표의 고집 때문에 지금껏 세계시장 노크가 늦어졌다. 그가 내 맘에 안들면 안내놓다고 버팅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리의 고장(전남 무안) 출신으로 일찍이 소리에 귀를 뜬 그는 묵직하고 걸걸한 목소리, 아니 뱃소리로 육자배기에서 요즘 유행가까지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에다 국악기에서 양악기까지 못다루는 악기가 거의 없는 ‘소리의 도사’다. 지난 5일 수출입업체 환영만찬에서는 기막힌 섹소폰 솜씨를, 7일 동포한마당 잔치에서는 노래자랑 중간에 무대에 올라 금문교 너머 해변 어디를 응시하며 해변의 여인을 불러제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렇게 까다롭고 민감한 그의 귀로부터 비로소 합격판정을 받고 이번 박람회에 첫선을 보인 물건들을 ‘알아듣는 이들’은 금방 나왔다. 6개 업체가 서로 계약을 맺자고 덤비고 있다. 예상계약고는 낮게 잡아도 연간 200만달러 이상이다.
그런데도 김 대표는 쉽사리 계약서에 덜컥 사인하지 않고 희망바이어들에게 2주일 시한을 주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제출해달라는 말만 남긴 채 다른 수출업체 참가자들과 함께 훌쩍 리노·요세미티팍 여행을 떠났다. 도대체 누가 아쉬운지 모를 행보 또한 공연한 배짱이 아니다. 세중스피커의 품질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길게 봐서 우리 물건을 품질에 걸맞게 마케팅을 해줄 파트너가 중요하지 당장 아쉬운 것도 아닌데 아무나하고 계약을 맺었다가 한두번 좋고 나중에 후회해서는 안된다며 일본업체와 거래할 때 그들도 내게 그렇게 했고 거기서 배운 노하우라고 귀띔했다.
물건만 좋으면 사람은 옵니다. 자신 있습니다. 세계사람들이 우리 세중미디어 스피커를 통해 지금까지 들어온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를 듣게 될 날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삼세판도 있고 칠전팔기도 있는데…
(주)옥밀, 좌절 모르는 집념의 열매
한국에서 때밀이타올은 서양인들 눈으로 보면 때밀이타올이 아니라 수세미다. 시원하게 박박 밀어내야 된다는 비과학적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세미에 긁힌 살갗이 빨강게 상기되고 온몸이 후끈(따끔)거리는 것을, 때를 밀어주니 피돌기가 잘되는 것이라고 좋아하는 것 역시 순진무구한 착각이다. 그것은 피부에 대한 박해일 뿐이다.
경북 구미공단에 자리잡은 (주)옥밀(대표 김성표)의 옥밀타올은 박박 미는 시원함을 별로 줄이지 않으면서도 피부를 보살펴주는 신개념 타올이다. 따라서 김성표 대표 등 옥밀 관계자들은 ‘때밀이타올’이란 말 대신 ‘마사지타올’이란 말을 즐겨 쓴다.
2001년 10월 첫발을 내디딘 (주)옥밀이 밤낮을 잊은 노력으로 ‘섬유와 옥돌의 과학적 결합을 통한 신개념 타올’ 생산에 성공했지만, 좋은 물건이 곧 잘팔리는 물건은 아니었다. 때밀이와 마사지를 별개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벽도, 타올 하면 우선 000타올부터 찾는 고정관념도 여간 벅찬 게 아니었지만 김 대표의 집념앞에 하나하나 무너져 한국 내 곳곳에 옥밀대리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해외시장 개척에서도 김 대표의 집념은 빛을 발했다. 옥밀타올 가득 든 가방 하나 들고 그동안 16개국을 찾아다니며 시장개척에 나선 끝에 해외주문이 하나둘 늘고 있다. SF한인상의 주최 한국무역박람회에는 지난해에 이어 연속 참가했다. 지난해 결과는 허탕. 그러나 옥밀타올을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하면 꼭 찾으실 것이라고 자신했기에 실망하지 않고 또 찾아왔고 올해 안되면 내년에 또 온다고 생각한 그는 이번 박람회 첫날(5일) 글로벌스포츠34.com과 연간매출액의 2배나 되는 200만달러 수출계약을 맺었고 둘째날에는 BIZ트레이딩사와 총판계약을 체결(1차 계약 42만4,000달러 상당)했다. 7일 동포한마당 잔치때 미주총판 BIZ트레이딩사 관계자와 나란히 부스를 지키며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그가 실패한 업체들에게 들려준 한마디는 들을수록 귀한 말이었다.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씨를 뿌린다는 심정으로 했으니까 (수출계약이) 안됐다고 실망하실 거 없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삼세판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또 칠전팔기란 말도 있고요. 한번 보고 덜컥 계약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산은 (주)명산 수출은 (주)그린오션
봉화송이김치 대박은 합리적 분업의 산물
나는 잘 모르지만 누가 아는지는 안다.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만능은 아니다. 자신이 못하면 남의 손을 빌어 성공하는 것도 중요한 기법이다. 이번에 김치대박을 터뜨린 경북 봉화 소재 (주)명산의 박명남 사장이 그렇다. 봉화의 특산품 송이버섯을 이용한 송이김치로 일본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또다른 큰시장 미국시장을 노크하는 자리에 그는 오지 않았다. 대신 수출입 전문 대행업체인 서울 소재 그린오션(대표 권동수·사진)에 모든 것을 맡겼다. 박 사장은 만들고 권 사장은 내다파는 분업체제로, 미국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이번에 CB조그버거사에 김치만 100만달러어치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었고, 그린오션 이름으로 CNC사와 연간 300만달러 상당 농수산물 35가지 패키지수출 계약에도 단연 봉화송이김치가 중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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