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난 다음날이었다. 얼마나 낮잠을 잤는지 눈을 뜨니 벽시계는 벌써 오후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내 병실을 지키던 마누라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김 노인은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랫도리가 묵직한 것이 오줌이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고 자꾸 찌릿찌릿해 무슨 큰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고 얼마나 가슴을 조렸는지 모른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어서 비대해진 전립선 안쪽을 약간 잘라내고 방광에 숨어있던 결석을 제거하는 정도로 수술은 끝이 났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일어났는데 그 옆에 놓인 납작한 플라스틱 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안엔 알약 한 알이 담겨져 있었다. 아침나절에 부탁한 진통제임에 틀림없었다. 웬만하면 진통제 같은 것은 안 먹는 것이 좋다고 마누라가 우겼지만 김 노인은 계속 고집을 피웠었다. 엄살이 심하고 참을성도 없는 김 노인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마누라이기에 우선 한 알만 부탁한 것 같았다. 간호사가 약을 들고 들어왔다가 김 노인이 잠이 깊이 들어 그냥 놓고 나간 것이 분명했다.
무슨 놈의 약이 꼭 진주처럼 생겼었다. 우유처럼 뽀얀 빛깔에 노리끼리하면서도 푸르스름한 기가 약간 돌면서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술부위가 욱신거려 잘됐다 싶어 얼른 약을 집었다. 물로 삼키려고 하다가 그냥 삼키기엔 좀 큰 것 같아 입안에 넣고 깨물어 보았다. 어찌나 딱딱한지 쉽게 깨물어지지가 않았다. 씁쓸하지도 않고 시큼하지도 않고, 약이라고 느껴지는 아무런 맛이 없었다. 혀끝에 닿는 감촉이 진짜 진주같이 매끈매끈 했다. 혀로 슬슬 굴려가며 이빨로 계속 깨물었더니 드디어 동강이가 났다. 그리고 꿀꺽꿀꺽 물을 들이키고 입가심을 했다. 약을 먹고 나니 통증이 금세 가라앉아 기분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얼마 후, 담당 간호사 샌디가 닥터 챙과 함께 들어왔다. 의사나 간호사나 그 상큼한 젊음이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 김 노인의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더구나 닥터 챙에게는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더 친근감이 간다. 닥터 챙도 김 노인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어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은 통하는 것 같았다.
점검을 끝내고 병실 문을 나갔던 샌디가 금세 도로 들어왔다. 그리고 물 컵 옆에 놓인 빈 플라스틱 통을 손에 들고 김 노인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짐작을 해보니 그 약을 잘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 틀림없었다. 김 노인은 잘 먹었다고 고개를 끄덕거렸으나 샌디는 알아듣지를 못하고 계속 물었다. 나중엔 김 노인이 입을 ‘아’ 벌리고 손가락으로 입 속을 가리키며 물까지 마셔대면서 온몸으로 설명을 했다. 그녀는 놀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오 노오’를 연발하면서 병실 밖으로 튀어 나가버렸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모습이 긴박한 상황에 처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몹시 당황한 태도였다. 뭔가 잘못된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것이 약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대충 짐작을 했다. 한국말로 술술 물어보면 속이 확 뚫릴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 병원에는 한국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미국에 온 다음부터 그들 부부의 보호자가 된 딸은 항상 미국병원만을 고집했다. 어쩌다 혼기를 놓쳐 나이가 서른이 훨씬 넘어버린 딸이다. 공부 때문이었다는 핑계를 대지만 지금은 공부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결혼은 뒷전이다. 이제는 일에 미쳐 있다. 서울에 있는 아들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다 잘 살고 있는데 하필이면 하나뿐인 딸년이 결혼을 않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들만 줄줄이 낳다가 만년에 얻은 참말로 귀한 딸인데 말이다. 그들의 소망은 오직 딸이 하루빨리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하는 것뿐이다. 닥터 챙 같은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한국남자만을 고집하던 사고방식은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영어 잘하는 딸은 퇴근을 한 후에나 병원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마누라는 영어를 쬐끔은 알아듣는다. 눈치도 빨라 어림짐작으로도 잘 맞추는 편이고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자기 의사도 표현을 한다.
기다리던 마누라가 드디어 나타났다. 뭐이 그리 좋은지 핼쭉핼쭉 웃으면서 병실을 들어서는데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답답했던 가슴이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 내렸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엄마를 만난 듯이 든든했다. 입이 저절로 헤에 벌어졌다. 어깨 너머 창문으로부터 햇살을 받고 서 있는 마누라가 오늘 따라 유난히 젊어 보이고 또 예뻐 보인다. 그들은 둘다 칠십 고개를 넘었으나 평생을 금실 좋게 살고 있는 잉꼬부부다.
오줌이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아 하루는 마누라한테 하소연을 했더니 그녀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영감탱이가 주책없이 어디 가서 못된 병에 걸려 가지고 온 거 아네요? 설마 나한테 옮겨준 건 아니겠죠?” 그러나 그녀는 말과는 달리 호호 웃고 있었다.
마누라한테 진주처럼 생긴 그 약에 관해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그녀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어쨌든 샌디한테 물어보자고 했다. 영어가 잘 통하지도 않을 텐데 활달한 그녀는 어느새 쪼르르 병실을 나서고 있었다. 한참만에 돌아온 그녀는 배꼽을 잡고 깔깔대며 웃느라고 정신을 못 차렸다.
“당신 말대로 그게 진주는 진주였다고요. 당신이 몸속에 품고 몇십 년을 길렀으니 어디 조개가 기른 진주에 비하겠어요? 그냥 뒀더라면 기념으로 반지나 해서 낄 걸, 먹긴 왜 먹어치워요?”
어리둥절해 하는 김 노인을 향해 마누라는 계속 깔깔댔다.
“그게 바로 이번 수술에서 끄집어낸 돌멩이 였다구요 여기서 꺼낸 돌멩이요.”
마누라는 김 노인의 아랫배를 툭툭 쳤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던 김 노인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그도 마누라를 따라 자신의 아랫배를 툭 쳤다.
“뭐야? 그 약이 여기서 꺼낸 거라고?”
그 알약은 김 노인의 몸 속에서 진주처럼 자라다가 이번 수술로 인해 바깥 세상 구경을 한 방광결석이었다. 간호사는 자기가 보아도 진주처럼 아름다워 원한다면 집에 가져가라고 병실에 놓고 나간 것이라 했다. 병원의 규칙에도 본인에게 주어도 좋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약으로 오해하고 먹어버리리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어쩌자고 아래에서 꺼낸 걸 위로 도로 먹어요? 몇십 년을 품고 기른 거라 아까워서 그랬어요? 한데 그놈을 도로 먹었으니 이 일을 어쩌지? 아래로 다시 내려가 오줌길을 아주 막아버리면 어떡해요? 이빨로 동강이를 내서 삼켰으니 그것이 계속 자라 이제는 여러 개의 진주가 될 텐데,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유머 감각이 뛰어난 마누라는 계속 웃기는 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철학자나 된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먹고 나니까 금세 통증이 멎었다고 했죠? 그럴 수 있죠.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 아네요? 약이라 생각하면 약이 되고, 독이라 생각하면 독이 되고…”
그 날 저녁, 병원에 들른 딸은 그냥 웃고 넘기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 노인은 그놈을 먹은 것은 순전히 자기 잘못이고 또 창피한 노릇이니 암말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나 딸은 닥터 챙에게 따졌다. 영어도 모르는 노인환자의 병실에 그런 것을 놓고 나간 자체가 병원 측의 책임이고, 또 먹어도 괜찮은 것이기에 천만다행이었지만 먹어서는 안될 것이었다면 어떡할 뻔했냐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자기 불찰이었다고 정중히 사과를 했다.
그리고 이 일이 인연이 되어 딸은 닥터 챙과 결혼을 했다. 딸한테 이런 좋은 일이 생긴다면야, 김 노인은 그 결석을 몸속에 다시 품어 진짜 진주로 키우고 싶은 심정이다. 이번에는 여러 개의 천연진주로….
김영강
약 력
크리스천문학 단편소설 입상
한국일보 단편소설 입상
소설가협회 회원
미주문협 회원
남가주밸리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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