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억 원이 넘는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재임시절의 부정축재, 한나라당 대선자금 모금과정에 있어서의 차떼기 수법, 한나라당 보다 10분의 1 선이라고 스스로 선을 그어버린 노무현 캠프의 대선 불법선거기금, 권노갑, 정대철 등 전 의원들의 때로는 수백 억 원에 달하는 뇌물 내지는 불법 정치자금 등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는 미국 정치인들에 대한 부정시비가 왜소하고 치사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최근 톰 딜레이 공화당 원내총무를 둘러싼 하원 윤리규정 위반에 대한 보도만 봐도 그렇다.
우선 435명의 연방 하원에 있어서 여당이나 야당의 원내총무란 자리가 입법과정에 있어서 엄청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당 총무는 하원의장 바로 다음 가는 자리다. 그는 하원이 심의할 법안들에 대해 수문장 역할을 한다. 국내외 주요 이슈의 입법화나 입법 시기가 그의 손에서 좌지우지되는 수가 많기 때문에 하원 다수당 원내총무에게는 대통령도 무시하기 어려운 막강한 권한이 있다. 의원들의 분과위원회 배정에 있어서도 원내총무의 입김이 가장 세기 때문에 자기당 동료 의원들은 그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더구나 원내총무가 원만형이 아니라 쇠망치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충돌형인 톰 딜레이면 야당인 민주당과의 마찰은 당연한 수순이다.
딜레이 쪽에서는 하원 윤리위원회에 회부될 그의 문제를 민주당과 진보적 미디어의 정치적 공격이라고 규정한다. 민주당과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신문들은 딜레이가 작년에만도 세 번이나 하원 윤리위원회에서 경고를 받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하원의 지도자로서 윤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조사대상이 되어야한다는 주장이다.
무엇 때문에 딜레이는 공화 민주당 반반으로 10명의 의원들로 구성된 윤리위원회의 조사에 응하게된 것인가. 1997, 2000, 2001년에 러시아, 영국, 그리고 한국을 다녀오는데 든 경비 때문이다. 물론 자비로 휴가를 내서 여행하거나 공식 출장이라서 의회에서 여행비가 나오는 경우라면 문제가 아니다. 딜레이는 러시아와 영국에는 ‘미국 공공정책연구센터’라는 비영리단체의 지원을 받아 갔고 한국여행은 한화그룹의 총수인 김승연 회장을 미국 요인들에게 연결시키는 것이 주목적인 듯한 ‘한미교류연맹’의 지원을 받아 했다고 보도되었다.
의원들이나 보좌관들이 비영리단체의 보조를 받아 연구 여행을 하는 것은 하원의 윤리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딜레이와 부인의 영국 여행 비행기 비용이 잭 아브람슨 이란 로비스트의 크레딧 카드로 결제되었기에 그 로비스트가 추후에 비영리단체로부터 환불 받기는 했지만 딜레이가 로비스트 돈으로 우선 여행했다는 것을 알고도 그리 했는가가 쟁점이 될 듯하다. 또 영국에 있을 때 전화비용과 식사대 등으로 딜레이가 184 달러를 쓴 것이 또 다른 로비스트의 크레딧 카드로 결제되었던 것도 딜레이가 사전에 알았는지의 문제를 제기하는 모양이다. 한미교류연맹의 도움으로 한국 방문을 한 것은 그 여행 직전에 그 연맹이 외국 정부의 로비스트로 법무성에 등록된 사실 때문에 말썽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84 달러는 물론이고 세 나라 여행비용을 다 부당하게 받아 쓴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액수는 몇 만 불 미만이니까 부정부패에 관한한 미국은 한국에 비해 간이 콩알보다도 작은 나라다. 연방 의원들이 1년에 한 사람으로부터 100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윤리 규정을 생각해보라. 한국 국회의원들 하루의 술값정도니까.
그렇지만 딜레이가 원내총무 직에서 낙마할 지도 모르는 복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잭 아브람슨과의 관계 때문이다. 한때는 딜레이의 보좌관이던 아브람슨은 로비스트로 직업을 바꾸어 큰 돈을 비교적 짧은 시일에 번 사람이다. 그런데 ‘돈 뒤에는 범죄가 있고, 큰 돈 뒤에는 큰 범죄가 있다’는 어느 불란서 작가의 말처럼 아브람슨이 미국 인디안들의 도박계열회사들을 대표하면서 수천만 달러를 번 사실이 연방 검찰과 상원의 조사 대상이 되고 있다. 만약 아브람슨의 크레딧 카드 사용이 딜레이의 인디안 도박 관계 입법에 있어서의 투표와 관련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딜레이의 정치생명조차 위협하는 일일 것이다.
큰 돈이 왔다갔다하는 로비스트의 세상을 보면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는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는 성싶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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