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한국엘 다녀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무슨 볼 일로 왔느냐고 묻는 사람 모두에게 나의 대답은 아내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았다. “우리가 (1964년)한국을 떠났을 적에는 가난하던 시절이라 제주도도 구경을 못했기 때문에 관광을 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 아내가 4월 3일로 지정된 한식 조리사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아내가 한국에서 조리사 자격증을 따야되겠다는 동기를 가지게 된 연유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좀 특이하다. 우리집 딸아이들의 (미국인)친구들이 놀러 와서 아내의 음식을 맛보고서는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사에 적극적인 아내는 부근 고등학교와 초급대학의 쿠킹 클래스 주방시설을 빌려서 그리해볼 셈으로 학교 당국자와 접촉을 해본 모양이었다. 그랬더니 학교 시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진봉사라 하더라도 (교사, 또는 조리사)자격증이 있어야 된다는 대답이었단다. 그것이 잊혀지지 않고 뇌리에 남아있었던지 필자가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로 서울에가 있던 2003년 가을학기에 아내는 나하고 보낸 40여 일 동안에 수도 요리학원에서 출판된 조리사 필기시험 문답집을 여러 권 사다가 달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서울을 떠나기 하루 전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한국 직업공단 시험장에서 조리사 필기시험에 응시한 아내는 시험에 합격되고는 몹시 기뻐했다. 조리사 시험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 한 결과 아내의 외삼촌마저 자기도 해보겠다고 해서 예비역 공군 소장 출신인 70이 넘은 노인이 필기시험에 도전해서 붙은 일도 있었다.
아내가 필기시험에 붙은 것이 2003년 11월인데 그로부터 2년 안에 실기시험에 붙어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주도, 경주 관광도 할 겸 한국엘 가게된 것이었다.
실기시험 발표는 4월13일이라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서울로 전화를 했더니 아내가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아내보다도 나의 실망이 더 컸다. 요리책이나 과거 출제된 식단 등 100가지가 넘는 갖가지 한국음식을 서울 가기 몇 달 전부터 몇 센티미터, 몇 밀리미터 등 규격도 지켜가며 철저히 준비를 해왔던 아내였기에 꼭 붙을 줄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험보기 전 나흘 동안은 수도 요리학원에 나가서 선생님들의 세심한 가르침을 받아 준비 면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었다.
서울 가기 전에 하도 광문을 냈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시험에 붙었는가를 묻는데 안 됐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뇌물을 시험관들에게 주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왜 떨어졌을까 가 궁금해진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나와 아내가 내린 결론은 아마도 모자를 잘못 썼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다.
조리사 응시생들은 모두 흰 에이프론을 입고 흰 모자를 써야 되는데 에이프론은 있지만 모자를 갑자기 살 데가 없어서 처남댁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고등학생인 조카가 가사 시간에 쓰는 모자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갔었다. 그런데 그 모자가 좀 분홍색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험시간이 되기 전 아내의 주위에 있던 응시생들이 그런 모자를 쓰면 응시를 못한다고 해서 모자를 간신히 뒤집어 쓰게 되었지만 뒤집어 썼어도 핑크색이 좀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대여섯 명 되는 시험관들이 돌아다니다 보면 수험번호 1번인 사람의 머리 위에 다른 수험생들과 차별이 되는 모자가 있을 때 자기 동료들이 혹시 뇌물을 먹고 붙여주기 위한 신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서로들 그렇게 생각하다가 낙제점을 주기로 했기 전에는 43년 이상 부엌 경험이 있고, 약 1년 반 동안 요리책대로 철저히 연습해왔기에 ‘실험용 쥐‘ 격인 나의 배가 거의 임신 5개월 수준이 될 정도로 불어날 때까지 맛나게 음식을 하는 재능을 가진 내 아내가 떨어진다는 게 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라고 하지만 내 아내는 바쁜데 잘 되었단다. 역시 나보다는 한 수 위인 사람 같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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