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이드
▶ 옥 세 철 <미주본사 논설위원>
개(dog)가 사람을 물었다. 기사가 안 된다. 개의 속성은 무는 것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이 개를 물었다. 그건 뉴스다. 별 시시한 게 기사가 되는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엇이 기사가 되는가에 대한 고전적 판정법은 하여튼 이랬었다.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한국 정부가 기권했다. 이건 어떤가. 기사가 되기는 하는 건가.
작년 10월이었나. 미의회가 북한인권법을 발효시키자 한국의 여당의원이란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면서 따지고 들었던 게. 이런 한국정부이고, 여당이다. 그러니 그 속성상 북한인권결의안에 반대를 안 하기가 다행이다. 표결 기권은 그러므로 당연하다. 그래서 던져본 질문이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국익이 거론됐다. 올해로 세 번째 결의안이다. 첫 번째는 불참했고, 지난해부터는 계속 기권이다. 그러면서 매양 같은 이야기다.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기권을 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뭔가 의도된 바도 있어 보인다.
미국은 6자회담의 포괄적 의제에 인권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인권문제에 보다 적극적이었다. 이런 정황에서 한국 정부가 기권했다. 돌아올 결과는 뻔하다.
북핵 문제해결에 필수인 한·미 공조가 무너질 수 있다. 일본과의 관계도 한층 악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권을 한다. 이 부문이 뭔가 석연치 않다. 미국과 일본을 축으로 한 진영에서 이탈해 중국-북한을 잇는 축으로 옮겨가기 위해 의도된 일관된 작전 같은 게 어른거려서다.
뭐 새로운 이야기는 못된다. ‘달아난 동맹’이란 비난과 함께 “한국의 외교 정책은 시작과 끝이 북한과 잘 들어맞고 있다”는 반응이 벌써부터 미국에서 나오고 있는 판이니까.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이번 유엔결의안 기권은 한국의 국익에 진짜 도움이 되는 걸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국제적 ‘왕따’ 자초 가능성에서다.
북한인권 결의안 발의국은 45개국이었다. 막판에 한 나라가 더 가담해 46개국이 됐다. 그 결의안의 내용도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특히 유럽국가들이 더 적극적이다. 인권결의안을 작성한 건 EU다. 미국이 아니다.
뭘 의미하나. 북한 주민의 참상을 종식시킬 도덕적 책임은 세계인 모두의 것이라는 공감대가 넓혀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마당에 한국만 딴 소리다. 같은 민족의 처절한 고통은 나 몰라라 하면서.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무관심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인권의식 자체를 의심케 하고 있다. 인권의 본질은 보편성과 국제성이다. 이걸 외면하고 있다. 국제적 고립을 불러올 수 있는 이유다.
문화가 중요하다.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 소프트 파워 경쟁시대를 맞고 있다는 말이다. 소프트 파워란 게 그렇다. 바탕은 휴머니즘이다. 달리 말하면 인권이다. 날로 악화되고 있는 한·중·일 동북아 세 나라의 갈등도 따지고 보면 소프트 파워 경쟁이다.
이 전쟁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이었다’란 과거시제를 쓴 건 그 고지를 스스로 방기하고 있어서다. 일본은 침략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인권과는 아직 거리가 먼 나라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의 동시에 성공시킨 거의 유일한 나라다.
때문에 인권을 브랜드로 한 소프트 파워 경쟁에서는 두 나라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당당히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점에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는 정공법을 구사한다. 그럴 때마다 국력 차이에도 불구, 일본은 판정패로 물러섰다.
그 보편적 가치 이야기가 이번에는 쑥 들어갔다. ‘국익이 어쩌고’ 하며 북한 주민의 참혹한 인권 상황에 침묵을 지켰다. 김정일 체제의 인권 유린을 방조한 셈이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동북아의 소프트 파워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스스로 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데 있다. 아시아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뻗어나가는 이른바 한류(韓流) 수출에도 막대한 지장을 가져 올 것 같다. 인권이 부정되는 소프트 파워는 ‘세일’이 안 된다. 그런 소프트 파워를 구축한 나라는 망한다. 막강하던 소련의 붕괴가 그 역사적 실례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인권탄압이라기보다는 ‘인간 말살’에 가깝다. 집단아사, 고문,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유아살해, 생체실험…. 이 인간 말살행위에 세계가 격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제는 그러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스탈린주의의 소련체제는 이성적 논리가 통하지 않는 체제다. 힘의 논리에만 민감히 반응하는 체제다. 얼마전 작고한 조지 케난이 내린 처방이다. 말이 어렵다고. 역시 개(dog)와 관련된 한국속담을 인용하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뭐라 했던가. 미친개에는 몽둥이라 했던가.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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