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계 부모의 교육철학
획일적인 학교성적 보다
재능·개성 발휘에 더 관심
LA시 코리아타운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행콕팍(Hancock Park)이라는 동네에서 교장으로 일한 지 어느덧 13년째가 됩니다. 행콕팍은 옛날부터 부유한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인데, 인종이 아주 다양화되어 가고 있는 요즈음도 이 지역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목소리가 크고 정착되어 있는 주민들은 역시 유대인인 것 같습니다.
최근 제가 일하는 학교의 개교 80주년 잔치에 온 옛날 동창들도 유대인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몇년 전 읽은 LA Times 기사에 따르면 유대인들 중에는 정통파(Orthodox Jews), 보수파(Conservative Jews), 온건파(Moderate Jews), 진보파(Progressive Jews)가 있는데, 공립학교에 자녀들을 맡기는 학부모들은 대부분 온건파나 진보파인 듯 합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대체로 저의 학교 근처에 있는 ‘Yaveneh Hebrew Academy’ ‘Yeshiva Rav Isacsohn Torah School’ ‘Temple Israel’ 등의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지만, 상당수의 유대인 학생들이 저희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또 학부모들이 어릴 때 이 학교를 다녔고 다음 세대인 자녀들도 이 학교에 보내는 가정도 많습니다.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옛날 이 학교에 다닌 가정들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목소리가 큰 뉴욕이나 LA 등 미국 대도시의 공립학교에서는 유대인 설날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나 속죄일인 얌 키퍼(Yom Kippur)에는 아예 학교를 쉽니다. 수캇(Sukkot), 샤밭(Shavuot), 퓨림(Purim) 등 명절에 유대인 학부모들이 그 날 먹는 특별한 음식들을 학교에 가져 와서 함께 맛본 적도 있습니다.
저희 학교 커뮤니티가 많이 변화해 가고 있어서 이제는 학생들의 20% 정도만이 유대인들을 비롯한 백인이고 50%는 한인을 비롯한 동양계지만 학생들의 숫자는 적어도 가장 목소리가 크고 정치적으로도 세련되고 학교의 발전적 변화를 위해 분석적으로 조직성 있게 지원해 주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주는 학부모들 중 유대인이 가장 많은 편이라 같이 일하면서 항상 느끼고 배우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19∼20세기초부터 미국에 이민 와 그 후세들이 미국화되어 정치, 언론, 연예, 경제, 문화, 학계 등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현실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의 유대인에 대해 깊게 연구한 바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으로서 매일 매일 그들과 학교 시스템에서 같이 자녀 교육에 대해 토론하고 미 주류사회에서 그들과 지내게 되면서 느낀 점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제가 이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유대인 단체 ‘Anti-Defamation League of B’nai B’rith’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인, 유대인뿐 아니라 미국의 모든 인종의 사람들을 위해 다문화 교육을 시키는 ‘A World of Difference’라는 다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유대인 학부모가 학교에 소개해서 모든 교직원이 편견 감소(prejudice reduction)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부모나 유대인 부모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성은 비슷하게 높지만, 유대인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인상을 저에게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대체로 자녀에게 ‘남보다 공부를 더 잘 하라’고 하기보다는 ‘남과 다른 자녀의 개성과 재능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듯 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똑똑하게 전달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과 연대감을 느끼게 하고 ‘table talk’를 중시하며 자녀의 의견을 시간을 많이 내어 들어주는 듯 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다양한 견해를 소화시키는 기술, 갈등 해소 및 문제 해결 스킬, 인간관계 기술 등을 경험하도록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획일적으로 테스트 점수나 학교 성적에만 관심을 두지는 않습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남의 의견보다는 주관성 있게 자신이 직접 알아보고 리서치를 정확하게 한 후 informed decision을 하는 편입니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 자신의 생각대로 자녀 교육에 대해 결정을 하는 듯 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잘 제안합니다. 학교 전체 발전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자녀도 이익을 본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자기 자녀의 이익만 생각하기보다는 학교 전체가 덕을 보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리소스를 제공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한 가지 문제점이나 이슈를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잊어버리거나 열이 식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그 해결책을 구하도록 철두철미하게 마무리(follow-up)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의사소통의 흐름(communication flow)이 투명하고 확실합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이나 인포메이션은 글로 써서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공유합니다. 또 의견이 다르거나 찬성하지 않을 때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존중하면서 찬성치 않는(disagreeing with respect) 방법을 압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부모들 자신이 독서를 많이 하여 독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자녀에게 몸소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평생 배운다는 것이 몸에 배여 있어서, 미국 교육 시스템에서 오래 전 학교를 다녔어도, 학부모가 된 이후에도 최근의 교육 이슈와 연구 등을 계속 배우고 있는 듯 합니다.
그들은 놀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배움의 연속이라 생각하고 자녀들에게 억지로 공부만을 강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유대인 부모들 중에서도 과잉보호형, 무조건 반대하는 대립형, 자기 자녀만 관심을 두라는 얌체형, 또 무관심형 등의 다양한 부모들이 있지만, 대체로 부모 자신들도 교육을 많이 받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학부모가 비례적으로 많은 커뮤니티여서 그런지 저는 지난 12년간 그들과 지내면서 느끼고 배우는 기회가 많았고 대체로 긍정적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육상담 문의: sko1212@aol.com 또는 DrSuzieOh@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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