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고 희망찬 새해가 동텄다. 우리의 삶이 매년 만사형통 하길 바랄 수는 없지만 유달리 지난해는 심한 불경기 탓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아무쪼록 2005년도 새해는 불황으로 인한 모든 어려움이 찬란한 아침 태양에 안개 사라지듯 했으면 하고 소망해 본다.
금년은 을유(乙酉)년으로 닭띠 해다. 주역(周易)은 12 지지(地支)를 동물 띠로 나뉘어 인간의 운명을 예시해 주고 있다. 12지지는 쥐(子)로부터 시작해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그리고 돼지인 해(亥)로 끝난다. 옥편을 보면 유(酉)는 닭 유, 서쪽 유 그리고 열 번째 지지 유라 표기 되어있는데 왜 닭을 계(鷄)로 쓰지 않고 유를 썼을까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 까닭은 닭을 두발 달린 육식동물로 보지 않고 주역은 형상의 닭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지는 인(寅: 호랑이)을 정월로 보고 유(酉:닭)는 8월이라 한다. 이때 월은 당연히 음력이다.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로 추분(秋分)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게 하는 찬이슬 머금는 백로(白露)절기를 뜻한다. 닭은 원래 우리 조상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온 가축 중 하나로 하루가 시작되는 이른 아침 닭 울음소리를 듣고 조상들은 농사일 하기 위해 밭으로 나갔다.
먼길 떠나는 길손은 서둘러 행장을 꾸렸고 주부는 가족을 위해 조반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날 시계 역할을 닭이 대신한 셈인데 닭띠들이 비교적 시간 관념이 강한 점도 이에 무관하지는 않다고 하겠다.
유는 오행(五行)에서 금(金)으로 통상적 어떤 제품이나 형상을 완성하기 직전 미완의 쇠붙이다. 장차 값진 패물을 만들 수 있는 기본 재료이니 희망이며 무한한 가능성이라 하겠다. 색은 백색(白色)이오 맛은 매운(辛)맛이다. 담백하며 맑고 순수한 탓이 바로 그런 연유다. 닭이란 본시 모이 찾아 온 땅을 헤집고 다니는 기질이 있어 한가지 업(業)을 오래 유지 못하는 성질이 있는 바 월급쟁이보다 차라리 자영업이 뱃속 편할 수 있다. 감정이 풍부하여 사랑도 감성대로 표현해 상대를 간혹 감동케 한다. 또 깔끔한 편이라 아파 누워 있는 상황에서도 수시로 거울 볼만큼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도 많다. 간혹 욱-하는 성질이 본인도 모르게 표출되어 무안을 주지만 본래 심성이 고와 후유증은 없으니 크게 염려치 않아도 된다. 음력 8월이면 한창 추수할 때라 온갖 곡식과 과일이 사방에 지천인 격이니 평생 식복은 깔고 태어난 셈이다. 닭띠들의 남녀문제는 토끼를 뜻하는 묘(卯)가 네 기둥 중 어느 지지에 함께 있으면 묘유상충(卯酉相沖)으로 화합에 문제가 있지만 닭이나 토끼가 원래 교미시간이 짧은 탓에 생긴 우려 일뿐 큰 문제는 없다. 사주에 유가 겹쳐있는 유유(酉酉)는 자형(自刑)이라 해서 흉기 사고가 잦다고 했다. 이런 사람은 종교를 잘 신봉하여 자중자애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 사주에도 천가지 병이 있으면 만가지 약이 있다. 상생 시켜 주거나 합을 이루어 운을 북돋아주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다. 돼지고기에 새우젓은 서로 상극하여 오히려 이로움을 취하고 있음과 같은 원리다.
닭띠들은 비교적 인정이 많아 남의 말을 잘 듣는 경우가 허다한데 예를 들면 종자가 다른 오리알도 오랫동안 자기 가슴에 품어 부화시켜 줄 정도다. 다만 지나침이 많으면 생각지 않은 구설수나 손재수를 입을까 염려되니 매사를 두 번 생각하고 결정하기 바란다.
성격은 지극히 낙천적이라 어울려 노는 일에 열심인 편이다. 닭띠 배우자들은 이 점을 감안, 너무 속박하면 스트레스가 뭉쳐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감정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주어야 한다. 닭 위장이 단선(單線)탓인지 복잡한걸 무척 싫어한다. 너무 단순해 사업이나 심지어 부동산까지 서류검토 조차 귀찮게 여기는 경향이 많으니 배우자나 측근은 항상 이점을 각별히 유의하여 사전에 철저히 챙겨주는 마음 쓰임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닭띠들 중 성공한 명사가 많으나 근세에 가장 높은 으뜸자리에 오른 분으로 윤보선 전 대통령이 계신다.
그 분은 1897년 정유(丁酉)생으로 제왕 격을 타고나 임금자리까지 오르신 분이다. 그러나 말년 운이 좋지 못해 본래 타고난 값을 못하고 서산에 조용히 기운 태양이 되었다. 현존하는 닭띠 중 명줄이 긴 1909년 기유(己酉)생이 있겠는데 천수를 다한 96세가 된다. 1921년 신유(辛酉)생 닭은 아직도 발언권이 먹힐 원로로 군림하신다.
1933년 계유(癸酉)생 닭은 말이 70대 노인이지 몸과 마음이 다 정정해 노인이라면 싫어하고 청춘타령에 기우는 하루해에 투정한다. 문제는 1945년 을유(乙酉) 중닭들로 금년이 그해다. 왜정과 군정이 교차되는 해에 태어나 장래를 보는 안목이 남다른 띠지만 역사의 구비마다 시대를 보는 나이가 공교롭게도 귀에 피도 안 마른 미성년 어린 나이에 겪었다. 4.19, 5.16의 격동기 역사는 어린 그들에게는 너무 벅찬 역사의 술레 바퀴이었다. 평생 살 고기 대접 한번 못 받고 글자그대로 포장마차 닭똥집 신세로 전락된 그들이다.
해방 동이로 역사적 산물이라 대접받으며 성장해 왔는데 2005년은 해방 60주년과 동시에 이순(耳順)의 환갑노인네(?)가 되었다. 범 국가적 환갑 기념 잔치라도 벌려줄 만하지만 조국을 위해서 무얼 했느냐고 묻는다면 무슨 말로 당당할지 을유 닭들에게 묻고 싶다.
을유 생 닭들의 금년운세는 東風解凍 枯葉逢春(동풍해동 고엽봉춘) 이요 小往大來 積小成大(소왕대래 적소성대)다. 동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얼음이 녹고 마른 잎에 봄을 만난 격이며 작게 가고 크게 오니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룸이니 이제 고생 뚝 이요 행복 시작이다.
밝아오는 새해 새 아침 붉은 태양 가슴 가득히 안고 하늘높이 비상하여 지난날의 모든 어려움을 털어 내자. 그리고 일년 내내 건강한 미소지으며 즐겁게 사는 닭띠인생이 되자.
이덕형 (캐나다 거주)
2004년 캐나다 한인 문인 협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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