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사회부 기자들이 지면에 실리지 않았던 취재 뒷얘기들을 나누며 2004년을 정리하고 있다. <신효섭 기자>
숱한 뉴스로 장식됐던 올 한해도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어 간다.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1년은 한인사회에 무한한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했던 또다른 한해였다. 뉴스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갔던 사회부 기자들의 기자수첩 속 깊숙히 담아 두었던 뉴스의 뒷이야기를 꺼내 올 한해를 정리했다.
‘가물치 파동’한인 식성 엽기화 유감
노 대통령 타운방문 시도 불발 아쉬움
‘한류’주역 배용준 LAX 출현 당황
어느 매춘부의 ‘경제학’논리 아연실색
후보와 함께 잠못 이룬 어바인 선거
-노무현 대통령의 LA방문은 한인사회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이번 방문은 보수성향의 한인들이 갖고 있던 비판적 견해를 바꾸는 계기가 됐고 많은 한인들이 대통령의 탈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높이 평가했지요.
그러나 바쁜 일정탓에 한인타운 방문이 제외된데 한인들의 아쉬움이 크자 기자들이 직접 나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막판 일정변경을 시도했지만 경호실에서 난색을 표시, 불발로 끝나기도 했습니다.
-노 대통령 동포간담회 때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감을 가진 모 인사가 시위용 노란색 셔츠를 입고 입장하려다 제지당하는 해프닝도 발생했습니다. 입구에서 이를 발견한 총영사관과 미 비밀경호대 관계자들이 조용히 데리고 나가 별다른 잡음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건강 보양제로 한국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가물치’ 파동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한인들이 가물치를 영어로 ‘Snakehead Fish’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을 것입니다.
또 연방정부가 가물치를 자연환경을 해치는 심각한 어종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실감했습니다
-가물치 사건에 대한 주류언론의 관심도 대단했습니다. 미 전국에서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을 정도니까요. 취재현장에서 만난 주류언론 기자들은 “가물치를 먹어 본 한인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며 한인언론 기자들에게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한인의 식성을 엽기적으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요.
-2004년도 많은 강력사건이 발생했지만 사이프러스에서 발생한 비너스 현양 총격살해 사건은 사실 취재기자들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사건현장에서 만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한인 젊은이들이 기자들에게 보여준 거친 행동은 할말을 잃게 만들었지요. 물불을 안가리는 동료의식은 언제든지 폭력으로 바뀌어 대형사건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성매매 특별법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법정에서 만난 한 매춘 여성은 기자에게 ‘매춘 경제학’을 역설, 아연실색한 적이 있습니다.
요지는 한인타운 형성에 화대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이들이 상대하는 손님들의 상당수가 변호사, 회계사, 경찰간부 등 화이트칼러들이고 이들을 상대로 벌어들인 돈이 한인타운에 ‘투자’돼 타운경제가 활성화됐다며 ‘한인들은 매춘여성을 색안경 끼고 봐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펴 오히려 제가 당황했지요.
몸을 팔아서라도 미국에 살아야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 여성은 결국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는데 영어를 못해 제가 대신 수속을 밟아준 기억이 납니다.
-얼마전 한 한인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대뜸 ‘선풍기 아줌마’를 아느냐며 자신이 그같은 피해자라고 말해 잔뜩 긴장했지요.
성형중독증에 빠져 얼굴이 엉망이 된 한국의 한 여성을 지칭한 단어여서 타운내 성행하는 불법 성형시술로 판단, 좋은 기사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미용실 직원이 파머약을 과다 사용, 앨러지 반응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사건사고를 취재하다 보면 기자가 아니라 수사관처럼 비춰질 때가 종종 있는데 일부 한인들은 기자가 터프한 질문을 하면 상당한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요.
한달전 라스베가스에서 LA를 방문한 한인남성이 타운내 샤핑센터에서 의문의 피습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몇사람에게 전화해 사건에 대해 물어봤더니 어떤 이는 대뜸 “당신 기자야, 경찰이야”하고 쏘아붙여 무척 당황스러웠지요.
-성탄절 전날 기자가 한 봉사단체에 몇 년동안 자선활동을 베풀어온 사람들의 제보를 듣고 취재를 하러 갔으나 이들은 “뭐 대단한 일이냐”며 신문에 실리는 것을 극구 사양했습니다.
취재는 허탕쳤지만 자선활동을 벌이고 생색내기에 바쁜 일부 개인과 단체에 비해 아직도 사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묵묵히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습니다.
-LA한인축제를 처음 취재하면서 파란 눈의 타인종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게 한류구나’싶었습니다.
아직은 아시안 문화에 열광하는 매니아와 중국, 일본 커뮤니티에 한류가 국한돼 있지만 태평양을 건너 한류 바람이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불 수 있을지 내년이 기대됩니다.
-‘한류’ 얘기를 듣고보니 할리웃 보울 참가 연예인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LA공항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출구앞에서 기다리던중 난데없이 한류의 핵 ‘배용준’씨가 모자를 눌러쓴 채 나타났습니다.
일본인들이 있었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당시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요. 뒤쫓아 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배씨는 정중히 거부하면서 “함께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역제안을 하더군요.
-한인 동반당선이란 진기록을 남긴 어바인 시의원 선거는 취재기자 입장에서 후보들 만큼이나 애가 탄 케이스였습니다.
통상 개표율 15%가 넘으면 당락이 확정되는데 다음날 새벽까지 개표작업을 보며 득표율을 분석한 뒤 동반당선을 언급했건만 나중에 뚜껑도 열지 않은 투표함이 훨씬 많은 것을 알고 놀랐지요. 다행히 한인후보 모두가 당선돼 오보는 면했지만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자성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11월3일 치러진 미 대통령선거를 취재하며 한인의 미주류 정치에 관심과 참여가 높아졌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출근전 혹은 점심시간에 짬을 낸 직장인, 시민권을 취득하고 첫 주권 행사를 위해 함께한 부부, 몸이 불편해 손주의 부축을 받고 나타난 노인 등 투표장을 찾은 한인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고 가슴이 뿌듯하던군요.
-북한 인권법이 통과 직후 몽골에서 직접 미국입국을 시도하던 탈북자2명이 현지에서 체포된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 될것 같습니다.
당초 LA공항에 도착한뒤 이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사전 노출되면서 오히려 현지 공안당국에 알려주는 셈이 됐지요. 이를 계기로 탈북자 문제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부시 대통령의 이민 개혁안이 말만 무성한 채 실질적 진전이 없었고 불법체류자 대상 운전면허증 발급 허용법도 결국 주지사의 거부권 행사로 무상되는 등 체류신분 미비자들에게는 실망스런 한 해였습니다.
취재기자로서 느낀 것은 이민자 커뮤니티인 한인사회에서도 이같은 이슈에 대한 생각이 양극화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체류신분상의 불안함을 무릅쓰고라고 미국에 정착해 사는 한인들에게는 운전면허증 이슈가 하루하루 생존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지만 불체자들에게 왜 운전면허증을 허용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한인들도 예상외로 많았습니다.
-대학 진학 예정자들을 위한 학비 재정보조 기사를 다루면서 비이민신분으로 거주하는 학부모들, 특히 E-2비자로 체류하는 분들의 문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영주권 취득보다는 손쉽고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E-2비자로 미국에 들어와 비즈니스를 하는 한인들이 많은데 자녀가 대학 진학 연령층에 다다르면서 비이민 비자라는 신분 때문에 연방 학비 보조 프로그램이나 가주 정부의 캘그랜트와 같은 각종 정부 학비보조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성적도 좋고 다른 조건은 다 해당되는데 E-2 신분 때문에 캘그랜트 신청 자격이 안돼 실망하는 학부모들을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정리 황성락 기자
참석자
안상호 부국장대우, 김정섭 부장대우, 황성락 차장, 구성훈 차장대우,
김종하·김경원· 배형직·정대용·이석호·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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