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주말나기
동문 송년모임서 마술쇼 보인 민훈기 씨
각급학교 동문회와 단체의 송년 모임이 연일 이어지는 연말연시. 동문과 회원들의 노래, 춤 등 장기자랑으로 이어지는 여흥 순서는 지난 한 해 동안 쌓아온 회원들의 내공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지난 주 민훈기(26, UCI 바이오메디칼 엔지니어링 박사과정, 브레인 이미징 전공)씨는 참으로 오랜 만에 동문회 송년 모임에 참가, 마술쇼를 해보였다. 첫 번째 카드 매직을 보일 때만 해도 군데군데 들리던 군중의 잡음은 밧줄을 이용한 철학적이고 깊은 사유의 마술을 선보이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한개의 밧줄을 길이가 다른 3개의 밧줄로 자르면서 그가 조용히 말한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가장 긴 줄을 들어 보이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많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가장 짧은 줄을 보이며 “어떤 사람은 아무 재능도 없이 이렇게 초라해 보일 수도 있고요.” 중간 길이의 줄을 보이며 “또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있지요. 이처럼 서로에게는 다른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가 평등합니다.” 이 말과 함께 줄을 다시 펼치니 3줄의 길이가 모두 같아진다. 객석에서 탄성이 새나온다.
그의 말과 마술이 이어진다. “평등하다는 말이 모두가 똑같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모두가 똑같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각 다른 일을 하러 태어났고 맡은 일이 다를 뿐인 거죠.” 그러면서 다시 줄을 펼치니 본래대로 짧은 줄, 중간 줄, 긴 줄이 된다. 이쯤에서 관객들은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작은 깨달음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의 빛에서 나왔고 결국에는 하나로 돌아갈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거죠.”그러면서 세 개의 줄을 밑으로 던지니 다시 기다란 하나의 줄로 붙어 버린다.
사람들은 감동과 공감으로 박수치기를 그칠 줄 모른다.
그는 이 마술을 좋아해 자주 공연한다. 마술도 예술의 한 분야. 눈속임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단계를 넘어 마술사의 생각과 의도에 따라 같은 마술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밧줄을 이용한 이 마술은 다른 마술사들도 자주 공연하는 흔한 것이지만 세상을 향한 작은 깨달음을 담아내는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드라마다.
그는 또 동문의 자녀를 무대에 불러내 그의 컵에 담긴 물을 없애는 마술을 해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과학기술이 첨가되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마술이 발달됐단다. 그 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트릭. 분명 종이컵에 물을 따랐는데 물이 없어진다. 방법은 간단하다. 액체를 순식간에 고체화시키는 물질을 사용한 것뿐이다. 컵 안에 물을 넣고 고체화시키면 컵을 거꾸로 엎어도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초능력, 외계인, 불가사의 등에 관심이 많던 그는 어느 날부터 어린이 마술 책을 보면서 마술을 익혀 초등학교 학예회 때는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찬사를 받는 꼬마 마술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마술에 있어 중요한 건 속임수가 아니라 작은 응용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오감에 의해 세상을 판단하고 자신이 보고 듣는 세상이 전부라 믿는다. 마술이란 이런 오감의 한계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업이다.
단순히 사람의 눈을 속이는 차원을 떠나 인간의 한계와 그를 넘어선 무한한 창의력의 세계를 펼치는 시도다.
3년 전 프로 마술사로 전향할 뻔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집안의 큰 반대로 많은 대립과 갈등을 겪고 포기했다. 마술을 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보여주고 싶은 마술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보여줄 때. 이런 자유를 어떠한 틀에 붙들어 매고 싶지 않아 프로에의 꿈을 접었다. 프로 활동은 하지 않지만 마술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꾸준히 교환하고 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마술사는 데이빗 카퍼필드. 그는 카퍼필드가 마술 뿐 아니라 연극과 무대 연출에도 능하고 자신의 마술에 의미를 담을 줄 아는 마술사라 말한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미국 프로 마술사의 추천을 받아 미국 매직 캐슬의 시험을 보고 정회원이 되었다. 매직 캐슬은 세계 마술계의 중심이라 불릴 만큼 마술의 흐름을 주관하고 있는 곳. 그는 지난 1998년 국내 최초 최대의 인터넷 마술 교육 사이트인 쿨 매직(coolmagic.co.kr)을 만들고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국내 마술계에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마술사인 그는 데이비드 카퍼필드 등 해외 여러 마술사들의 국내 공연을 중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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