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차를 타고 어디를 가던 중에 막내가 “아빠, 왜 큰형하고 둘째형은 나이 차이가 두 살밖에 안 되는데 나는 둘째형하고 여섯 살 차이가 나지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응, 그건 그때 네 엄마가 중간에 둘을 지워 버렸기 때문이었지. 원래 둘만 낳고 끝내려다가 너를 낳은거야”하고 털어놓고 말았다. 그러자 막내가 “그럼 아빠, 나는 안 낳으려다가 실수로 낳은 거 아냐?”하면서 차 타고 가는 내내 심각하고 시무룩해져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는 아차 하고 그게 아니고 저게 아니고 하면서 아빠 엄마는 너를 가장 사랑하고 어쩌고 하며 허둥지둥 막내를 다독거리려 애를 썼었지만 만사가 허사였고, 막내에게 아빠 엄마의 사랑의 확신과 자기출생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데 그 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 후유증은 상당기간 계속되었던 기억이 난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요즘 일부 젊은이들처럼 생물학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식은 조상님이나 삼신할머니(그들 나름대로의 하나님)께서 점지해주셔서 얻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자식을 낳지 못할 때나 아들을 얻지 못할 때는 목욕재개하고 칠성당이나 성황당에 가서 정성을 다해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그러한 행위가 미신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식을 얻기 위한 그 마음가짐과 자세는 요즈음 우리 인간들의 출생을 주로 육체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려하는 신세대들에게 귀감이 될 만 하다고 본다.
이제 며칠 있으면 성탄절이다. 예수님의 탄생도 인성으로는 요셉 가문이겠지만 신성으로는 성령으로 인하여 성모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나신 하나님의 분신이라고 한다. 우리도 이젠 심각하게 한번 뒤돌아보아야 한다고 본다. 생물학이 등장한 이래 우린 어쩌면 하느님께서 점지해주셔서 부모님의 사랑의 결과로 소중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엄마 아빠의 동물적인 행위 끝에 발생한 부산물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인성과 신성 둘로 나누어 접근하듯이 우리인간의 출생도 생물학적이고 육체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을 조화롭게 해석하고 연결시키면서 출생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 이곳 미국 다운타운 빈민가엔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부모가 있어도 가정교육이 거의 없어 아무 데서나 아무에게나 지독한 F word를 말끝마다 씹어뱉는 불쌍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더구나 사랑이나 결혼 또는 부모의 책임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십대 아이들이 아이들을 무책임하게 싸질러 낳고 삼십대에 벌써 할머니가 되어버리고 사십 오십대에 grand grand mother가 되어 생전에 수 십 명의 손자 손녀를 두어 장래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의 최선의 선택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태어나고 제대로 된 가정교육도 없이 자란 아이들이 커서 미국의 정치적인 주류를 형성한다면 그 밑에서 일해야할 우리 이세 삼세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출생에 대해 부모님의 진지한 사랑과 하나님의 점지하심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자기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자중자애의 사랑이 싹터야하며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야한다고 본다.
동양에서는 부모님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효도를 강조하고 그 효도의 연장선상에서 나라와 임금님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사회구조를 이루었지만, 서양에서는 일찌감치 부모나 조상님보다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내세워 모두 같이 경배케 함으로써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또 도저히 존경할 수 없는 biological parent(생물학적인 부모)들를 건너뛰게 하였으며,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 아래 자기 출생에 대해 upgraded 된 자부심을 대량생산 방식으로 갖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랑의 하느님은 항상 소외되고 버림받고 자기 스스로 이 사회의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에게 스스로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몸은 비록 병들고 불구라고 해도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어 자기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시는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추상적 집합체가 하느님이 아닐까?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대신해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신가 하고 성탄절을 맞아 나름대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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