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앞에 있는 사물이 확실할 때 보아서 판단하고, 귀는 무언가 소리를 내야 들을 수 있지만 코는 바람에 실려오는 먼 데 것도 맡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마다 좋아하는 냄새도 가지가지 일 것이다. 향긋한 라일락 꽃 향기나 농익은 복숭아 냄새, 달콤하고 그윽한 장미냄새, 비릿한 바다냄새, 그러면서도 민족별로 또 달라서 미국인들은 베이글 구운 옆에 풍기는 커피향을 좋아할 테고 우리들은 풋풋한 열무김치에 곁들인 구수한 된장찌개나 숭늉 냄새를 좋아한다.
그러나 세대차이도 있어 같은 한국인이래도 이 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된장찌개 냄새보다는 피자 냄새를 더 좋아하리라.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냄새가 있다.
엄마냄새!
엄마에게선 엄마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살냄새가 있다. 내 엄마 품에서만 나는 살냄새. 그 냄새는 세상 처음 맡은 냄새 여서인지, 그 품안에서 안겨 자라 익숙해서인지, 누구나 제일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냄새가 아닐까? 그런 냄새를 우리 손자들도 알 수 있을까? 그들도 자라서 어른이 되고 머리가 희어지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그리워지고 가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런 냄새로 남아있을까?
아들 생일 미역국을 먹으며 문득 내 엄마 냄새가 그리웠다. 결혼 후 처음 생일을 맞는 아들이 장모에게서 생일 선물로 다이아몬드가 3개 박힌 넥타이 핀을 국제우편으로 받았다. 이에 앞서온 축하카드에는 사위 첫 생일날 씨암탉을 잡아줘야 되는데 멀리 있어 그렇게 못하는 섭섭함을 글로 써 보내셨다. 사위사랑은 장모라고 예전부터 장모들이 사위를 극진히 사랑함은 그 만큼 딸을 사랑하란 뜻도 있을 게다. 텃밭에 놓아 기른 씨암탉은 지렁이도 잡아먹고 온갖 푸성귀도 뜯어먹으며 오동포동 살이 쪄 집안의 제일 고급 반찬거리인 알을 하나씩 낳아 엄마의 소중한 재산이었을 텐데, 그 귀한 씨암탉을 잡아 사위에게 대접했으니 정말 대단한 정성과 사랑이었으리라. 지금에야 콜레스테롤이니 해서 피하는 음식 중 하나지만, 쇠고기 돼지고기가 귀했던 그 시절, 씨암탉에 마늘 찹쌀 넣어 푹 고아낸 그것 이야말로 최고의 음식이었음이 틀림없다. 우리가 엄마 살냄새를 그리워 하듯이, 사위하면 씨암탉이 떠오르는 건 아마 우리 40-50세 이상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들 생일을 함께 한지가 근 10년 만이다. 고1때 보스턴 백인 동네에 혼자 떼어놓고 대학 마치고 직장생활 등 타지에서 떠도는 동안 한번도 생일을 함께 못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귀한 생일을 전처럼 이것 저것 진수성찬 차려주지 못한 건 내 생활습관이 변해서인가, 현실적으로 낭비를 없앤다는 핑계의 무성의나 게으름은 아니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내가 차려주는 진수성찬 보다 조촐히 성의 있게 차릴 그의 아내 솜씨를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미역국과 조기구이 갈비찜, 해물 돌솥밥, 수명이 길라고 마련한 쫄깃쫄깃한 잡채,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이것저것 제가 좋아하는 메뉴를 맛있게 차려주는 내 음식보다 어쩌면 제 아내의 서툰 음식솜씨를 더 좋아할 아들을 보며, 이제 우리 아이도 내 살 냄새를 잊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웬 망령된 생각인가? 이 다음에 내가 없을 때 내 냄새를 기억할 수 있을까?
엄마는 옛날보다 많이 변했고 고집이 세졌다고 속상해 하는 아들 말에 나도 옛날의 내가 아님을 느낀다. 낯설고 물 설고 모든 것이 서툴고 모르는 이 타국에서 자칫 피해망상증 환자같이 되어 내가 옳다고만 어거지 피우며 사는 것 같다.
옛날 엄마의 그 포근함과 인자함은 다 벗어버리고 생존 경쟁에서 허우적거리며 싸우는 여자로 남으면 어쩌나? 남에게는 어떻게 보일 망정 내 아들에게만은 한없이 착하고 인자한 엄마로 남고 싶은데. 먼 훗날 내 냄새를 그리워하는 제 아들에게 할머니의 비릿한 젖 냄새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엄마로 영원히 남아있기를 바래본다.
장금자
약 력
경기도 안양 출생. 경희대 졸업. 가주 풋트힐대 수료
‘문예운동’ 신인상.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샌프란시스코 한국어 TV 방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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